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헐리우드는 재난의 세계였다. 공항은 폭설로 뒤덮여 비행기들이 연착했고, 거대한 선박은 빙하와 부딪치며 차거운 바다로 좌초되었으며, 천사의 도시 로스엔젤레스는 거대한 지친이 덮쳐 마을과 건물이 파괴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현대의 바벨탑을 상징하는 안정성 제일의 글래스 타워는 과도한 전압을 이기지 못한 불량 부품으로 인해 대화재가 발생했으며, 마을엔 살인 벌떼의 습격으로 군부대가 출동하는 한편, 하늘에선 거대한 행성이 궤도를 바꿔 지구와 충돌 직전까지 몰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틈틈히 비행기는 납치되고 불시작하며 승객들의 목숨을 위협했고, 뒤집어진 배에선 귀중품을 노리는 도적단까지 출몰해 아전투구의 싸움과 배신까지 발생했다. 비록 특수효과는 미천하고 허술했지만 시대 상황의 폐해를 상징하고,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 버둥거리는 스타들의 휴머니즘 가득한 생존기를 보며 관객들은 열광했고 눈물 짓기도 하다 결국 엔딩에 이르러선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이후 한층 업그레이드된 시각효과와 예산으로 중무장한 트위스터와 볼케이노, 딥 임팩트에 코어와 2012 같은 작품들이 줄줄이 쏟아지며 재난물은 시대의 상징과 스타들의 고군분투 생존담을 떠나 일종의 가상 체험장으로 변질됐다.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이 있다면 '내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야'라는 안도감일까.
[질주질주질주]로 젊은 나이에 데뷔해 모 방송국 PD로 재직하며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카시오페아 공주], [심야버스괴담], [압구정 소년들] 등 다양한 소설을 퍼낸 바 있는 이재익의 새 소설 [싱크홀] 역시 소재만 조금 특이한 상황을 취하고 있을 뿐, 그런 1970년대 헐리우드 재난물의 문법을 제법 충실히 따르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혁의 트라우마 및 상처를 담아내는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 등정의 프롤로그를 비롯해, '그랜드호텔'식으로 여러 인물군상의 사연과 상황을 다중 플롯으로 담아내는 전반부는 후반에 대재난이 닥쳤을 때 극적인 상황을 고조시키기 위한 착실한 발판이 되고, 관객이나 독자가 그 이야기에 빠르게 동참할 수 있게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활용된다. 다만 아쉬운 건 시절이 하수상한 현재 여러 사회문제 및 정치적인 요소를 담아 일종의 재난으로 상징할 수도 있었을텐데, 일반 한국 주말드라마에서 몇 번이나 봤을 법한 상투적인 재벌남과 꽃집녀의 사랑 타령과 악독한 재계회장의 야욕과 독단에 의지한 채 풀어냈다는 것이다. 그 외 인물들 역시 정형성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작위적인 설정들로 가득하다. 이런 재난 앞에 언제나 반칙처럼 등장하는 카오스적인 악당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이며, 주인공의 영웅적인 품새 또한 분명 여러모로 고민이 필요한 요소들이 있었을텐데, 이를 그저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휙- 그려냈을 뿐 깊이와 담론까지 건드리진 못한다.
대재앙 앞에 맞서는 여러 군상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플롯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새로운 건 두 발을 디디고 있는 땅이 언제고 배신하고 푹 꺼진 채 밑도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싱크홀'의 공포다. 그건 '삶이란 (언제 어디서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고난의 연속'이라는 표현과 맞닿아있는 것이기에 이 소설이 그런 심층적인 내면의 공포와 좀 더 연결되길 기대했다. 사실 현재, 실업공포와 살인물가, 병맛정치에 학원폭력이 범벅이 된 이 시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두가 재난영화 속 주인공들이 아닌가. 한낱 소설에 정색하고 아쉬워하는 내 비겁함이 서글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