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애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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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알바트의 '팬도럼'영화|애니|TV 2009. 10. 30. 23:21
폴 앤더슨의 [타우제로]를 떠올리게 만드는 기둥 컨셉에, [에일리언]과 [디센트], [딥 라이징]이나 [다크 시티], [큐브], [레지던트 이블]과 [이벤트 호라이즌] 같은 SF 호러무비들을 섞어 부대찌개식으로 내놓은 [팬도럼]은 같은 잡탕형 B급 SF 무비를 지향하지만 [디스트릭트 9]과는 조금 궤를 달리 한다. 미디어와 사회 풍자적인 시선이 가득했던 좌파(?) 블롬캠프와 달리 우파(?) 크리스티앙은 조금 더 고전적이고 본질적인 장르 규칙을 충실히 이행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선하고 패기 넘치는 맛은 좀 부족하지만, 보다 쉽고 노련하게 접근하는 재미가 있다. 기시감이 가득한 장면들과 마주치는 것도 반갑고. 주인공 바우어야 죽도록 고생하지만 그럴수록 관객들은 점점 더 신이 난다. 언제나 익숙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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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 오테가의 '디스 이즈 잇'영화|애니|TV 2009. 10. 28. 23:57
3년만에 열리는 콘서트를 8일 앞두고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팝의 황제. 그의 마지막 공연이 앞으로 2주간 전 세계 극장에서 펼쳐진다. [디스 이즈 잇]은 단순히 그의 생애를 반추해보는 다큐도, 그의 치부와 가쉽들을 폭로하는 미공개 영상집도 아닌,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2009년 7월부터 시작될 런던 콘서트의 불완전한 모습을 그나마 온전하게 담아낸 황제의 라스트 픽쳐 쇼다. 이미 찍어둔 영상소스들과 짧게 짧게 스케치된 리허설 장면들을 이어붙어 공연의 규모와 분위기를 짐작케 하는데, 정말 공연이 이루어졌다면 얼마나 멋졌을까 하는 탄식과 그를 잃은 아픔이 함께 구구절절 묻어나와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어린 시절 함께 했던 그의 유려한 음악들이 오감을 감싸쥐며 흐르는 판타스틱한 순간, 저도 모르게 이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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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의 '불꽃처럼 나비처럼'영화|애니|TV 2009. 10. 4. 23:14
팩션과 무협지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던 야설록의 원작과 마찬가지로 영화 역시 실재 역사와 판타지를 넘나들며 가공의 사랑 이야기를 스펙타클하게 펼쳐놓는다. 허나 경계를 넘나드는 것 자체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듯, 영화는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후세가 다 아는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기까지 쉴새없이 표류하기만 한다. 설득력 없이 조선의 국모를 사랑한다며 졸졸 따라다니는 조승우는 만화책 어디선가 본 듯한 주인을 사모하는 닌자 스토커 같고, 흥선대원군과의 알력 다툼에 골치 꽤나 아팠을 명성황후 수애는 평면적이기 그지없는 개화기 시대의 모던걸 에피소드 그 이상은 되지 못한다. 얄팍한 원작의 깊이를 감안하더라도 취사선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엉성한 각색과 캐릭터들의 현실감을 잡아내지 못한 연출력의 부재가 가장 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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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모스토우의 '써로게이트'영화|애니|TV 2009. 10. 3. 18:33
[아이 로봇]에 [스텝포드 와이프] 그리고 [매트릭스]를 섞어놓은 듯한 이 영화는 마치 50-60년대 펄프 매거진에 발표되던 SF를 보는 듯한 기시감을 안긴다. 문명의 이기로 인해 발전된 유토피아적인 미래가 실은 디스토피아였다라는 암울한 색채뿐만 아니라 한 명의 주인공이 그 세계의 구원자가 된다는 플롯팅까지도 너무 뻔하고 익숙해 당혹스럽다. 게다가 말이 안될 정도로 극단으로 밀어붙인 세계관과 그럴듯하지만 특색없는 비주얼, 항상 아픔이 도사리는 듯 찡그린 표정으로 시니컬하게 자신의 패배한 일상사(혹은 가족사)를 온몸으로 뿜어내는 브루스 윌리스의 분위기는 더더욱 더 식상하게 느껴지고. 이 약점만 극복한다면, 아니 기대하지 않는다면 [써로게이트]는 그럭저럭 킬링타임용 노릇은 해낸다. 새롭진 않지만 안정된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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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표의 '내 사랑 내 곁에'영화|애니|TV 2009. 9. 29. 23:46
술을 조금 많이 마시고 두번이나 결혼한 청순하고 예쁜 히로인에, 카리스마 만빵의 루게릭병 환자. 그리고 그 둘을 둘러싼 플랫하지만 기구한 사연들을 품은 조연들의 앙상블엔 전혀 불만 없다. 오히려 쓰러질 정도로 살을 빼고, 대사 하나 없어도 머리를 밀며, 아이돌 쌩얼에 따귀 투혼, 밤새며 장례지도 교육까지 받은 배우들의 열연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밋밋하고 매력없는 드라마를 위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차라리 진심이 담긴 휴먼다큐 '사랑'을 한번 더 보고 눈물을 짓는 게 더 슬플 듯 싶다. 악어의 눈물만 들어찬 신파는 허영이다. 적당한 소재주의로 두 시간을 채우는 가식은 기만이고. 진짜던 가짜던 중요한 건 진심이다. 그러나 박진표는 점점 더 진심에서 멀어져 간다. 영화다운 영화를 찍거나 다큐를 하거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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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랑경의 '이경규의 복불복 쇼'영화|애니|TV 2009. 9. 17. 23:44
내 이리도 잔혹한 사람이었던가. 요새 그 어떤 프로보다 열광해 마지않는 케이블의 '복불복쇼'는 가학성의 극치를 달린다. 말 그대로 지식도, 상식도 필요치 않은 자극적인 볼거리와 고성, 비명, 구토와 운이 교차하는 막장 시츄에이션은 리얼이고 나발이고 오로지 순도 99 프로의 재미만에 집착한다. 게임을 통해 승자와 패자를 정하고 벌칙으로 엽기적이고 황당무계한 보양식들을 먹이는 이 단순무식한 쇼는 불편하고 잔인하지만, 동시에 묘한 카타르시스와 원초적인 파워 게임의 묘미를 안긴다. MC 독단의 카리스마가 작열하고, 그 밑으로 비리와 아부가 난무하며, 뻔뻔스럽고도 이기적인 욕망을 숨기지 않는 이 서바이벌의 경연장은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사람들의 치부를 여지없이 뭉게놓는다. 못 생겼던 잘 생겼던, 똑똑하건 못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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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일 브롬캠프의 '디스트릭트 9'영화|애니|TV 2009. 9. 3. 01:44
지구에 외계인이 산다. 것도 20년 전부터. 남들이 다 예상한 미국 뉴욕이 아닌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만. 그들은 [MIB]처럼 기발하게 정체를 숨기지도 않고, [V]처럼 가면 뒤 엄청난 야욕을 감춘 것도 아니다. 외국인 집단 이주자처럼 어느날 우르르 몰려와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그 하위 문화가 스며들며 사회문제화 되었을 뿐이다. 이처럼 대단히 현실풍자적이고 강렬한 리얼리티를 갖춘 도입부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대단히 장르적이고 온갖 SF 컨벤션들을 엮어낸 종합선물세트 같다. 2시간이 조금 안되는 런닝타임동안 스피디하게 질주하지만 무게감 또한 만만치 않은 게 갓 데뷔작을 내논 (나이 서른뿐이 안 먹은) 감독이라 믿기 힘들다. 1인칭 슈팅게임과 리얼리티 TV쇼를 합친듯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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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주의 '불신지옥'영화|애니|TV 2009. 8. 25. 23:54
강렬하진 않지만 은은한 공포, 놀라지는 않지만 스리슬쩍 소름 돋는 끈쩍함은 말초적이고 잔인한 요즘 호러와 살짝쿵 거리를 둔다. 맹목적인 믿음에 대한 슬픈 우화인 이 영화는 특정 종교나 무속신앙을 지칭하며 불편함을 강조하기보단 소극적인 방식으로 광신에 대한 현대인의 자가당착을 표출하고 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조금 더 종교적이고, 더 센세이셔널하게 막나가는 불경함을 기대했건만, 감독은 [소름]이나 [거미숲], [로즈메리의 아기] 식의 근원적인 두려움을 원했던 것 같다. 가족이라는 거대 담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조그마한 비판이자 성찰기로 봐도 좋을 듯. 문제는 호러로 포장된 이 서스펜스 추리극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지점의 공포는 과연 어느 정도냐는 것이다. 감정적인 동화와 이해없이 말초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