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
스티븐 킹의 '별도 없는 한밤에'책|만화|음악 2015. 9. 23. 07:56
해야 할 일이 잔뜩 밀려있는 와중에도 스티븐 킹의 새 중편집 [별도 없는 한밤에]를 읽었다. 장편이었다면 몇 번이나 흐름이 끊겼을지 모른다. 아니 솔직해지자. 장편이었다면 아예 일을 잠시 접고서 쭉 읽었겠지. 스티븐 킹은 내게 그런 마력을 주는 작가니까. 그의 소설은 그만큼 절대적이다. 첫 문장을 읽은 순간부터 메두사 눈빛에 굳어버린 석상이 되듯 마지막 문장까지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그 마법에서 간신히 헤쳐 나오면 어느새 타임 슬립을 한 거처럼 시간이 저만치 흘러가 있다. 그러나 이번엔 4개의 중편이 모인 책이라 부담 없이 끊어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중편집은 각 이야기 사이마다 쉬어갈 틈이 필요하다.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어 내려가기 보단, 한편 한편이 끝나고 그 이야기의 여운을 느끼고 곱씹..
-
조 힐의 '20세기 고스트'책|만화|음악 2010. 2. 17. 23:55
어둠의 미학은 보이지 않는 데 있다. 어둠은 모든 걸 가리고, 어둠은 시작인 동시에 끝이며, 어둠은 무엇보다 강하다. 그 속에서 가감없이 솔직해지고, 그 솔직한 심연은 불안을 조장하며, 불안은 자꾸 상상하게 만든다. 그 불유쾌한 마음 속 물음들이 바로 순수한 공포고, 그 의심과 무서움이 심신을 자극해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며, 아찔한 흥분과 체념 상태의 안도감을 선사한다. 어둠은 그런 감정들의 총합이자 그릇이고, 매혹적인 화폭이자 헤어나올 수 없는 언어며, 극단성의 쾌락을 선사하는 동시에 중독되는 마법인 것이다. 조 힐은 그런 어둠의 본질을 신인답지 않은 필력으로 명확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기괴하면서 때론 슬프고도 처참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는 이 시대의 새로운 카프카 Kafka고, 새로운 러브크래트프 Lo..
-
미야베 미유키의 '크로스파이어'책|만화|음악 2010. 2. 8. 23:58
스티븐 킹의 [파이어 스타터]에 나온 꼬맹이가 그 후 컸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그녀가 자란 곳이 만약 일본이었다면? 미야베 미유키의 [크로스 파이어]는 그 후일담 같은 이야기다. 물론 킹과 미야베 미유키는 스타일도 문체도 전혀 다르다. 킹이 도망자 플롯에 소녀의 감수성, 냉혹한 정부의 음모를 섞어 호러 액션 블럭버스터를 지향했다면, 여전히 사회의 어두운 일면에 집착하며 경찰소설 플롯을 대입한 미유키는 사회파 소품 자경단 액션물에 가깝다. 같은 모티브를 두고 서양과 동양, 나라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분위기가 제법 재밌다. 그랬기에 그녀도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심하게 흥미진진한 1권에 비해, 맥 빠지게 만드는 2권의 성급한 마무리는 다소 아쉽다. [마술은 속삭인다]나 [용은 잠들..
-
스티븐 킹의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책|만화|음악 2007. 11. 14. 18:06
톰 고든은 보스톤의 마무리 투수 이름이다. 스티븐 킹은 보스톤의 열혈광 팬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야구 소설이 아니다. 그렇다고 공포 소설을 표방하지도 않는다. 제목만 보면 토니 스콧의 [더 팬]이 떠오를 법하지만, 실상 소설은 리 타마호리의 [디 엣쥐]에 가깝다. 11살 소녀의 고군분투 조난기가 담긴 모험 소설인 셈. 200 페이지가 넘는 소설 내내 악당도, 조력자도, 그렇다고 극적인 플롯도 없이 어린 소녀 하나만으로 끝까지 간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조마조마한 심정을 이끌어내는 킹의 글발은 정말 대단하다. 당장 뛰어들어가 구조해주고 싶은 생생한 묘사력과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구축이야말로 이 소품을 더욱 빛내준다. 공포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욱 무섭고 두려운 법, 킹은 진짜 무서움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
미카엘 하프스트롬의 '1408'영화|애니|TV 2007. 8. 5. 03:38
스티븐 킹의 단편을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대단한 야심 하나 느끼지지 않지만, 매끈하게 잘 뽑아진 소품이다. 설정의 훅(Hook)은 어디선가 많이 들은 듯 친숙하지만 강력하고, 공포의 완급조절을 효과적으로 해나가는 미카엘의 연출력 또한 탁월하다. 가히 1인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분주히 광기와 현실 사이를 오가는 존 쿠샥의 열연이 눈에 띄며, 짧은 분량이지만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샤뮤엘 L. 잭슨 역시 최고다. 모든 조합들이 훌륭하게 어우러졌다고나 할까. 고어적 효과가 적은 편이라 그간 트렌드처럼 쏟아지던 고어틱한 호러물들에 비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귀신들린 집의 장르적 컨벤션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고, 킹 월드의 단초들을(샤이닝, 공포의 애완동물묘지, 나이트 플라이어 등)을 ..
-
스티븐 킹의 '셀'책|만화|음악 2007. 6. 1. 18:35
스티븐 킹은 레이먼드 챈들러와 애거서 크리스티와 함께 내 어린 시절을 풍미했던 3대 영미권 작가다. 물론 지금도 그건 여전히 유효하고, 이미 죽은 두 사람에 비해 여전히 쭈욱 활동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그로테스크하고 독창적인 상상력과 이를 안정되게 뒷받침해주는 탁월한 문장력을 소유해 이 업계(?) 쪽에선 이름 그대로 '킹'으로 인정해주는 공포의 제왕. 무엇보다 그는 사람 감정에 숨어있는 취약점들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 공포심으로 치환할 수 있는 재주를 가졌다. 정신적 트라우마가 됐던, 유년기 시절의 아픔이었던, 기독교적인 원죄적인 담론이던 간에 그의 손을 거치면 환상적인 악몽 종합세트로 변해 아픔을 치유하거나 파멸시킨다. 그의 소설은 아름답고 잔인하며 무섭고도 감동적이다. 200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