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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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랜드 에머리히의 '2012'영화|애니|TV 2009. 11. 17. 23:11
반담과 룬드그렌의 소박한 발차기로 시작했던 그의 할리우드 이력의 정점은 지구 파괴 혹은 지구 멸망으로 귀결되었다. 외계인 침공이던, 고질라가 짓밟던, 날씨가 지랄을 떨던, 태양 중성미자의 영향이던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부셔대는 그의 공격성(!)은 나날이 업그레이드되어 이젠 할리우드 막강 파괴의 신답게 아낌없이 지구를 반파해간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스케일! 세계 명소가 부셔지는 건 양념, 이젠 지각까지 움직여대며 세계 지도를 바꿔나간다. 다음엔 도대체 무엇을 얼마만큼 부셔댈지 쬐금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 빼앗긴 개념을 찾아 우주 저 멀리 안드로메다마저 뒤흔들지나 않을런지 궁금하다. (차기작으로 인디펜던트 데이 속편을 운운하는 걸 보니 감독 자신도 지구상에선 볼짱 다 봤다는 심산인 듯...-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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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알바트의 '팬도럼'영화|애니|TV 2009. 10. 30. 23:21
폴 앤더슨의 [타우제로]를 떠올리게 만드는 기둥 컨셉에, [에일리언]과 [디센트], [딥 라이징]이나 [다크 시티], [큐브], [레지던트 이블]과 [이벤트 호라이즌] 같은 SF 호러무비들을 섞어 부대찌개식으로 내놓은 [팬도럼]은 같은 잡탕형 B급 SF 무비를 지향하지만 [디스트릭트 9]과는 조금 궤를 달리 한다. 미디어와 사회 풍자적인 시선이 가득했던 좌파(?) 블롬캠프와 달리 우파(?) 크리스티앙은 조금 더 고전적이고 본질적인 장르 규칙을 충실히 이행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선하고 패기 넘치는 맛은 좀 부족하지만, 보다 쉽고 노련하게 접근하는 재미가 있다. 기시감이 가득한 장면들과 마주치는 것도 반갑고. 주인공 바우어야 죽도록 고생하지만 그럴수록 관객들은 점점 더 신이 난다. 언제나 익숙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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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모스토우의 '써로게이트'영화|애니|TV 2009. 10. 3. 18:33
[아이 로봇]에 [스텝포드 와이프] 그리고 [매트릭스]를 섞어놓은 듯한 이 영화는 마치 50-60년대 펄프 매거진에 발표되던 SF를 보는 듯한 기시감을 안긴다. 문명의 이기로 인해 발전된 유토피아적인 미래가 실은 디스토피아였다라는 암울한 색채뿐만 아니라 한 명의 주인공이 그 세계의 구원자가 된다는 플롯팅까지도 너무 뻔하고 익숙해 당혹스럽다. 게다가 말이 안될 정도로 극단으로 밀어붙인 세계관과 그럴듯하지만 특색없는 비주얼, 항상 아픔이 도사리는 듯 찡그린 표정으로 시니컬하게 자신의 패배한 일상사(혹은 가족사)를 온몸으로 뿜어내는 브루스 윌리스의 분위기는 더더욱 더 식상하게 느껴지고. 이 약점만 극복한다면, 아니 기대하지 않는다면 [써로게이트]는 그럭저럭 킬링타임용 노릇은 해낸다. 새롭진 않지만 안정된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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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일 브롬캠프의 '디스트릭트 9'영화|애니|TV 2009. 9. 3. 01:44
지구에 외계인이 산다. 것도 20년 전부터. 남들이 다 예상한 미국 뉴욕이 아닌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만. 그들은 [MIB]처럼 기발하게 정체를 숨기지도 않고, [V]처럼 가면 뒤 엄청난 야욕을 감춘 것도 아니다. 외국인 집단 이주자처럼 어느날 우르르 몰려와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그 하위 문화가 스며들며 사회문제화 되었을 뿐이다. 이처럼 대단히 현실풍자적이고 강렬한 리얼리티를 갖춘 도입부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대단히 장르적이고 온갖 SF 컨벤션들을 엮어낸 종합선물세트 같다. 2시간이 조금 안되는 런닝타임동안 스피디하게 질주하지만 무게감 또한 만만치 않은 게 갓 데뷔작을 내논 (나이 서른뿐이 안 먹은) 감독이라 믿기 힘들다. 1인칭 슈팅게임과 리얼리티 TV쇼를 합친듯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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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20분 시사회영화|애니|TV 2009. 8. 24. 23:58
지난 금요일 건대 롯데시네마에서 올 겨울 가장 큰 기대를 받고 있는 제임스 카메론의 (무려 12년만의) 신작 [아바타] 맛뵈기를 보고 왔다.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하지만 '일백푸로 3D'라는 강렬한 체험에 아직까지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데, 새로운 시각 혁명과 놀랄만한 신세계를 펼쳐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진일보한 자연스러움과 3D에서도 여전한 짐의 액션 연출력에 찬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스포일러가 될 만한 건 자제하고, 몇몇 시퀀스들만 20분에 걸쳐 보여준 터라 이 3시간 가까이 된다는 영화에 대해 극히 일부만을 드러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실망이라는 걸 모르게 해준 그이기에 기대치는 점점 (아니 사실은 끝도 없이) 높아만져간다. 그간 보던 3D는 주로 아이맥스였는데, 이날 최초로 접한 리얼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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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에이브람스의 '스타트렉: 더 비기닝'영화|애니|TV 2009. 5. 9. 01:42
JJ 에이브람스의 화법은 직구다. 떡밥이던 낚시던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부터 펼쳐놓는다. 가장 재미있을 만한 부분부터 시작해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그의 단도직입적인 내러티브는 철저하게 엔터테인먼트 정신에 입각한다. [앨리어스]부터 시작된 그의 이런 화술은 50~60년대 미국 동네 극장에서 유행하던 클리프행어식 전개의 변형인데, 다양한 밑밥 뿌리기와 상징이 맞물려 최고의 몰입감과 다음 장면에 대한 궁금증을 촉발시킨다. [스타트렉] 역시 마찬가지. 기존의 전통적인 캐릭터와 골격을 가져와 재조합하며 롤러코스터적인 질주감을 선사한다. 원작 시리즈의 얌전하고 소극적인 전개에 비한다면 1억 5천만불로 업데이트된 스케일은 뻥튀기에 곱배기, 따블에 따따블 그리고도 한 그릇 더 수준. 다만 원작과 다른 노선을 취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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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프로야스의 '노잉'영화|애니|TV 2009. 4. 20. 21:21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로 다가올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 말한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기저의 밑도 끝도 없는 미지의 공포감이 무의식적인 자기방어와 싸우고 있기 때문에 우울증과 무기력함, 두려움이 유발되는 거라고. 알 수 없는 혹은 너무나도 잘 아는 인간의 엔딩에 대한 막을 수 없는 무기력함에서 불안이 삶을 잠식하는 거라고 말했다. 알렉스 프로야스의 '노잉'에서 오는 공포의 기시감은 바로 그것이다. 파국와 결말을 알기 때문에 오는 너무나도 탈종교적인 동시에 종교적인 임사 체험과도 같은 공포감. 두려움 그리고 또 다른 희망. 그의 앞선 영화들(크로우와 다크시티, 아이로봇)과 마찬가지로 느껴지는 종교적인 색채는 여기서 더욱 두드러져 더 강한 의미와 반감을 선사하며 다크한 충격파를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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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폴 윌슨의 '다이디타운'책|만화|음악 2008. 10. 4. 23:34
이 양반, 대단하다. 사이버 펑크에 느와르를 혼재시킨 세계관에, 까칠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필력이라니. 레이먼드 챈들러의 하드보일드 SF 버전을 원했다면 바로 이 느낌이랄까. 간지와 낭만이 살아 숨쉬던 30년대 미국 뒷골목 느낌을 우주선이 두둥실 떠다는 미래에 완벽하게 이식해냈다. 술과 담배, 콜걸과 어두운 범죄는 안드로이드와 가상 섹스, 업둥이로 치환돼 주인공의 머리를 아프게 하며, 주먹과 총질은 더욱 업그레이드돼 공룡과 분자 와이어로 주인공의 육체를 아프게 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믿는 구석은 배짱과 독설뿐인 없는 마초적이지만 한편으론 따스한 주인공이 마음껏 활약하는 대로망 스펙타클 SF 어드벤쳐 액션 하드보일드 스릴러. 오락적인 재미와 철학적인 주제를 둘 다 포기하지 않고, 경쾌하면서도 묵직하게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