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길종 3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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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길종의 '병태와 영자'영화|애니|TV 2009. 3. 12. 19:36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젊은이들의 고충은. 결혼을 앞두고 사회로 나서는 그들은 자신만의 예쁜 고래는 덮어두고 현실이란 차거운 망망대해와 마주한다. 어떻게 노 저어 갈지, 누굴 태워 갈지, 그리고 목적지는 어디가 될지. 넘실대는 파도와 곧 닥칠 시련의 폭풍우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머뭇거린다. 그런 의미에서 씁쓸하고 가녀린 젊은 날의 초상을 담았던 [바보들의 행진] 이후 4년만에 돌아온 속편 [병태와 영자]는 씩씩하다. 여전히 고민도 하고 흔들리지만, 전에 없이 행동하고 움직인다. 그것이 젊음이라는 듯, 그것이 진짜 바보라는 듯, 고뇌하던 지성과 양심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 방향을 찾아 좌충우돌 힘차게 행진한다. 이 영화는 그 다짐의 표출이자 맹세고, 지장이자 선언과도 같다. 비록 유작이 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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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길종의 '한네의 승천'영화|애니|TV 2009. 3. 11. 23:58
굴곡진 우리네 인생을 진지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포착해낸 하길종 최고의 걸작! 되풀이되는 비극적 운명과 우리나라 고유의 한(恨)이란 정서를 함축적으로 드러낸 시나리오, 완급을 조절해가며 대중적인 화법을 통해 상징적인 메타포와 미장센을 구축해가는 연출력, 주조연할 것없이 팍 꽂히는 강렬한 연기. 이 삼박자가 효과적으로 맞물리며 아름다우면서도 애잔한 시대극을 완성해냈다. 광기와 욕망, 애증이 교차하는 작은 마을의 수난기는 한국의 복잡다난한 상황을 담아내듯 의미심장하며, 제사 의식과 그 과정을 통해 토속적인 샤머니즘 색채를 작품 전반에 강하게 부각시킨 유영길의 뛰어난 카메라와 김영동의 처연한 음악은 한국적인 미의 극치를 이룬다. 80년대 충무로에 그가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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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길종의 '속 별들의 고향'영화|애니|TV 2009. 3. 10. 23:07
전작이 경아를 중심으로 부조리한 현실과 남성중심사회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속편은 경아가 마지막으로 만난 남자 문오(신성일)로 시선을 돌려 애뜻한 순애보와 감성에 집중하고 있다. 상투적이면서 도식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건 물론 하길종 영화 중 가장 상업적인 아이템을 취했지만, 평범하고 밋밋하다. 그만의 비판적인 의식과 상징성은 사라지고, 피폐한 예술가의 자조 어린 한숨과 자학만이 느껴진다. 특히나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문오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자신의 앞날을 예견하는 듯 굉장히 자기독백적이여서 가슴 아프다. 상업적인 작품을 만들면서도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똑바로 견지한 그의 상실과 시련이 진하게 느껴진다. 영화가 슬프기보단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이 더 슬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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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길종의 '여자를 찾습니다'영화|애니|TV 2009. 3. 9. 05:48
어떻게 보면 상투적인 도덕극이자 계몽영화스럽기도 한 이 독특한 풍자극은 섹스와 여성, 이농 현상과 도시화를 화두로 관음적이고도 억압된 욕망과 허상을 판타지로 풀어내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나레이션이 깔리고 진일보된 몽타주와 옵티컬 효과로 보다 대중화된 화법을 구사하는데, 이는 새로운 영화의 등장을 주장하던 영상시대의 목소리가 담겼기 때문이었으리라. [화분]과 [수절]에서 보이던 작가적 자의식은 얕아지고, [바보들의 행진]에서 수확한 상업적인 접근법으로 보다 가볍고 명료한 영화를 선보였으나 비평과 흥행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같이 영상시대를 결성한 [별들의 고향]의 이장호나 [영자의 전성시대]의 김호선이 선보인 70년대 호스티스 영화들과 달리 여성을 일방적인 지고지순의 희생자로 그리기보단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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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 + 장기하와 얼굴들영화|애니|TV 2009. 3. 5. 23:59
조지 루카스의 [청춘낙서]가 과거지향적인 시선으로 젊음을 반추하고 재생해 흥행과 비평을 거머줬다면, 비슷한 시기 같은 학교 1년 선배이기도 했던 하길종은 [바보들의 행진]을 통해 현재진행형의 생기 넘치는 젊음을 담아내 성공했다. 스스로 겁쟁이에 바보 쪼다라고 되네이는 영화이지만, 만드는 이 만큼은 누구보다 용감하고 거침없는 이들의 당당한 행진이었다. 지금 보면 다소 낯간지럽고 유치한 70년대 감성임에도 진지한 젊음에 대한 성찰과 고민으로 알량한 외피를 가볍게 날려버린다. 자조와 불안, 니힐리즘으로 가득찬 몽상가의 시대적 아픔이 느껴져 슬프기도 하고. 유약한 듯 하면서 강인한 목소리를 지닌 이 영화의 야누스적인 면모는 독재정부로 하여금 검열의 가위질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비록 망신창이 누더기가 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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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길종의 '화분'영화|애니|TV 2009. 3. 3. 23:58
젊음과 부(富), 사랑이라는 다양한 욕망을 푸른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상징적으로 풀어내는 하길종의 눈부신 데뷔작. 초반 동성애적인 담론을 풀어내는 솜씨에선 이미 유하 감독의 [쌍화점]을 앞지르며, 후반으로 갈수록 대담한 점프와 생략, 그리고 사운드의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형이상학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작가주의 관점엔 찬탄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계급주의와 자본주의의 끝없는 욕망은 역설적으로 부조리와 희망이란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 새로운 끝에서 관조자처럼 현실을 응시하는 하명중의 파릇파릇 피어나는 조각 같은 외모는 영화를 더욱 모호하고 신비스럽게 감싼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데뷔작인 만큼 85%를 찍었다 다시 재촬영한 작품인데(자세한 사연은 여기로), 이번 추모전에선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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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길종의 '병사의 제전'영화|애니|TV 2009. 3. 1. 23:48
소문만 무성했던 전설의 그 영화. 국내 최초 공개란 타이틀에 걸맞게 영상자료원에 그렇게 많은 인파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주로 평일 낮에만 이용하는 터라 그랬겠지만. 안타깝게도 사운드 복원이 덜 끝나 어떤 내용인지 짐작만 할 뿐이지만,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찬 상당히 실험적이고도 난해한 작품이었다. 죽음과 삶, 동서양의 조화, 성과 금욕적인 시선을 넘나들며 풍부한 메타포와 이미지의 충돌을 담고 있지만, 빼어난 영상미와 충격적인 화두를 기대하는 건 무리. 단지 젊은 패기와 열정이 느껴지는 강한 생동감이야말로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던 진정한 힘이 아니었던가 싶다. 지금은 그의 부재로 이 불완전한 영화에서 온전한 의도를 전달 받을 순 없겠지만, 원체 영화에서 설명이란 불필요한 것.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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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길종의 '수절'영화|애니|TV 2009. 2. 28. 23:38
전통적인 한국 호러 영화의 틀로 풀어내는 [수절]은 그런 상업적인 기운 가운데 숨어있는 감독의 실험성과 상징성 그리고 다양한 메타포를 발견해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다. 귀신 영화인 동시에 복수극이며, 무협 영화의 기질을 담고 있는 퓨전적인 성향도 대단하지만, 시적인 아름다움이 담긴 강렬한 타이틀과 유영길의 촬영, 명장 황병기의 음악을 강렬하게 배치한 사운드 등 기술적인 완성도가 인상적이고, 호러 영화 특유의 반골적인 시대정신으로 유신정권을 까대는 대담한 비판적인 의식 또한 박수 받아 마땅하다. 과감한 테크닉과 거침없는 목소리를 가진, 그 시대 정말 용감했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