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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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다이어리.잡담 2015. 1. 7. 06:03
다이어리를 바꿨다. 아니 정확하게는 바꾸게 되었다. 형에게 회사에서 남는 수첩 혹은 스케줄러 아무거나 갔다달라고 졸라 댔더니, 어디서 이런 무지막지한(?) 놈으로 골라 던져 주었다. 'One Line A Day'라는, 흔히들 '5년 다이어리'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한 페이지에 하루씩, 5칸으로 구분돼 5년간 반복해서 쓰는 거라는데, 작년에 난 뭘 했는지, 2년 전에 난 뭘 했는지, 3년 전에 난 뭘 했는지... 이런 식으로 무려 5년간 쓸 수 있는 기록장이란다. 보기만 해도 벌써 숨이 턱 하니 막힌다. 매년 연말, 연초마다 이번엔 다이어리를 어디서 얻을까? 뭘로 써야 하나?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돼서 좋다만, 이걸 5년간 바라봐야 한다니. 좀 많이 지겨울 거 같다. 게다가 옆에 종이질은 성경처럼 반짝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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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잡담 2014. 1. 2. 05:50
출판자격증을 따고 써먹을 때가 없어 직접 만들어 쓰던 스케줄러를 과감히 포기했다. 그렇다고 값 나가고 이쁜 시중의 두틈한 다이어리를 집어든 것도 아니다. 그냥 형이 회사에서 받아다 준 얇디 얇은 수첩 하나로 올해를 버티기로 했다. 몇년간 스케줄러/다이어리를 쓰다보니 주객이 전도돼 스케줄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쓰기 위해 스케줄을 짜고 일상을 살고 있었다. 가끔 밀리기라도 하면 주변에 내가 뭘 했는지 악착같이 물어보고, 그래도 안될 땐 과거를 심하게 추측/미화해가며 칸을 꼼꼼히 메꾸고 있더라. 그러다 문득 이게 뭔 미친 짓인가 싶어 만들던 스케줄러를 때려쳤다. 내딴엔 과거와 미래를 잡아보기 위해 기록에 치중했던 건데, 오히려 현재를 놓치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오늘을 복기하려던 습관이 집착과 과욕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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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다이어리.잡담 2009. 11. 26. 05:59
보통 새해가 지나 1월 끝무렵 쯤에 부랴부랴 다이어리를 고르던 내 게으른 습성과 달리, 이번엔 꽤나 빠르게 - 무려 내년이 시작하기 한달 전에 다이어리를 택했다. 물론 자의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아무튼 이 때문에 내년엔 뭔가 달라지겠지란 색다른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들고 다닐 일도 없고, 글씨도 크게 쓰는 편이라 이런 넙데데 가계부틱한 사이즈가 썩 괜찮아 보인다. 별다른 계획도 일정도 없는 주제에 의욕만 앞서 올해는 과분하게 프랭클린 플래너를 썼지만, 돈 낭비 종이 낭비 감정 낭비의 3연타! 시간이 남아도는 내 한심한 모습도 모자라 속지까지 텅텅 남아도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꽤나 고역이었다. 과감히 형을 꼬드여 잡지도 보고 싸게 싸게 공짜 다이어리도 얻자 GQ를 부추겼다. 웬걸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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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에 멸망을 기다리며.잡담 2009. 1. 1. 23:21
세기말, 노스트라다무스는 지구대멸망이 온다고 말했다. 학생도 아닌 대체복무 시절, 어차피 끝판인 거 실컷 놀다 가야지 맘 먹고 놀았다. 그리고 10년. 나이는 한 살 더 먹고, 아직까지 끝은 요원하고, 여전히 놀고 있으며, 삶은 계속된다. 지겹도록. 이번엔 2012년에 대멸망이 온댄다. 어차피 다시 끝인 거 또 작파하고 놀아야 하나. 그리고 역시 후회하겠지. 역사는 되풀이된다며. 그럼 다음번 멸망의 날짜를 세며 기다릴지 모른다. 놀기 위한 핑계를 위해. 휴거든, 마야든, 노스트라다무스든, 3차 대전까지 다 갖다 붙이며. 버리는 세월이 아까워 정초 다이어리 하나를 얻었다. 새로운 마음,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꾹꾹 눌러 담겠다. 내일 바로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