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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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책|만화|음악 2012. 7. 23. 03:31
하루키의 에세이를 처음 읽게 된 건 그의 소설이 모두 대출되고 없는 대학교 도서관 덕분이었다. 지금은 격하게 고맙게 여기고 있지만 당시 나는 그의 책을 읽기 위해 열이 올랐던 때라 야속하리만치 텅 빈 책장을 바라보는 게 꽤나 고역이었다. 같은 무라카미라도 류씨의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대신 빌릴 걸 물색하던 중 눈에 들어온 게 바로 하루키의 에세이였는데, 딱 봐도 재미없을 것 같던 문학사상사 특유의 촌빨 날리는 표지에, 너덜너덜 다 떨어진 것 같은 책 상태, 거기에 다섯 살 먹은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안자이 씨의 유치찬란한 일러스트까지 결합돼 딱히 빌리고 싶단 마음은 들지 않았다. 편당 글이 짧은 것 같으니 그냥 한 번 들춰나 볼까 싶은 마음으로 가볍게 선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1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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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황의 '창업상식사전'책|만화|음악 2012. 5. 21. 15:18
십장생. 이태백. 삼팔육, 사오정 그리고 오륙도. 이건 내가 알고 있는 예전 그 단어들이 아니다. 10대부터 50대까지 비극적인 사회상을 담고 있는, 이제는 제법 유명해진 축약어일 뿐이다. 우리는 10대도 장차 백수가 될 걸 생각하고, 20대 태반은 이미 백수이며, 38세까지 직장을 다닐 수 있으면 천만다행이고, 45세가 실질적인 정년이며, 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이라는 아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청년 백수 전성시대를 줄인 청백전과 31세까지 취직 못하면 절대 취직 못한다는 걸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삼일절, 최종 합격했으나 입사도 못하고 정리해고 당하는 노가리, 삼십대 초반에 퇴출당하는 삼초땡 등 무시무시한(?) 신조어의 유행엔 끝이 없다. 이 모든 걸 피해 출퇴근 길을 사수하려는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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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준, 최희진의 '김성근 그리고 SK와이번스'책|만화|음악 2012. 4. 18. 02:50
야구에 눈을 뜬 건 MBC 청룡을 응원하던 형 때문이었다. 물론 팀을 바꾸게 된 것 또한 형 때문이었고.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별 시덥지 않은 문제로 쌈박질을 하고 형과는 절대 같은 팀을 응원하지 않겠다는 월하의 맹세를 하며 별 연고도 없던 - 그저 장효조 이만수 김성래의 막강 화력 클린업 트리오에 반해 삼성으로 갈아탔었다. 유치한 발상에서 나온 선택이었지만 그 후 25년간 이 팀을 응원하고 있으니 사람 인생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1990년 MBC에서 막 바뀐 LG와 삼성 간의 한국시리즈는 그래서 우리 형제에겐 일종의 자존심 승부가 걸린 대리전 양상을 띄었는데, 허무하게도 4연패로 지고 며칠간 눈물을 삭히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인고의 나날로 보내야만 했었다. 그리고 12간지가 한바퀴 돌아 마침내 찾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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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빈의 '만나게 될거야'책|만화|음악 2012. 3. 26. 02:24
좋은 책과의 만남은 좋은 여행의 느낌과 비슷하다. 책장을 넘겨 점점 활자에 빠져들며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마음은 낯선 여행지에 내려 그 골목의 향기, 생소한 말투의 언어, 이국적인 풍광에 젖어들며 발을 내딛는 기분과 많이 닮았다. 처음멘 어색하고 두렵고 집중도 안되는 산만함의 연속이지만, 점점 그 속에 적응해가며 녹아들수록 그 세계는 내 것이 되어간다. 그리고 내가 아는 세계는 그만큼 넓어진다. 게다가 그간 자기본위로 받아들이던 시각을 털어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 비밀의 시공간과의 조우는 다양하고 독특한 충격과 감동을 안긴다. 책과 여행은 성찰이자 고해(告解)고, 이면의 기록인 동시에 활력소다. 이를 한번에 접할 수 있는 여행기나 견문록은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경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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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D. 멕케르트의 '화폐 트라우마'책|만화|음악 2012. 3. 4. 16:09
경제학이라면 치를 떨었다. 고딩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도 정치경제였다. 왜 이깟 속물들의 숫자 놀음에 내 푸르디 푸른 젊음을 할애하며 장단 맞춰야 하나 화가 나기도 했다. 주체할 수 없는 질풍노도의 혈기로 북경호랑이를 때려잡고, 청룡언월도를 철근같이 잘근잘근 씹어먹으며, 달리는 적토마에서 뛰어내려 창대한 꿈을 포효하던 그 시절, 이런 돈놀음쯤이야 의리와 우정, 사랑과 정의 앞에선 철저히 무릎 꿇을 거라 믿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사정도 변했고. 그때 나이의 따블쯤 먹고나니 이노무 세상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다. 동화 속의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라는 해피엔딩 따윈 재벌이 독점한지 오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우리네 인생 런어웨이에선 일일연속극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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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열의 '유럽, 작은 마을 여행기'책|만화|음악 2012. 2. 26. 17:04
마음이 울적하고 지칠 때, 혹은 결딜 수 없이 무료한 일상의 무게에 숨이 막힐 때, 집을 나서 아무 버스에 올라탄다. 지하철도 괜찮다. 될 수 있으면 듣도 보지도 못한 생소한 번호나 익숙하지 않은 노선 색깔을 추천한다. 그렇게 내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 전혀 가보지 않았던 지명의 역 앞에서 내려 마음이 가는 출구로 나가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평범한 주택가일 수도, 시끄러운 공장 주변일 수도 있고, 학생들과 주점으로 가득찬 대학가일 때도, 외국인 노동자와 취한 자들이 휘청대는 우범지대일 때도 있다. 더울 땐 아이스크림 하나 손에 쥐고, 추울 땐 붕어빵에 호떡, 혹은 포장마자에서 따라주던 종이컵의 오뎅 국물을 추천한다. 그렇게 돌다 힘들면 옛날 목욕탕에 들러 한가한 오후의 때를 벗겨내도 되고, 낡은 오락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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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의 '판을 엎어라'책|만화|음악 2012. 2. 7. 22:51
가로 세로 19줄씩 모두 361점으로 이루어진 나무판 위에서 검은 돌과 흰 돌로 서로 번갈아 두며 집을 많이 만드는 사람이 이기는 바둑은 서양의 체스와 함께 그 안에 담긴 오묘한 지략과 드라마틱한 흥망성쇠로 인해 마치 인생 여정에 비유되며 인격수양과 심신안정에도 도움이 되는, 지상 최고의 게임이자 지적인 스포츠다. 국내에도 이미 500만명이 넘는 아마츄어 동호인과 200명이 넘는 프로 기사를 두고 있는데, 높은 인기와 폭넓은 저변 그리고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고리타분하고 지루하다는 편견 또한 짙은 편이다. 일본에선 어린 바둑기사가 명인의 도움을 받아 활약하는 [히카루의 바둑(고스트바둑왕)]이란 만화로 어린 팬덤이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했다고 하는데, 정작 실제로 이런 어린 천재기사들 즐비했던(9살에 입단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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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뮬러의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책|만화|음악 2011. 11. 28. 21:31
학창시절 전파과학사에서 나오던 현대과학신서와 블루백스 번역판을 즐겨 탐독하던 이과생으로 - 사실 물리학보단 생물학을 더 좋아했지만 - 과학교양서에 대한 거부감이나 부담감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과학이나 수학을 잘해서라기 보단 긴 수업과 보충으로 다져진 익숙함 때문이라는 게 더 그럴 듯한 이유겠지만, 사실 그런 책들을 즐겨 보던 형에 대한 영향력과 조그마한 관심도 한몫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조지 가모프의 '이상한 나라의 톰킨스씨'같은 서적들은 인생의 필독서로 뽑을 만큼 감명깊게 보고 또 보곤 했는데, 화려한 수식과 기본적인 지식 없이도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접근하는 방식을 보며 과학이 이렇게 재미있고 쉽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경탄하곤 했었다. 지금이야 이러한 스타일이 트렌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