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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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보울러의 '블러드 차일드'책|만화|음악 2011. 10. 6. 23:34
뺑소니 사고로 기억상실을 경험하게 된 소년.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런 상황 속 의식의 한편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머리칼, 푸른 눈동자의 소녀와 마주친다. 어디선가 본 적도 없는 그 신비스러운 모습에 소년은 천사라 칭하지만, 자신의 과거조차 완벽히 복구되지 않은 그에게 적지 않은 두려움과 혼돈의 대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때론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때론 불안하고 불길한 징조로 다가오는 그 실체에 소년은 당황하지만, 이는 이미 자신이 사고를 당하기 전부터 겪고 있었던 문제라는 걸 부모와 마을 사람들을 통해 깨닫게 된다. 더욱이 그런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환영받는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며, 불편한 과거와 두려운 환영의 공존은 감수성 예민한 소년의 심리와 정체성을 마구 짓밟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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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도나휴의 '인생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책|만화|음악 2011. 9. 5. 05:28
지금보다 조금 어린 천둥벌거숭이 시절, 난 자기계발서라는 걸 전혀 믿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잘 실천하면 될 걸 왜 저렇게 뻔한 십계명과 몇 살 때 해야 할 100가지 일들, 수많은 방법들에, 수도 없이 난무하는 7가지 습관들을 손꼽아 나열하는 서적들을 탐독할까 싶었다. 깨알 같은 빅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할머니 잔소리 같은 원론적인 교훈만 적힌 얄팍한 책들인데 뭐가 좋다고들 읽는 건지. 나원참. 그런 책들을 닥치는 대로 탐독했던 친구 왈, 책을 읽는 순간 의욕이 풍선처럼 팽창해 당장이라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날 것 같았다고 하는데, 책 덮고 3일 뒤에 만난 녀석이 평소와 다름 없는 걸 보고 자기계발은 쥐뿔, 읽어도 별 효용은 없구나 탄식하며 만화책과 소설에 더 박차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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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7년의 밤'책|만화|음악 2011. 4. 6. 06:14
세상의 모든 부정(父情)이 부정(不淨)하다면 그건 부정(不正)한 일일 것이다. 그럴 일이 없기만을 두 손 모아 닳도록 빌 뿐이지만 현실 저편에서 들려오는 뉴스의 태반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자극적이고 인면수심의 파렴치한 범죄와 폭행의 흔적들이다.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을 만큼 잔인하고 엽기적인 수준까지 다다랐다. 상식과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감정과 본능만이 남아 꿈틀대는지 그런 사건사고에는 도통 이성과 논리가 끼어들 틈이 없다. 술이라는 이유로 감형되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화합과 용서를 구하는 현실이 더 이상 그대로 용납되어선 안된다. 그러나 그 상황을 바로잡기엔 우리나라 경찰들은 너무 할 일이 많고, 과거 정권에 빌붙어 사법살인까지 자행했던 법집행부는 무능하기 짝이 없으며, 정치권은 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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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의 '일곱 개 고양이 눈'책|만화|음악 2011. 2. 21. 16:13
뫼비우스의 띠.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수식어가 과연 있을까. 마치 M.C. 에셔의 그림을 보는 듯 뱅글뱅글 돌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최재훈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작은 밀실 추리소설로 일본 TV시리즈 '기묘한 이야기'나 서양 미스테리물에서 자주 접한 듯한 기시감마저 들었는데, 두 번째 단편, 세 번째 단편으로 이어지며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고 얼키설키 얽히는 세계관은 가히 찬탄을 불러올 만큼 황홀한 구조의 묘미를 안겨준다. 공통된 부분들이 서서히 변주되어가며 새로움의 세계로 인도하는 충격이란 뻔히 알면서도 유추하지 못하는 상상력의 숨겨진 1인치를 발견했을 때의 디테일한 매력과 같다고나 할까. 매직아이를 들여다보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미지를 캐치하는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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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책|만화|음악 2011. 2. 15. 03:59
13편의 독특한 질감을 가진 듀나의 새 단편집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SF로 치부하기엔 스펙트럼이 너무 넓고, 환상 소설로 보기엔 지극히 냉소적이고 까칠하다. 그렇다고 호러로 묶기엔 얌전하고, 멜로로 받아들이기엔 끔찍하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건 그 장르의 경계에 선 듀나만의 얼터너티브한 글쓰기는 여전하다는 거고, 장르를 비틀며 재조합하며 현실의 트렌드를 오마쥬하는 동시에 조롱하는 농락의 솜씨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물론 취향을 타겠지만 이 지극히 불유쾌한 심보의 도도한 매력은 장르물에 대한 저변이 그리 넓지 않은 시절에 나왔던 [면세구역]이나 [태평양 횡단 특급] 때부터 기인하던 특징이기에 매우 반갑다. 뮬론 중단편을 묶은 [대리전]이나 [용의 이]도 그간 출간되었지만, 건조하고 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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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숙의 '시크릿 Hong Kong'책|만화|음악 2011. 2. 4. 23:58
여행 다니는데 있어 여행가이드 서적만큼 계륵인 게 없다. 있으면 무겁고 귀찮고, 없으면 이리저리 헤매이기 쉽상이니 이건 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서적 자체도 개개인별 취향을 타기 마련인지라, 설명이 자세하면 감흥이 떨어진다고 투덜, 간단하게 표기되어 있으면 불친절하다고 투덜. 여행가이드 서적이 그냥 동네북이다. 게다가 좋은 여행, 즐거운 여행을 위해 가지고 떠난 서적이 여행을 지배하기 시작한 순간 끊임없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난 이미 너의 노예. 추천 코스는 모조리 출석 도장 찍어주겠어 마음 먹는 건 예사. 심지어 책에 나온 그 사진 그대로 담으려 용들을 쓴다. 인증샷 찍으러 여행 온 것도 아니고, 집에 돌아가 찬찬히 여행을 복기해보면 찍사 역활한 기억뿐이 없다. 그럴려고 비싼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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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네 겐지의 '클릭 클릭! 클릭으로 세상을 바꾸다'책|만화|음악 2010. 12. 15. 19:52
유난히도 추운 겨울날. 졸업을 앞둔 많은 젊은이들은 취직의 온도를 실감하고 옷깃을 여미었을 거다. 몇 해 전부터 88만원 세대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거머쥔 이 시대의 기린아들은 꿈을 접은 채 현실에 안주하며 살고 있다. 자신의 안위가 그 어떠한 대의명분보다 중요한 세상. 이념이 사라지자 그 빈 공간을 파고든 건 사랑도 평화도 희망도 아닌 지극히 냉랭한 사회의 경쟁이었다. 더 좋은 스펙을 찾아 움직이고, 더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해 노력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과 동지가 바뀌는, 이 모든 것이 112.4:1의 9급 공무원 고시같은 치열한 삶 속에서 꿈은 더 이상 멋지고 낭만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패기가 치기로, 열정이 무모함으로 인식되는 지금 꿈꾸는 자들의 반란은 거의 다 진압되었다. 남들처럼 가늘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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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리오의 '오아시스를 만날 시간'책|만화|음악 2010. 11. 13. 02:06
한때, 아주 정말 한때 음악을 해야겠다 맘먹은 적이 있다. 그건 계시였다. 기타 코드도 못잡고, 양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눌러본 적도 없으며, 절대음감은 커녕 화음넣기나 돌림노래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면서 말이다. 댄스와 힙합, R&B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브릿팝에 열광하던 이십대의 난 멍청할 정도로 무모했고, 황당할 정도로 게을렀다. 그러면서 꿈꾸기를 그치지 않았으니 세상만사 쉽게 적응할 리 없었다. 대체복무시절 어설프게 화성학 책을 보며 공부하던 동갑내기 후임과 박사를 준비하던 나이 꽤 드신 시간제 강사 후임을 꼬드겨 카피밴드부터 차근차근 밟아 나가겠다 작당까지 했었다. 록스피릿만 있으면 그까짓 연습이야 전혀 문제 없을거라 여겼다. 매력적인 보이스와 비주얼은 갖추지 못했지만, 솔직히 믹 재거나 노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