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애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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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브르의 '아이언맨 2'영화|애니|TV 2010. 4. 29. 22:45
쇳덩어리 간지남 아이언맨이 돌아왔다. 전편이 전장의 위기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후 인생관이 바뀌는 백만장자의 영웅담이었다면, 이번엔 자신과의 싸움에서 목숨을 걸고 이겨 인생관을 개척하는 백만장자의 영웅담이다. 모양새와 악당이 바뀌긴 했어도, 스케일이 더 커졌어도, 플롯팅은 크게 바뀐 게 없다. 토니 스타크의 최대 적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신체적 우월성이나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영웅이 아닌, 자신이 직접 만들고 개량해나가는 진화형이 영웅이라는 점도 타 히어로물과는 조금 다르다. 찌질하지도 우월하지도 않은, 쉬크함이 무엇보다 돋보인다. 그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악동스런 매력이 한몫하기 때문이라. 그리고 남은 건 언제나 그랬듯 쏘고 부시고 날라다니는 액션 활극의 한마당이다. 욕심 부리지 않은 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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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의 '킥-애스'영화|애니|TV 2010. 4. 27. 19:16
쥑인다. 이거 물건이다. 온라인 표현으론 하! 님좀짱인듯. 내가 보고 싶은, 내가 만들고 싶던 슈퍼 히어로물이 이런 거였다. 비틀린 유머와 흉폭한 액션, 거기에 현실감 넘치는 궁상맞음과 찌질함이 겸비된 카타르시스까지도. 법과 규율에 엿 한방 매기고, 11살짜리 여자애의 학살에 불편하면서도 환호를 보내는 이중성이야말로, 히어로가 되지 못한 채 조회수만 올려대는 매스미디어와 대중을 조롱하며 처절하게 까댄다. 그러면서도 패러디와 변주를 잊지 않으며 히어로물의 컨벤션을 교묘하게 따라가는 정석적인 플롯 덕분에 상업성마저도 포기하지 않았다. 딱히 논리적으로 재단할 수 없는 이런 불균질의 미학과 충돌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에너지이자 힛팅 포인트다. 접대 문화에 익숙한 몇몇 검찰들에게 힛걸이 찾아갔으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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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리터리어의 '타이탄'영화|애니|TV 2010. 4. 1. 19:12
사실 1981년 원작도 탄탄한 각본에 드라마틱한 주제, 그리고 신과 인간 사이에서 고뇌하는 페르세우스의 심리묘사에 치중한 작품은 아니였다. 중요한 건 레이 해리하우젠의 비주얼이었지, 신화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좋은 소재였을 뿐이다. 루이스 리터리어 역시 다 아는 줄거리에 공력을 쏟거나 심리 묘사에 쓸데없이 러닝타임을 낭비하지 않는다. 거두절미하고 모험의 시작과 중간, 끝에 걸맞는 액션과 비주얼을 잔뜩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어, 관객들은 그저 이 106분의 신화 모험 열차를 타고 신난다 재미난다만 외치면 그만이다. 그러나 레이 해리하우젠의 경이로운 스톱모션을 기억한다면 가볍디 가벼운 CG로 점철된 리메이크작은 다소 심심하게 보일지 모른다. 더 빠르고 자연스러우며, 큰 스케일을 자랑하지만, 예전 노가다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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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의 '13인의 무사'영화|애니|TV 2010. 3. 15. 23:57
인해전술이란 이런거다를 작정하고 보여주는 영화. 밑도 끝도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적들의 향연은 그야말로 MMORPG 노가다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이 영화의 장관이자 백미다. 중국식 상상력과 스케일만이 가능한 대혈전으로 지금까지 보아온 장철 영화의 일당백 싸움 중 가장 압권이다. 게다가 다리 위에서 혼자 그 많은 적들을 상대하다 다리 위에서 꼿꼿이 죽는 적룡은 물론, 형들의 계략에 빠져 말들에 묶여 오체분시(五體分屍)가 되는 강대위의 충격적인 죽음은 영화의 내용을 잊게 할만큼 무시무시하고 처절하다. 내용은 다소 밋밋하고 평이하나 무시할 수 없는 몇몇 시퀀스들이 던져주는 시각적 쾌감은 가히 장철 영화답다. 구도 에이이치의 세밀하고 생생한 액션과는 다른, 남성빛 판타지를 전달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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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의 '대자객'영화|애니|TV 2010. 3. 14. 22:01
그야말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엔딩을 가진 [대자객]은 왕우와 장철의 비극적이고 처절한 남아의 일생을 가장 적나라하게 다룬 작품이다. 다른 작품에서의 그는 그저 죽음을 앞에 두고 싸웠을 뿐 죽음이 오는 그 순간까지 생에 대한 집착을 걸고 결투에 임했으나, 여기선 아예 죽음과 함께 걷는다. 모든 걸 하나하나 정리하고 그 긴 기다림 끝에 자신의 약속과 목적을 이행하러 가는 순간 그는 이미 죽은 셈이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일당백과의 싸움은 타성적으로 나열되는데 그친다. 그리고 그건 한순간 모든 걸 뿜어내고 일생을 마감하는 하루살이의 발버둥처럼 폭발적이나 허무하다. 하지만 그 몸짓 하나가 만들어낸 의미는 오래오래 살아남아 역사적으로나 영화적으로 많은 이들을 감명시켰다. 적나라한 고어로 대표되는 장철이 이례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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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의 '잔결'영화|애니|TV 2010. 2. 26. 18:52
데이빗 보드웰이 가장 좋아한 장철 영화라 했는데,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왕우의 비장미 넘치는 호방함이나 적룡과 강대위의 콤비 플레이가 빛나던 영화들도 좋지만, 무엇보다 무협 영화에서 중요한 건 빛나는 액션일터. 캐릭터들의 매력은 떨어지지만 독특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한 상상력과 아이디어, 기예에 가까운 아크로바틱의 미학적 성취가 한데 어우러져 무협 영화의 재미를 극단으로 밀고 가는 가학적 쾌감이 가득하다. [잔결]은 [오독], [철기문]과 함께 가장 인상적인 장철의 후기작이며, 동시에 신체 훼손 및 파괴의 미학이 절정에 오른 화끈한 막가파 고어 무비다. 악당, 주인공 가릴 것 없이 모두 불구가 되어버리는 희대의 설정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 핸디캡이 곧 능력이 되는 - 반대로 정상인들은 평범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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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의 '철기문'영화|애니|TV 2010. 2. 26. 02:17
GV에서 오승욱 감독도 지적했지만, [철기문]이야말로 관통의 이미지가 가장 극단화돼서 나온 장철 영화다. 그동안 장철은 썰고, 베고, 찌르고, 자르고 온갖 폭력성을 시도했지만, 이 작품만큼 일관되게 관통하는 걸로 밀어붙인 작품도 드물다. 처음엔 젓가락이나 칼, 대나무로 시작해 마지막엔 깃발이 달린 장창이 배를 관통해 피칠갑이 된 깃발이 슬로우로 펼쳐질 땐 경탄의 신음까지 흘러나올 정도다. 그 처연한 아름다움이, 아찔한 공포가 한데 얽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전율을 준다. 극단적인 고통의 표현과 신체 훼손을 통해 역설적으로 생(生)에 대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의 강렬한 폭력 미학은 후반기 베놈스(Venoms)를 만나며 더욱 더 꽃을 피웠다. 개인적으론 그의 이런 후기작들이 좋다. 잔기교와 아크바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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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의 '전우치'영화|애니|TV 2009. 12. 23. 23:59
신인 감독이 만든 [전우치]가 이 정도라면 선방했다 치하하고 넘어가겠지만, 기대란 기대는 잔뜩 부풀려놓은 최동훈이 만든 만큼 신명나게 까야겠다. 쟁쟁한 올스타 캐스팅으로 '21세기 슈퍼 홍길동'을 부활시켜 놓은 희대의 B짜 정신에는 경탄해 마지않지만, 그 외 산만한 내러티브와 멀미나다 못해 알아볼 수 없는 촬영, 임팩트 없는 비주얼의 향찬을 벌린 대가로 100억은 너무 참혹하다. 그의 특기였던 대사빨이나 생생한 캐릭터 하나 건지지 못한 채 피식거리는 잔재미로만 두 시간을 연명해간다. 관객들도 도술에 취해 재미있게 봐주길 바랬다면 오산. 차라리 이들을 데리고 같은 제작비로 [타짜 2]를 찍는 게 나을 뻔 했다. 아님 남기남이나 김청기 감독에게 일평생 슈퍼 홍길동 속편을 찍게 해주던가. 키비주얼과 상상력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