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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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림의 '나무대륙기'책|만화|음악 2016. 3. 9. 18:30
가볍고 말랑말랑한 판타지 로맨스를 예상했다가 내심 당황했다. 은림의 [나무대륙기]는 생각보다 장대하고 복합적인 상징과 은유를 갖춘 의미심장한 텍스트였다. 게다가 심지어 많이 어둡고 먹먹해서 로맨스의 무게는 쉬 휘발되고 다크 초콜릿처럼 깊고 짙은 풍취와 쌉싸름한 맛만 남아 여운을 증폭시켰다. 동양적이면서도 이국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낯선 세계관과 이인종들의 배치도 다소 생경한 편이었는데, 이를 소개하고 소비하는 방식이 예의 전통적인 컨벤션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서미’ 공주와 시녀 ‘무화’의 뒤바뀐 신분에 대한 소소한 비밀로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새 나무대륙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에 대한 거대한 비밀로 확장되는데, 캐릭터 저마다 갖고 있는 사연과 운명이 씨실과 날실처럼 얽히고설켜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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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스 브라운의 '레드 라이징'책|만화|음악 2015. 12. 10. 07:32
며칠간 책과 먼 생활을 해왔더니 문득 글이 읽고 싶어졌다. 내가 쓴 거 말고, 인터넷 기사나 댓글 말고, 실용서적 참고서적 말고, 새롭고 아주 긴 이야기가. 그런 바람을 들어주기나 한 듯 마침 가제본 서평 이벤트에 당첨돼 읽게 된 건 무지 두껍고도 이제 갓 출간된 소설이었다. [파리 대왕]의 [헝거 게임] 버전이라는 아주 그럴듯한 태그라인이 붙은 이 소설의 제목은 [레드 라이징]. 피어스 브라운의 장편 데뷔작이라 했다. 신선한 이야기에 목마른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달라붙어 영화화한다는 소식보다 사실 더 끌렸던 건 SF 성장담이라는 장르 때문이었다. 다 읽고 나니까 SF라고 부르기는 다소 민망하지만, 성장담에 방점을 찍고 있는 이 이야기는 한참동안 인기를 끈 [해리포터]를 위시한 [트와일라잇], [헝거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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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보울러의 '블러드 차일드'책|만화|음악 2011. 10. 6. 23:34
뺑소니 사고로 기억상실을 경험하게 된 소년.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런 상황 속 의식의 한편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머리칼, 푸른 눈동자의 소녀와 마주친다. 어디선가 본 적도 없는 그 신비스러운 모습에 소년은 천사라 칭하지만, 자신의 과거조차 완벽히 복구되지 않은 그에게 적지 않은 두려움과 혼돈의 대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때론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때론 불안하고 불길한 징조로 다가오는 그 실체에 소년은 당황하지만, 이는 이미 자신이 사고를 당하기 전부터 겪고 있었던 문제라는 걸 부모와 마을 사람들을 통해 깨닫게 된다. 더욱이 그런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환영받는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며, 불편한 과거와 두려운 환영의 공존은 감수성 예민한 소년의 심리와 정체성을 마구 짓밟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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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의 '일곱 개 고양이 눈'책|만화|음악 2011. 2. 21. 16:13
뫼비우스의 띠.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수식어가 과연 있을까. 마치 M.C. 에셔의 그림을 보는 듯 뱅글뱅글 돌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최재훈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작은 밀실 추리소설로 일본 TV시리즈 '기묘한 이야기'나 서양 미스테리물에서 자주 접한 듯한 기시감마저 들었는데, 두 번째 단편, 세 번째 단편으로 이어지며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고 얼키설키 얽히는 세계관은 가히 찬탄을 불러올 만큼 황홀한 구조의 묘미를 안겨준다. 공통된 부분들이 서서히 변주되어가며 새로움의 세계로 인도하는 충격이란 뻔히 알면서도 유추하지 못하는 상상력의 숨겨진 1인치를 발견했을 때의 디테일한 매력과 같다고나 할까. 매직아이를 들여다보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미지를 캐치하는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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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앱티드의 '나니아 연대기 : 새벽 출정호의 항해'영화|애니|TV 2010. 12. 19. 05:51
새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영화 시장의 화려한 포문을 열어제친 건 두 편의 기록적인 성적을 올린 판타지물이었다. 가히 판타지 소설계의 바이블이라 부를 수 있는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바이블보다 더 많은 판매량을 자랑하는 판타지 소설계의 아이돌 J.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가 바로 그것! 물론 그 전에도 레이 해리하우젠의 특효가 빛난 [신밧드의 대모험]과 [아르고 황금대탐험], [타이탄족의 멸망] 등이나 [엑스카리버], [코난 더 바바리안], [용과 마법구슬], [라버린스], [윌로우]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드래곤하트]까지 꽤 많은 영화들이 나오긴 했지만, 이 두 시리즈처럼 짧은 시간 안에 지속적인 시장파괴력과 놀랄만한 세계장악력을 보여준 예가 없었기에 할리우드 제작자들로 하여금 수많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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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나이트 샤말란의 '라스트 에어벤더'영화|애니|TV 2010. 9. 3. 04:12
그간 오리지널 각본만을 선호했던 나이트 샤말란이 왜 [아바타 : 아앙의 전설]을 영화화하려 했던걸까. [레이디 인 더 워터] 다음이었다면 판타지를 만들고 싶었단 의지의 발로라고 이해한다 쳐도, 자기식의 재난영화 변주였던 [해프닝]까지 찍은 마당에 왜? 더이상 자기 각본이 먹혀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아님 단지 아들 녀석이 재밌게 봤던 만화라서? 샤말란은 이 영화를 택하며 자신의 장점을 모두 놓쳐 버리고 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단점을 드러내고 만다. 긴 서사에 대한 각색의 부실과 큰 스케일의 비주얼이 쥐약이라는 점! 현실감 넘치는 소품의 드라마를 통해 캐릭터의 깊이를 점진적으로 파고들어 감동(혹은 반전)의 파고를 키웠던 그의 장점은 이 긴 이야기를 서둘러 압축해야 하는 상황에 파묻혀 전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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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힐의 '20세기 고스트'책|만화|음악 2010. 2. 17. 23:55
어둠의 미학은 보이지 않는 데 있다. 어둠은 모든 걸 가리고, 어둠은 시작인 동시에 끝이며, 어둠은 무엇보다 강하다. 그 속에서 가감없이 솔직해지고, 그 솔직한 심연은 불안을 조장하며, 불안은 자꾸 상상하게 만든다. 그 불유쾌한 마음 속 물음들이 바로 순수한 공포고, 그 의심과 무서움이 심신을 자극해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며, 아찔한 흥분과 체념 상태의 안도감을 선사한다. 어둠은 그런 감정들의 총합이자 그릇이고, 매혹적인 화폭이자 헤어나올 수 없는 언어며, 극단성의 쾌락을 선사하는 동시에 중독되는 마법인 것이다. 조 힐은 그런 어둠의 본질을 신인답지 않은 필력으로 명확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기괴하면서 때론 슬프고도 처참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는 이 시대의 새로운 카프카 Kafka고, 새로운 러브크래트프 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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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브래드버리의 '민들레 와인'책|만화|음악 2010. 2. 6. 22:39
레이 브래드버리의 언어는 마법이다. 문장 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매혹의 이미지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단어 하나 하나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편린들은 영롱하며 아름답다. 또한 어둡고 슬프며, 멜랑꼴리하고, 희미한 새벽 안개 속의 일출이자 저녁 노을의 매직아워 같다. 읽다보면 문득 어떤 내용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다. 허나 그 문장이 던져주던 시청각적인 싱그러운 찬란함 만큼은 잊은 적이 없다. 그 두근거림이야말로 브래드버리가 가진 매력이자 특기다. 여름날의 풍취를 물씬 머금고 있는 [민들레 와인] 역시 강력한 노스탤지어를 바탕으로 놀랄만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것이 비록 지긋하고 남루한 일상이라 할지라도 그가 그려낸다면, 그가 그린 하루라면 전혀 다르다. 무덥고 습한 찜통 더위 속의 보충수업 같은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