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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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레이미의 '드래그 미 투 헬'영화|애니|TV 2009. 6. 12. 05:10
샘 레이미가 돌아왔다. 공포영화로. 오매불망 [이블데드]를 기다리며 그의 복귀를 바라던 호러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그간 할리우드에서 이뤄낸 성공을 뒤로 한 체 그는 초심으로 돌아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확실하게 지장을 찍는다. 나 변하지 않았소 하고. [드래그 미 투 헬]은 그 확실한 서명이자 팬서비스고, 자기복제인 동시에 성공한 자만의 유쾌한 여유가 있다. 여전히 그는 잔인하고, 웃기며, 빠르고, 막간다. 카메라는 짖궂고, 편집은 강렬하며, 아날로그 효과에 CG가 다소 늘었지만, 무시무시한 공포는 그대로다. [드래그 미 투 헬]는 신나는 놀이동산의 귀신의 집이다. 맘 놓고 웃고, 맘 놓고 소리 질러라. 무서우면 옆 사람 손을 잡아도 좋고, 신나게 떠들어라. 그래도 이 영화의 빠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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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니스펠의 '13일의 금요일'영화|애니|TV 2009. 3. 14. 21:13
점점 더 고문 영화에 가까워지는 현재 호러 영화에서 리메이크 붐은 일종의 버전 업이자 정화 작용이다. 느리고 정적이던 고전에 최첨단 비주얼을 이식할 것. 그리고 극대화되고 리얼해진 고어 효과에 무뎌지는 관객들에게 과거 슬래셔 무비에 등장했던 추억의 살인마가 가진 카리스마로 색다른 공포와 전율을 줄 것. 이건 무의미할 정도로 잔인하게 학살하는(혹은 거의 해부 수준인) 싸이코패스 살상극과는 분명 다른 요소다. 프레디, 마이클 마이어스, 그리고 핀헤드와 제이슨은 나름대로의 자신의 규칙과 낭만(?), 그리고 품격(?)을 가지고 있었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으로 고전 호러 리메이크의 시발점을 연 마커스 니스펠 감독은 이번 [13일의 금요일]에서도 전작의 영리한 접근법을 잊지 않았다. 빠르고 강력한 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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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야마 유메아키의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책|만화|음악 2009. 1. 3. 19:30
잔인함이 다가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슬픔과 분노 그리고 냉소의 상상력이 고정관념의 대뇌 피질을 따끔하게 벗겨낸다. 강렬한 시각적 충격과 잔혹한 정서적 울림이 꽤나 날카롭게 다가오겠지만, 도덕적 관념과 미추의 구분을 떠나 새로운 관점을 묘사하고 그려내는 작가의 악취미적인 창의성과 순수함이 놀라웁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뼈와 살이 발리고, 뇌수와 핏물이 튀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입에서 쓴맛이 묻어나와도 꾸역꾸역 책장을 넘기게 되는 주술적인 마력이 사람을 정말 피학적으로 만든다. 성악설을 신봉하듯 잔학해져만 가는 개인과 그런 그들이 뭉쳐있는 사회의 더러움을 악취나도록 담아낸 그의 필체에서 지옥이 느껴진다. 감히 추천은 못하겠고, 요즘 정치하는 분들께 한부씩 보내고 싶다. 요즘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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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 Z'책|만화|음악 2008. 10. 5. 23:35
가상 역사 소설은 많지만, 이처럼 좀비물에 대입해 다양한 콜라주를 뽑아낸 작품은 없을 것이다. 조지 로메로의 좀비물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이 소설은 필경 우습고 잔학하게 보일지 몰라도 어설프게 고어적인 효과만을 노린 단순한 공포물이 아니다. 윤리적이고 공황적인 딜레마를 다루며 인간과 사회에 짙은 페이소스를 던져준 로메로의 (초기) 좀비 3부작처럼 리얼하고 풍자적이며 사색적인 뉘앙스를 진하게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류 인플루엔자와 광우병 같은 바이러스가 설치는 현 시점에서 좀비는 그런 것들에 대한 점잖은 은유일런지도 모른다. 인터뷰와 보고서라는 구체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생생하고 다양한 시선을 담고 있으며, 현실의 국제 정서나 각 나라별 현황들을 꼼꼼하게 다뤄 가벼이 읽히기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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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스미스의 '폐허'책|만화|음악 2008. 9. 5. 00:30
진짜 악몽을 맛보고 싶다면 스콧 스미스의 '폐허'를 만나야 한다. 섬뜩한 공포와 저항할 수 없는 심적 폐해가 카타리타급 허리케인으로 몰아닥쳐 머릿속을 공항 상태로 만드니까. 잔인하고 무기력하며 짙은 향을 쏘아대는 꽃처럼 독하다, 이 소설은. 단순하고 명료한 이야기지만 무자비한 상황으로 인물을 옭가매는 스콧 스미스의 리얼한 냉정함은 가히 전작 '심플플랜'의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해낸다. 흔하디 흔한 반전과 구조에 집착하기 보단 정공법적으로 이야기를 매끈하게 풀어가는 그의 솜씨와 생생한 묘사는 여름날 헤어날 수 없는 최고의 악몽이다. 짜증과 공포, 잔혹의 서바이벌 삼종세트를 원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집어 들어라. 스티븐 킹의 찬사도, 아마존 5주간 1위했다는 기록도, 다른 이의 서평도 필요없다. '폐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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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창의 'GP506'영화|애니|TV 2008. 4. 3. 06:39
[알포인트]는 전형적인 장르 영화에서 한발 빗겨난 공포와 스릴 그리고 처절한 감정과 반목을 다룬 휴먼 드라마였다. 호러의 탈을 쓴 채 추악한 진실의 이면을 가리키는 그 속엔 전쟁의 무의미한 살육과 소속의 압박 그리고 정서적 공황을 맨살 드러내듯 부끄럽게 고백하는 진솔한 울림이 들어있다. 공수창을 안병기나 다른 호러 신인 감독들과 다르게 만든 건 우리네 아픈 기억을 건드릴 줄 아는 날카로운 시선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두번째 군대 호러 [GP506]은 군의문사라는 묵중하고 좋은 소재를 다뤘음에도 행군하다 길 잃은 부대원마냥 엉뚱한 곳을 헤매인다. 폐쇄된 공간 속에 담긴 진실하고도 추악한 본질을 포기한 채, 껍데기만 남은 공포와 스릴를 쫓기에 급급한 것. 진짜로 무서운 건 깜짝 놀랄 만한 사운드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