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애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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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드봉의 '스피드'영화|애니|TV 2007. 6. 2. 23:24
영리한 각본이란 바로 이런 영화를 두고 말하는 법. 이때까지 일반적이던 캐릭터 중심의 액션 시나리오를 벗어나 사건에 더 주안점을 두고 극단으로 밀어붙인 구조가 파격적이다. 지금이야 이런 류의 액션 영화들이 뻔하지만, 94년 당시 그레이엄 요스트의 각본은 모험이었다. 키아누 리브스와 데니스 호퍼라는 배우는 단순히 선과 악의 이미지만 피상적으로 대표할 뿐 공감할 만큼의 동기부여나 다층적 의미를 지니지 않아 얄팍하기만 하다. 대신 엘리베이터에서 버스, 지하철로 점점 더 스케일이 커지는 액션의 확장은 굉장히 계산적이고 단계적이며, 마치 게임의 다음 스테이지에 들어가면 더 어려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액션의 난이도를 높여 긴박감을 더한다. 액션 히어로와 악당 간의 고뇌와 비애, 대치 속에 보여지는 긴장과 유머를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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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3'영화|애니|TV 2007. 5. 3. 02:08
아이맥스에서 보겠다는 일념 하에 시사회도 제끼고, 첫날 같이 보자던 권유도 거절했다. 화질과 음질 면에서 보다 나은 쾌적한 관람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건 나의 영웅, 나의 히어로 샘 레이미 영화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영화는 내 기대만큼 즐거웠다. 분명 각본상의 문제점과 캐릭터의 깊이감은 전편들에 비해 딸리는 느낌이 든다. 더욱이 악당은 셋에다 개인적으로 봉착한 삼각 관계 연애사에, 직장 내 경쟁자까지 벌여놓은 일들만 해도 아찔할 정도. 하지만 할리우드 내에서 슈퍼 히어로 영화 삼부작을 온전하게 마친 감독이 누가 있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샘 레이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 어려운 난제들을 무난히 매듭 지었다. 특히나 액션 시퀀스들의 환상적인 비주얼라이제이션은 현재 어느 영화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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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보일의 '선샤인'영화|애니|TV 2007. 4. 22. 23:49
대니 보일은 종잡을 수 없는 감독이다. 재기발랄하면서도 가볍지 않고, 상업적인 것 같으면서도 비주류의 감성을 지녔다. [아마겟돈]의 상황으로 시작해, [이벤트 호라이즌]의 분위기를 깔고, [솔라리스]같은 화두를 던지는 이 잡탕찌개 같은 [선샤인]은 대니 보일이라는 감독의 성향과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그래서 당혹스런 영화다. 비논리적인 상황과 전개를 떠나 진부한 컨벤션들을 가지고도 장르물로 쉽게 안착하지 않는 건 [선샤인]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 된다. 그 어중간함 때문에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듯 하다. 어제 TV에서 방영했던 - 땅속만 디립따 파대던 [코어]에 비한다면 비주얼만큼은 확실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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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의 '극락도 살인사건'영화|애니|TV 2007. 4. 16. 21:17
재밌다. 기대한 만큼. 그러나 아쉽다. 조금만 집중력 있게 다듬었다면 더 그 느낌이 살았을텐데. 애거서 크리스티의 느낌보단 존 딕슨 카의 고딕 밀실 추리소설을 보는 듯 하다. 물론 그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벌리는 시츄에이션들은 지극히 전원일기틱한 토속적 말발들이지만... 열녀귀신 같은 호러적인 뉘앙스도 좋고, 날이 바싹 선 유머도 살아있으며, 무엇보다 배우들이 좋다. 80년 영화 느낌 낼려고 촌스런 색감의 DI나 화면비율을 길쭉이 늘려 논 장난도 즐거웠다. 편집과 시나리오 구조에 대한 단점이 자꾸 뒷통수에 달라붙어 아쉬움만 자극시킨다. 아깝다. 아까워. 진짜 재미있었는데... 더 재미를 줄 수 있었는데... 그래도 이 감독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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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의 '타짜'영화|애니|TV 2007. 4. 12. 23:52
일 때문에 9편의 DVD를 다시 봤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서플이 죽여줬던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 SE]와 바로 최동훈 감독의 [타짜 SE]다. 순수하게 DVD적인 퀄리티로 따진다면 [텍사스...]가 할리우드의 규모를 보여주는 서플이어서 재미가 있지만, 영화적인 느낌에선 역시나 [타짜]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몇번을 봐도 김윤석의 '아귀' 연기는 최고다. 느물거리는 그 속물 근성이라니. [타짜]의 음성해설을 들으며 깨달았던 건, 제임스 카메론을 비롯한 외국 감독들은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한다는 거. 걔들과 우리는 발표 문화가 달라서 그런가? 감독이 되면 말빨 하나만큼은 정말 필요하지 않겠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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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림의 '우아한 세계'영화|애니|TV 2007. 4. 7. 23:47
혹자가 이 영화를 송강호의 '우와! 한 세계'라고 했다는데, 동의한다. 이 영화는 '송강호의, 송강호를 위한, 송강호에 의한' 영화다. 물론 [연애의 목적]에서 보여줬던 한재림 감독의 리얼리즘 판타지 터치와 생생함 속의 생경함을 잡아내는 발군의 유머 센스는 여전하지만, 그 원동력은 무엇보다 배우다. 원맨쇼라 불러도 좋을만큼 송강호의 존재는 막강하다. 그건 실제 그 나이 대에 느껴지는 문제들에 대해 토로하고 있기 떄문이 아닌가 싶다. 다만 늘어지는 결말부와 고조되는 클라이막스가 약하다는 게 아쉬울 뿐. 기대했던 칸노 요코의 음악은 역시나 좋았다. 보고 나오니 내 앞으로 남은 인생이 막막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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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일의 '수'영화|애니|TV 2007. 4. 6. 03:34
지난 화요일에 김모씨와 같이 봤던 최양일 감독의 신작은 조금 당혹스런 영화였다. 원작 만화 [더블 캐스팅]을 안봐서 컨셉 자체의 유사성을 임영동의 [맥시멈 리스크]와 비교할 순 없었지만, 그 이외에도 잠재된 일본 정서와 파격적인 폭력성만으로도 충분히 한국 관객들에겐 직접 와닿을 만한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각본의 치밀함이 조금만 느껴졌더라면 보다 많은 면에서 용서(?)가 될 법했지만, 지금 이 상태의 [수]라는 영화는 수우미양가에서 '가'의 평점을 받아 마땅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슈퍼 히어로마냥 날뛰었던 '폭력진희' 지진희에겐 박수를. 눈알 뽑을 땐 탄성마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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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스나이더의 '300'영화|애니|TV 2007. 3. 16. 03:29
오늘 용산 아이맥스에서 '300'을 봤다. 역시나 영화는 화면 크고, 사운드 죽이는 데서 봐야 제 맛이다. 더욱이 이렇게 비주얼로 끝장내는 영화는 더더욱 더. 잭 스나이더의 전작 [새벽의 저주]를 봤을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이 사람 확실히 아름다운(?) 고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다들 멋지게 죽이고, 죽고. 제길. 사지절단에 피가 튀기는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 가끔 헐리우드의 무지막지한 화면빨 영화들을 보면.. 정말 이야기는 중요치 않아.. 란 소리가 목구멍까지 넘어오다 만다. 아냐. 그래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야!! 이야기!! 이야기!!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영화 앞에서 초라해지는 정치 감각이 아쉽기만 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