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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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음식|스포츠 2008. 10. 29. 22:00
오랜만에 울집에서 후식으로 나온 귤. 아니 벌써 귤이 나오다니.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좀 차졌다 생각은 했지만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을 줄이야. 정말 딱 재주소년 才洲少年 말대로 벌써 귤 시즌이 찾아왔다는데 놀랐다. 아직 방 한 구석에선 모기가 쒱 활기치고 다니는데, 다른 한 편에선 벌써 겨울을 알리다니. 계절이 무너지고, 자연법칙이 깨지는 혼돈의 시기, 그래도 시간은 가는구나 싶어 조금 서글퍼졌다. 그러나 이내 방 안 가득 퍼지는 달콤새콤한 귤 향기와 귤즙에 노래지는 손을 보며 차거운 겨울 뜨스한 방바닥에 누워 귤 까먹고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니 세월의 무상함이 쉽게 지워져 갔다. 기분 좋은 후각은 망각을 대동하고 오나보다. 그 귤향기를 오랜만에 다시 맡았더니 작년 이맘때 생각이 나네. 찬 바람에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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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솜씨가 늘었다.음식|스포츠 2008. 10. 26. 15:39
라면 솜씨가 늘었다. 예전엔 물도 못맞추던 내가. 이젠 숙주 나물과 양송이 버섯, 양파와 파, 마늘도 썰어넣는다. 계란과 떡은 기분 좋으면 추가. 조만간에 카레 라면과 참치 라면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라면이 새참을 넘어 매일매일의 주식이 되자 어정쩡하게 끓이는 건 하루의 고통이자 징벌이 되어버렸다. 사발면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면식을 시작한 지 어언 1년째. 끝내주는 국물과 김, 깍뚜기는 밥 말아먹기의 최소한의 조합이자 최선의 궁합임을 깨우쳤다. 면식은 백수의 기본 자세. 나도 이제 기본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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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음식|스포츠 2008. 10. 19. 23:41
'딱!!' 기분 좋은 소리. 경쾌한 타격음이 녹색 그라운드에 울려 퍼지면 사람들의 시선은 동시에 하늘로 향한다.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기대감에 두근거리는 심장은 가만있질 못하고, 손은 벌써 얼굴 근처까지 올라온다. 폴대를 넘어 외야의 관중석에 떨어지고 나서야 펄쩍 뛰며 함성을 내지른다. 내 몸과 마음은 벌써 1루를 돌아 2루를 향해 손을 불끈 쥐며 달리는 그리운드의 선수와 하나가 된다. 숨막히는 경기, 지치지 않는 열정, 한순간에 터지는 환희. 이 모든 것이 한데 뭉쳐 압생트(absinthe)의 에메랄드빛 마력처럼 야구에 중독된다. 4위로 올라가 가을에 야구하는 것만으로도 기쁜데, 이렇게 선전할 줄이야. 고마워요, 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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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연속.음식|스포츠 2008. 9. 28. 23:55
간신히 거머줬다. 가을행 티켓. 마지막까지 똥줄 야구를 펼치며 애간장을 녹이던 이빨 빠진 사자가 그래도 체면치레는 한 셈이다. 양신(楊神)이 시즌 초반 인간화 모드에, 심봉사 나가리, 외인 용병 모두 삽질들을 하며 바닥을 쳤건만, 새내기 삼총사 석민, 형우, 태인의 등장과 언제라도 출격 대기중인 안지만과 정현욱의 선전으로 여기까지 왔다. 기록은 계속 되어야 하니까. 솔직히 이 이상의 성적은 바라지도 않고, PS는 보너스란 심정으로 맘 편히 지켜보련다. 여기서 경험 좀 많이 쌓고 내년 시즌에 잘 하면 되니까. 밋밋하게 4강 올라가기는 사실 좀 시시하잖아. 이렇게 스릴 넘치는 4위권 박빙 싸움이 좋지. 흐흐흐. 이거 누가 그랬을까. 누.가.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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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 코리아 오픈 테니스.음식|스포츠 2008. 9. 26. 15:32
새하얀 스커트가 펄럭거리는 아래 보이는 그을린 피부, 작렬하는 태양 사이로 흐르는 굵은 땀방울. 경쾌하게 돌아가는 라켓과 스피디한 메트로놈을 보듯 똑딱거리는 노란 공. 힘과 스피드의 섹시한 매력이 풀풀 넘치는 테니스의 마력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솔 코리아 오픈 대회에 키릴렌코가 왔다길래 두 눈에 가득 담아 모처럼만에 레벨 업 좀 하려 별렀는데,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자금 사정의 압박과 늦잠이란 불의의 일격으로 인해 놓치고 말았다. 아 제길. 평일이고 준준결승이라 사람도 없었을텐데.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하고 KBS에서 생중계되는 중계방송을 닥본사하고 있다. 흐음 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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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빙 야구!음식|스포츠 2008. 8. 30. 15:46
26일 야구장에 다녀왔다. 올림픽이 끝나고 난 뒤 첫 경기루다. 목동에서 우리와의 3연전이었는데, 홈경기장임에도 불구하고 원정팀 삼성 응원단이 더 많은 기이한(?) 모습이었다. 그 전의 현대도 이렇게 인기가 없었나 싶을 정도. 목동 야구장은 처음이었는데, 잠실에 비해 워낙 가까워서 걸어가도 되겠다 착각할 정도였다. 경기는 사자들의 승리. 앗싸. 올림픽의 열기 덕분인지, 후유증 때문인지 몰라도 순위 싸움이 아주 재밌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올해 가을 경기는 보기 힘들겠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한화와 두산의 난조로 2위와의 승차가 3.5 게임차. 남은 경기는 대략 스무 경기 정도. 해볼만한 싸움이다. 죽이는 건 사자들의 남은 경기가 모두 상위권팀과의 혈전이라는 건데. 롯데와 7 경기, 두산과 6 경기, 한화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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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작 한국 야구 미니시리즈.음식|스포츠 2008. 8. 24. 02:27
8월 중순에 방영한 9부작 '한국 야구' 미니시리즈는 최고의 스릴과 초특급 감동을 선사했다. 왠만한 드라마와 떡밥에 넘어가지 않는 관중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반전 드라마와 트릭을 숨겨두었다. 그러나 이를 즐기기 위해선 눈 꿈쩍 하지 않는 강심장과 강철 체력이 필요하다는 거. 염통이 쫄깃해지고, 심장이 벌렁거리며, 똥줄이 타들어가는 최고 강도 수준의 쇼크 요법은 임산부와 노약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견디기 힘들다. 요즘은 너무 흔해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 뻔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점 또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을거라 생각된다. 적으로 나오는 쿠바, 미국, 일본과의 경기도 즐겁지만, 생각도 못한 접전을 펼친 중국과 대만, 캐나다의 선전과 올해의 작가상을 강하게 노리고 있는 '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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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드라마다.음식|스포츠 2008. 8. 22. 16:49
삼진과 병살 그리고 다시 삼진. 4번 타자의 부진은 인내심의 한계를 가져왔고, 손에는 땀을, 입에는 욕을 달게 만들었다. 안타까움과 초조함, 극한의 긴장감이 보는 이에게도 전해졌으니 정작 타석에 들어선 이 남잔 오죽 하겠나. 소심함과 찌질함이 극에 달하는 나로선 이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화장실 열두 번에, 복통만 일곱 번 앓았을 듯. 온갖 야유와 기대 그리고 부담감을 온 몸에 짊어진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걸 극복하고 역전 2점 홈런을 때렸댔다. 딱! 크지막한 포물선은 점점 관중석이 다가가며 설마에서 환희를, 크지막한 웃음과 동시에 감동의 눈물을 선사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마워요 승짱. 그리고 사토 너두.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