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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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야키의 '13 계단'책|만화|음악 2007. 6. 6. 01:23
난 사형에 대해 찬성한다. 사형이 구조적인 문제나 사회적 모순이 있다는 데엔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에는 너무 나쁜 놈들이 많다. 용서라는 단어 앞에서 한없이 뻔뻔한 그들에게 자비와 휴머니즘은 사치일뿐이다. 갱생이란 논리적이고 희망적인 비전이지, 현실의 주관적이고 랜덤한 이기심 앞에선 말뿐인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형은 내게 사회에 있어 어쩔 수 없는 최후의 보루이자 필요악인 셈이다. 47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한 [13 계단]은 이처럼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형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플롯 상에선 조나단 라티머의 [사형집행 6일전]이나 윌리엄 아이리쉬의 [환상의 여인]을 떠올리게 하지만,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이 그러하듯 보다 사회 시스템과 구조적인 부조리에 더 포커스를 맞추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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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빛의 제국'책|만화|음악 2007. 5. 22. 01:08
본의 아니게 떠나있는 시간. 나름대로 바쁠 듯 하지만 그럼에도 잠깐의 틈을 생각해 요즘 잘 나간다는 온다 리쿠의 소설을 빌렸다. 도서관에서 거의 보기 힘든 작가 중에 하나인데, 운이 좋았나 보다. 역시나 시간이 많은 사람에겐 이런 점들이 유리한 게 아닐까. 원래 보고 싶었던 건 [여섯번째의 사요코]였는데, 있는 게 이거뿐이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읽었던 김영하의 소설과 제목이 같다. 이것도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힌트를 얻었나.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는 작가의 별명이 맘에 든다. 몇장 안 읽어서 아직 뭐라 얘기하긴 이른 듯. 다 읽고 추가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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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S. 버로스의 '네이키드 런치'책|만화|음악 2007. 3. 25. 02:39
난해하다. 읽고 있는데 진도가 잘 안나간다고 할까. 마음에 상념이 많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다. 약쟁이가 글쟁이가 되어 쓴거라 보통 글과 달리 파편적이고, 중첩되어 있으며, 해석 자체가 몽롱하기 이를 데 없다. 열이 올라 잠들었을 때 꾸는 꿈처럼 기분 나쁘고, 정신없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상당히 회화적이고, 상징적인 글쓰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문득 원래대로 크로넨버그가 아닌 조도로프스키가 영화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초반부를 읽고 있는데 가히 반납일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된다. 분량은 적은데, 앞서 말했듯 상당히 난해해서 글로 가득 찬 그림책 보는 기분이라.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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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굴비낚시'책|만화|음악 2007. 3. 23. 03:57
김영하의 글은 재밌다. 글발이 세다는 건 이런 사람을 두고 말하는 거다. 정제되고 깔끔하게 빠진 소설에서보다 두런두런 마음껏 떠들 수 있는 에세이에서 그의 날카로움은 빛을 발한다. 거침없이 형식 무시하고 떠드는 자유스러움은 하루키의 조금조근한 에세이와는 또 다른 맛이다. 다소 뜬금없는 비교이긴 하지만, 김영하나 하루키나 모두 소설만큼 에세이가 재밌는 작가들이다. 솔직히 그들의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다.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보라. [굴비낚시]는 글쟁이가 쓴 영화에 대한 얘기다. 박학다식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들과 잡담들로 무장한 18편 영화에 대한 18편의 글이 담겨있다. 때론 글의 거의 전부가 영화에 대한 얘기와 무관할 때도 있다. 말 그대로 낚싯글이다. 그래도 영화란 주제로 이런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