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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리 아키마로의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
    책|만화|음악 2016. 4. 17. 20:41

    햇살이 따사해지고 꽃내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날, 꽃그림이 아름답게 박힌 책 한권을 받았다. 그 이름하여 모리 아키마로의 [이름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 술과 사랑, 수수께끼에 취한 5편의 단편이 수록된 일상계 미스터리다. 어린 시절 아역 배우로 활동했던 사카즈키 조코가 안경을 쓰면 평범해진다는 '안경 미소녀'의 기믹을 가진 채 재수를 거쳐 들어간 도야마 대학에서 '추리'연구회에 가입한다는 것이 취하면 이치가 보인다는 '취리'연구회에 덜컥 입부하며 벌어지는 짤막한 소동극들이 기둥 얼개다. 청춘 연애 미스터리라고는 하지만 사실 미스터리라고 보기에는 다소 약한 감이 없지 않고, 그렇다고 정통 청춘 연애물이라고 하기에도 뭔가 큰 밀당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간질간질하기만 한데, 이 두 요소가 적당히 균형을 이루면서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상당히 묘하게도 아주 재미지다. 

    이런 재미의 근간은 무엇보다 모리 아키마로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문체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1인칭 시점을 고수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곧이 곧대로 털어놓지 않는 츤츤(ツンツン) 요소가 주인공 사카즈키 조코의 매력치를 극대화로 끌어올린다. 평상시 냉정하고 평정심을 유지하지만 정작 자신의 속은 잘 모르는 '안경 미소녀'의 컨벤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물론 거기에는 주인공이라는 가산점도 포함된다) 맘껏 상상하게 만든다. 그런 그녀 눈에 비치는 상대자이자 명탐정(?) 미키지마 선배도 쿨하고 쉬크한 매력이 가득한 괴짜로 그려지는데, 술과 수수께끼에는 강하지만 정작 로맨스엔 다소 순정적인 측면을 가진 반전남의 이미지도 멋지게 투영된다. 이 솔직하지 못한 두 사람이 그려내는 케미가 가히 일품이며, 삐죽거리면서도 취리연구회에 (무려 너무나도 잘!!) 적응해 가는 그녀의 속내를 들여다 보는 재미가 이 소설의 매력이다. 거기에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과 같은 주변 인물들의 활약도 눈에 띄는데, 얄짤없이 그들을 조역(?)으로 격하시켜버리는 조코의 시선을 훔쳐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피가 난무하는 끔찍한 살인이나 복잡하고 과도한 트릭으로 구성된 사건이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인간사(라고 쓰고 사실은 주로 술과 엮인) 소소한 수수께끼에 주력하는 각 단편들은 상당히 아기자기하고 나름 유기적인 짜임새를 갖춘 단편들이다. 단서들도 충분히 깔려있고, 우리네 보편적인 정서로 해석하면 금방 답이 나올 사건이기도 하지만, 나름 깜찍한 반전과 이유들이 감춰져 있어 어머! 어머! 감탄사와 웃음을 연발하며 후딱 후딱 페이지가 넘어간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나 '소시민 시리즈'에 비하면 난도가 낮고, 하츠노 세이의 '하루치카 시리즈'의 특색 넘치는 소재들에 비하면 좀 얌전하다 싶기도 하지만, 모리미 도미히코의 아기자기한 사랑 느낌도 있고, 일본 특유의 청춘 라이트 노벨스러움도 있어도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읽다보면 왜 제목이 '이름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인지를 쉽게 유추할 수 있는데(첫번째 단편에 나온다), 자신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청춘들이 막 대학에 들어서며 비로소 깨달아가는 미래와 사랑(그리고 술!)에 대한 의미도 살짝 내포한 듯 하다. 

    작가인 모리 아키마로가 영화감독을 꿈꿨고, 이 소설에서 미키지마 선배 역시 감독을 꿈꾸고 있으며, 전직 여배우가 주인공인 만큼 읽다보면 만화나 드라마와 같은 영상적인 이미지도 살짝 떠오르는데, 이미 애니 시리즈로 재미를 봤던 [빙과]나 [하루치카] 그리고 오타 시오리의 [사쿠라코 씨의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처럼 애니로 만들어지거나 미카미 엔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처럼 일드나 마츠오카 케이스케의 [만능감정사 Q]처럼 영화화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검은 고양이' 시리즈와는 또 다른 재미에 방점을 찍은 이 소설은 작년에 바로 속편 [花酔いロジック 坂月蝶子の恋と酔察]이 발표됐는데, 여기선 뭔가 진척될 거 같았던 사카즈카 코조와 미키지마 선배 사이를 방해할 연적이 등장하는 모양이다. 어떤 수수께끼와 로맨스 그리고 술에 취해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들려줄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당연히 블랙 로맨스 클럽에선 이 작품도 계약하고 번역되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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