영화|애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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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갱들'영화|애니|TV 2009. 12. 20. 15:24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쯤에 해당하는 [석양의 갱들]은 서부극을 빙자한 민중혁명극이다. 폭파전문가와 좀도둑이 만나 파트너쉽을 이루는 영화답게 레오네 영화에서 보기 힘든 스펙타클한 액션과 특유의 유머가 곁들어져 강한 재미의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그 와중에 틈틈히 등장하는 민중의 무고한 학살과 독재정부의 무능하고 야만적인 만행들의 교차다. 지식인의 허위허식과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핍박을 극명하게 대비하며 혁명을 완수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를 코믹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되묻고 있다. 그 어떠한 맑시즘 서적보다도 강렬하게 다가오는 깨달음이랄까. 엉뚱한 좀도둑에서 혁명전사로 서서히 체화되는 로드 스타이거와 와방 카리스마 넘치는 제임스 코번의 연기도 좋고(리 마빈이나 제임스 코번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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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레오네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영화|애니|TV 2009. 12. 18. 23:36
큰 스크린에 가득 차는 거친 마초들의 극단적인 클로즈업. 두 눈 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 시선에 무수히 많은 감정들이 담긴다. 피곤과 짜증, 공포와 두려움, 삶에 대한 집착과 지겨움 그리고 호기심. 세르지오 레오네는 땀내나는 남자들이 활개치는 서부에서 고전의 낭만과 전설을 거세해버리고, 동물에 가까운 탐욕과 흉폭성, 생존본능을 찾았다. 명예와 영웅은 해질녘 뒤안길로 쓸쓸히 떠나보내고, 차거운 복수와 치열한 이권다툼만이 궁상스레 그 자리를 차지한다. 아름다운 풍광 속 황무지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서부의 주인공은 악당도 보안관도 총잡이도 아닌 창녀와 서부 개척의 인부들이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그들을 위한 아름다운 찬가이자 떠난 자들을 위한 씁쓸한 애가(哀歌)이고. 그렇게 새로 쓰여진 옛날 옛적 서부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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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영화|애니|TV 2009. 12. 17. 19:48
눈부신 기술의 향연 속에서 제임스 카메론은 결국 영화의 본질에 대해 묻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더 나아가 삶에 대해서도. 이 영화에서 [포카혼타스]나 [늑대와 춤을], 미야자키 하야오까지 들먹이며 줄거리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다. 오히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 장자에서부터 워쇼스키 형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던졌던 삶과 꿈의 경계에 대해 그는 풀 3D라는 기술적 효과를 통해 모두가 체험할 수 있는 가상을 실현하는 데 방점을 둔다. [아바타]는 2D에 묶여있던 가상의 세계를 가장 실감나게 구현한 현실 체험이며, 동시에 110년전 영화라는 기술적 성취가 이룬 체험의 경이를 입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구현해보겠다는 - 테크니션으로서의 야심이 창창히 드러나는 - 영화 본연의 실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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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영화|애니|TV 2009. 12. 16. 23:57
매번 헷갈린다. 황야의 건맨인지 무법자인지. 아니 석양이었던가. 차라리 원제를 말하는 편이 더 알아듣기 쉽다. 좋은 놈, 나쁜 놈 그리고 추한 놈. 달러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작품이자 스파게티 웨스턴의 정점에 올라선 스펙타클한 배신과 음모의 대서사시. 드디어 조그마한 TV 화면에서 벗어나 큰 스크린의, 잘 복원된 필름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몇 번을 봐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편집은 세 시간이란 긴 런닝타임을 무색하게 만든다. 돈 냄새를 쫓아 속고 속이고, 같은 편이었다 뒤통수 치고 다시 한 배를 타는 야욕의 거대한 소용돌이는 유머와 허무, 폭력과 낭만를 적절히 곁들이며 능글능글하니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고전 서부영화를 엿먹인다. 경배하라, 레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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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영화|애니|TV 2009. 12. 15. 23:55
박영한의 입담도 입담이지만 이를 기가 막히게 영상 언어로 표출해낸 장선우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초기의 그는 돈키호테처럼 이리저리 날뛰며 놀라운 천재성을 입증해보였다. 구질구질하면서도 희극적인 상황의 아이러니와 관조하듯 꿈을 꾸듯 사회를 진단하는 시선의 생생함은 효과적이고 디테일한 미장센과 만나 속이 꽉찬 작품을 만들어 냈다. 걸진 대사와 섹스, 억척스런 폭력과 달리 화면 안 장선우의 연출은 사랑스런 여인을 보듬듯 부드럽고 섬세하다. 그들의 손짓과 몸짓에 욕망과 낭만이 꿈틀대고, 가난 속의 소주와 미싱엔 찌든 때와 같은 삶의 애환과 피로가 묻어난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불륜 이야기며, 지긋지긋하지만 그래도 견뎌낸 여자들의 이야기고, 식으믄 그뿐인... 러브 스토리다. 100억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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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구의 '시크릿'영화|애니|TV 2009. 12. 12. 22:27
이 영화, 번안극 같다. 어느 정도 그의 입김이 묻어있던 [세븐 데이즈] 역시 미드 느낌이 강했다. 차림상은 좋은 편이다. 형사의 아내가 범인으로 몰리고, 실제로 아내는 범죄 현장에 있었다. 피해자의 형인 조폭 두목은 경찰보다 빨리 범인을 잡아 아작내려 한다. 세련된 듯 익숙한 듯 그럴듯한 뉘앙스를 풍기지만, 대사도 연기도 미술도 모두 수입해다 지금 막 꾸며놓은 듯 어색하다. 영화 속 인물들은 비밀에 쫓기느라 숨기느라 캐내느라 바쁘지만, 정작 영화 밖 인물들은 그 비밀이 궁금하지 않다. 지리한 설명과 뽕발만 풍기는 개폼에 서서히 지쳐만 갈뿐. 그나마 [세븐 데이즈]는 납치라는 타임 어택이라도 있었지, [시크릿]은 이도저도 없이 분주하게 시늉만 내다 끝나버린다. [백야행]이 실패한 짝통이라면 [시크릿]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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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익준의 '똥파리'영화|애니|TV 2009. 12. 6. 23:58
어딜 가나 똥파리 같은 존재들이 있다. 늘 더러운 데 꼬이고, 이 세상에 별 필요도 없을 법한데 생존해 있는 그런 골치 아픈. 그렇다고 특별히 강한 것도 아니고, 그냥 콱 눌러 죽일 수도 없고, 애매모호한 포지션으로 어느새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리고 마는. 인생에 스쳐 지나가는 껌딱지보다도 더 불유쾌한 존재들. 양익준은 그 존재의 태생을 깨어진 가정과 대물림되는 폭력에서 발견했나 보다. 퍽하면 치덕이는 욕설과 동방예의지국을 엿멕이는 폭력이 주는 불편함은 그런 똥파리의 존재감을 대변한다.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관계와 소통, 사랑의 아이러니를 깨닫기 위해선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표현은 항상 올곧지 않고, 거짓은 진심의 다른 모습이니까. 그 얼얼함이 수반된 고통과 이해를 거쳐야 숙성된 포용력과 깊은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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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저메키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영화|애니|TV 2009. 12. 2. 05:01
스크루지 이야기가 이렇게 어둡고 무서웠었나. 해피엔딩의 깔끔한 동화라고 막역히 생각하던 기억을 더듬어 간신히 동화 속의 배경을 떠올려보니, 산업혁명이라는 격변기 아래 매캐하게 뒤덮힌 매연과 찌든 공업화에 팍팍하게 매말라 가는 도시의 삶, 그리고 점점 더 벌어지는 빈부격차 등이 음울한 시대상을 암시하기도 했던 것 같다. 대외적으로 부강한 빅토리아 왕조의 풍족한 이면엔 썩을대로 썩어 문드러진 천민의 비루한 삶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렬했던 건 인간미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던 스크루지의 비정한 욕심과 아무도 없는 썰렁한 대저택의 암흑에서 차례대로 나온 유령 체험담의 공포였다. 크리스마스 캐롤의 기쁨은 대비효과로 더 크게 각인됐을 뿐이다. 찰스 디킨스의 이 고전적이고 고딕적인 세팅은 비현실적이고, 창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