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젊은이들의 고충은. 결혼을 앞두고 사회로 나서는 그들은 자신만의 예쁜 고래는 덮어두고 현실이란 차거운 망망대해와 마주한다. 어떻게 노 저어 갈지, 누굴 태워 갈지, 그리고 목적지는 어디가 될지. 넘실대는 파도와 곧 닥칠 시련의 폭풍우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머뭇거린다. 그런 의미에서 씁쓸하고 가녀린 젊은 날의 초상을 담았던 [바보들의 행진] 이후 4년만에 돌아온 속편 [병태와 영자]는 씩씩하다. 여전히 고민도 하고 흔들리지만, 전에 없이 행동하고 움직인다. 그것이 젊음이라는 듯, 그것이 진짜 바보라는 듯, 고뇌하던 지성과 양심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 방향을 찾아 좌충우돌 힘차게 행진한다. 이 영화는 그 다짐의 표출이자 맹세고, 지장이자 선언과도 같다. 비록 유작이 되어 바보들의 행진은 여기서 끝나고 말았지만.
치열하게 몸으로 부딪치며 저항하고 답을 찾았음에도, 결국 꺾여버린 천재의 한풀이는 그 시절을 거쳐온 모든 이들에게 안타까움으로 남았으리라. 하지만 그는 현실에 안주하기 보단 정말로 예쁘고 소중한 고래를 찾아 훌쩍 떠나버린 건지도 모른다. 추모전 동안 그의 전작을 훑으며 내내 드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