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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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마루 가쿠의 '악당'책|만화|음악 2016. 9. 23. 03:16
무엇보다 제목이 맘에 들었다. [악당]. 강렬하고 효과적이며 심플하면서도 명료하게 다가온다. 이보다 더 쉽고 간략하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순 없을 것이다. 야쿠마루 가쿠의 새 소설 [악당]은 제목 그대로 악당에 대한 얘기다. 하지만 악당이 그 흔한 주인공이 아니고, 악당이 참 뻔한 나쁜 놈도 아니다. 이 소설에서 악당은 언제 어디서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이다. 내 친구일수도 있고, 내 이웃일수도 있고, 내 핏줄일수도 있다. 그들은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대놓고 세계정복을 노리거나, 정의를 파괴하기 위해 힘쓰지 않는다. 다만 어느 순간 찾아온 욕망에 방향을 잃고 실수를 저지른, 평범한 사람들이다. 혹은 그렇게 삐뚫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야쿠마루 가쿠는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 잘 파고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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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파인더스 키퍼스'책|만화|음악 2016. 7. 14. 20:24
스티븐 킹의 따끈따끈한 새 책 [파인더스 키퍼스]가 손에 들어왔을 때, 로스스타인의 18년만의 신작을 손에 넣은 ‘모리스’의 심정을 일부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작년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읽은 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뭐 물론 그래봤자 1년 남짓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제왕의 새 책이니까 모리스가 작중의 책 ‘러너’에 대해 애지중지하던 심정(!!)에 한껏 몰입해 아껴 읽었다. 아니 아껴 읽으려 했다. 물론 그건 불가능에 그치고 말았지만. 쉴 새 없이 넘어가는 페이지를 잡기란, 또 번개총알 같이 흘러가는 시선을 막아보기란 시간을 달려서 어른이 되고 싶어 했던 ‘여자친구’들의 마음과 비슷했다. 킹의 마수에 사로 잡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끝장이었다. 마지막의 작지만 압도적인 인물들의 교차 진행에 책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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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기의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책|만화|음악 2016. 6. 15. 23:38
현직 부장판사 출신의 도진기 작가가 쓴 "어둠의 변호사 고진 시리즈"는 [붉은 집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정신자살] 그리고 작가의 또 다른 시리즈인 "진구 시리즈"와 크로스를 시도한 [가족의 탄생]을 거쳐 상/하 2권 분량을 자랑하는 [유다의 별]까지 무려 5편이나 이어질 정도로 작가가 오랜 기간 공을 들인, 국내에선 보기 드문 본격 추리소설 시리즈다. 의도한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작품이 계속 되며 조금씩 스타일이 변하는 게 퍽 인상적인데, 본격추리물을 표방했던 [붉은 집 살인사건]과 알라바이 격파와 범죄 심리에 공을 들이는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이 트릭풀이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정신자살]에선 숙적 이탁오 박사를 등장시켜 사이코패스 스릴러 톤을 덧입히고, [유다의 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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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드리스켈의 '그레타의 일기'책|만화|음악 2016. 5. 31. 02:57
척 드리스켈의 [그레타의 일기]는 자뭇 흥미로운 설정으로 시작한다. 히틀러에게 알려지지 않은 유태인 정부가 있었고, 그녀가 히틀러의 유태인 사생아를 낳았다는 기록이 담긴 일기가 발견된다는 것.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진짜라면 그 기록에 대한 관심사와 그 핏줄에 대한 관심사가 폭발적으로 쏟아질 건 자명한 사실. 일기를 발견한 우리의 주인공 게이지 하트라인은 고민에 빠지게 되고, 때마침 그의 주변에선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유전공학을 활용해 맹글러 박사의 야욕을 다뤄 충격을 주었던 아이라 레빈의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나 역시 나치즘의 끔찍한 미래를 세팅해 반전의 묘미를 주었던 앨런 폴섬의 [모레]처럼 이 소설 역시 충격적이고 전복적인 세팅으로 독자들의 구미를 확 끌어 당기는데 성공한다. 게이지 하트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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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아키마로의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책|만화|음악 2016. 4. 17. 20:41
햇살이 따사해지고 꽃내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날, 꽃그림이 아름답게 박힌 책 한권을 받았다. 그 이름하여 모리 아키마로의 [이름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 술과 사랑, 수수께끼에 취한 5편의 단편이 수록된 일상계 미스터리다. 어린 시절 아역 배우로 활동했던 사카즈키 조코가 안경을 쓰면 평범해진다는 '안경 미소녀'의 기믹을 가진 채 재수를 거쳐 들어간 도야마 대학에서 '추리'연구회에 가입한다는 것이 취하면 이치가 보인다는 '취리'연구회에 덜컥 입부하며 벌어지는 짤막한 소동극들이 기둥 얼개다. 청춘 연애 미스터리라고는 하지만 사실 미스터리라고 보기에는 다소 약한 감이 없지 않고, 그렇다고 정통 청춘 연애물이라고 하기에도 뭔가 큰 밀당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간질간질하기만 한데, 이 두 요소가 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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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림의 '나무대륙기'책|만화|음악 2016. 3. 9. 18:30
가볍고 말랑말랑한 판타지 로맨스를 예상했다가 내심 당황했다. 은림의 [나무대륙기]는 생각보다 장대하고 복합적인 상징과 은유를 갖춘 의미심장한 텍스트였다. 게다가 심지어 많이 어둡고 먹먹해서 로맨스의 무게는 쉬 휘발되고 다크 초콜릿처럼 깊고 짙은 풍취와 쌉싸름한 맛만 남아 여운을 증폭시켰다. 동양적이면서도 이국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낯선 세계관과 이인종들의 배치도 다소 생경한 편이었는데, 이를 소개하고 소비하는 방식이 예의 전통적인 컨벤션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서미’ 공주와 시녀 ‘무화’의 뒤바뀐 신분에 대한 소소한 비밀로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새 나무대륙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에 대한 거대한 비밀로 확장되는데, 캐릭터 저마다 갖고 있는 사연과 운명이 씨실과 날실처럼 얽히고설켜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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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매서의 '사이버 스톰'책|만화|음악 2016. 2. 11. 05:53
사이버 테러로 세상 모든 것이 멈춘다면? 혹독한 겨울 추위와 눈폭풍에 갇힌 채 전기, 난방, 수도가 끊긴 도시에서 얼마나 버텨낼 수 있는가? 이번에 황금가지에서 받아본 책 [사이버 스톰]의 뒷장에 적힌 문구다. 우연인지 아님 예언인지 마침 책을 받은 날부터 한파가 불어닥쳤다. 심지어 서울이 (여름이긴 하지만) 남극보다 추웠다. 영하 18도. 전통적으로 추운 윗쪽 중강진, 삼지연은 영하 37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동아시아 주변은 얼어붙었고, 남부지방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려 제주도에 3일간 고립된 사람들만 수만명이었다. 때마침 이 소설의 무대가 된 美동부에도 진짜 도시가 고립무원이 될 만큼 어마어마한 스노우질라(Snowzilla)가 불어닥쳤다. 책을 펼치기도 전부터 분위기 조성이 끝내줬던 셈이다. 너무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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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셀레스틴의 '액스맨의 재즈'책|만화|음악 2016. 1. 8. 21:05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 전인 1919년 미국.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에선 6명의 사람들이 도끼로 살해되는 잔인한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아직까지 실제 범인이 잡히지 않은 이 미제 사건을 소재로 삼은 레이 셀레스틴의 데뷔작 [액스맨의 재즈]는 허구와 실제 사건을 교묘하게 섞어낸 독특한 상상력과 정교한 구성을 뽐내는 추리소설이다.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가늠할 수 없게 사건 배경에서부터 인물들까지 탄탄하게 교차해낸 이 소설은 건조한 문체에 생생한 배경묘사를 곁들여 마치 실제 사건을 기술해낸 범죄 논픽션을 읽는 듯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앤드류 테일러, 마이클 콕스, 스테파니 핀도프의 소설들처럼 19세기에서 20세기 초의 막 발전해가는 미국을 무대로 제임스 엘로이 스타일로 건조하며 차갑게,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