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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chelle Shaprow의 'Purple Skies'
    책|만화|음악 2011. 5. 2. 02:00

    일상에서 마법은 쉽게 오지 않는다. 한 순간의 균형이 깨어지는 순간 느닷없이 시작되기도 하고, 전혀 예측하지 못할 때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당당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분명한 건 그 마법이 언제나 경이로움과 감동 그리고 즐거움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적이고, 환상이며, 삶의 백미다. 문제는 더 이상 마법에 감흥하지 않는 사람들에 있다. 그들은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욕구에 집착하고, 사이즈와 무게감에 경도되며, 지위와 경제적인 기회에 의해 움직일 뿐, 찰라의 감정과 딱 맞아떨어진 이야기, 천상의 화음과 아름다운 꿈 따위에 신경쓰지 않는다. 현재의 마법은 일확천금의 로또나 인생 한방의 복권에 가깝다. 오해다. 그런 건 일상의 마법이 아니다. 인생의 불꽃놀이일뿐, 찬란한 햇살처럼 다음날 그 다음날 계속 지속되지 못한다. 은은하게 뒤를 돌아봐도 처음 느꼈던 그대로 경이로움과 감동 그리고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셸 샤프로는 실로 오랜만에 느껴본 마법이다. 45분간의 시간이 어디로 사라졌는가, 방 안에서 나는 홀로 이어폰을 끼고 무얼 했는가를 되네이게 할만큼 강력한 블랙홀 같은 마법.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사라진 시공간에 대해 헤매이고 또 헤아렸다. 데뷔 앨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꽉 짜인 구성과 탄탄한 기본기, 강렬하진 않지만 은은하게 사로잡는 매력적인 보이스와 재즈를 기본 바탕으로 다른 장르들을 조금씩 혼합시킨 퓨전성까지 모든 것이 온전히 자리 잡고 있는 [Purple Skies]는 감히 재능의 종합선물세트라 단언해본다. 물론 옆에서 도움을 준 - 존 레전드나 카니예 웨스트, 코니 베일리 래 등과 작업하기도 했던 - 프로듀서 죠쉬 발류와 알렉스 베나의 공도 무시 못하겠지만, 이 모든 곡을 작사/작곡하고 연주에 편곡까지 오롯이 해낸 그녀의 실력이 더 놀랍다. 더욱이 대중음악에 대한 자신의 심리학적 고찰이 담긴 논문으로 예일대 학위를 받은 이론적인 정립 또한 큰 도움을 주었는 지 모른다. 그러나 코니 베일리 래보단 더 파퓰러하고 감각적인 심상으로 다가오는 그녀의 음악은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보다 환상적이고 태양의 서커스보다 아름다운 마법이라는 거. 그건 확실하다.

    가볍게 리듬을 타며 무그 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첫 트랙 'Back Down To Earth'부터 강력하다. 5초만에 사랑에 빠지는 목소리라는 카피가 전혀 과장이 아닌 것처럼 귓가에 그녀의 목소리가 닿는 순간 메두사의 얼굴을 바라본 사람마냥 꼼짝할 수 없게 만든다. 마력이 담긴 멜로디와 사랑스런 목소리, 감미로운 호소력이 완벽하게 황금비로 결합한 이 소울풍의 미디엄템포는 정말 진짜 대박 매력적이다. 그 뒤를 자연스럽게 선행된 트랙에 걸쳐 소개하는 'Always Belong To You' 역시 첫 트랙이 저리가라 할 정도로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노래.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 곡 모두 일본 재즈 앨범/싱글 차트에서 1위를 거머쥐었다는데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탁월한 멜로디 감각이 일품이다. 편곡이나 진행, 스타일까지 완벽한, 모던하고 깔끔한 미디엄 템포의 스탠더드의 교본을 제시하는, 미치도록 사랑스런 노래다. 통통 튀는 연주로 인해 동화 속 BGM스러운 정서를 던져주는 'Floating On The Moon' 역시 상큼하고 발랄한 곡. 사랑에 설레이는 감정이 물씬 담긴 가사도 귀엽다. 그 뒤를 잇는 네 번째 트랙의 'Ferris Wheel' 역시 앞선 감수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노래. 중간의 맨하튼 트랜스퍼를 듣는 듯한 코러스와 보사노바 기운이 느껴지는 편곡도 인상적이고, 가사의 긍정적인 기운도 화창한 봄날 말려둔 이불처럼 포근하다.
     
    분위기를 바꿔 보사노바 스타일을 차용한 'Windows'는 상당히 복고지향적인 사운드를 선사한다. 여성 코러스의 허밍과 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6-70년대 유행한 프렌치 팝 분위기로 몰고가는 퓨전적인 편곡도 멋지고, 이를 편안하게 소화해내는 미셸의 보컬도 매력적이다. 'If I Lost You'에서도 그 복고지향적인 색채와 퓨전성은 여전한데 70년대 디스코 리듬에 80년대 신스(synth)필을 결합시킨 편곡이 아주 재밌다. 경쾌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유려한 멜로디 라인과 독특한 질감의 보이스 컬러에 대해 또 반복해봤자 무얼하노. 그저 죽여준다 정도로만 해두자. 잠깐의 포즈(pause)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곧바로 튀어나오는 'Video Game'은 제목 그대로 비디오 게임의 사운드가 전면으로 등장하는 독특한 댄스곡. 8비트 뮤직을 배경으로 삽입시킨 것이나 반복적인 훅(hook)을 통해 곡을 견고하게 쌓아나가는 솜씨가 놀랍다. 장르에 대한 경계와 한계를 구성짓지 않는 그녀의 변신은 이 노래 이후 이어지는 'Without Love'에서도 계속된다. 70년대 펑키한 소울팝을 엇비트 스타일로 풀어낸 재즈적인 감각의 수혈이 상당히 인상적이고 흥겹게 다가온다.

    같은 목소리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바로 앞선 트랙과 전혀 다른 청아한 분위기를 선사하는 'Spinning'은 몽롱하게 부유하는 신디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트랙으로 반젤리스나 야니의 곡에 가사가 붙은 것마냥 신비롭고 아름다운 곡이다. 앨범 전체 내 통일성을 흐릴 수 있을 만큼 과감한 모험임에도 묘하게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그녀의 작곡 솜씨와 프로듀서의 해석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역시 그 신디 사운드의 신비로운 질감을 이어받은 채 그녀만의 미디엄 템포 스타일을 고수해내는 'All There Is'은 변조된 코러스와 변화무쌍한 진행이 뮤지컬 넘버스러운 풍성한 질감과 깊이감을 선사한다. 다시 복고지향적인 펑키 사운드로 회귀하는 'I Would B Good 4 You'는 흥겹고 즐겁고 귀에 감기는 클럽 스타일의 곡. 아니나 다를까 하우스 뮤직DJ 사토시 토미에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탄생한 노래로 그녀의 소울 충만한 파워풀하고 담백한 보컬이 섹시하게 다가온다.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래이자 앨범명과 동명의 'Purple Skies'는 역시나 펑키한 사운드와 강한 비트감의 소울 풍 미디엄 템포. 자주빛을 물들어가는 캘리포니아의 베니스 비치의 변화를 바라보며 영감을 얻었다는 것처럼 변화에 의해 도드러지는 진행이 다각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엔딩에 걸맞는 멋진 사운드.
     
    일상에서 발견한 이 작은 마법, 미셸 샤프로는 쉽게 꺼지고 사라지지 않을 영속성을 획득했다. 대중적인 기호에 완벽히 맞춰들어간 그녀의 친화적인 멜로디와 편안한 보이스 컬러는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고 이 마법의 핵심이다. 풍부한 성량과 미칠듯한 감성, 신의 테크닉만으로 가수가 완성되는 건 아니기에, 자신의 위치를 그리고 마법의 가치를 잘 파악하고 있는 그녀는 더 놀라운, 보다 감동적인, 큰 파고의 행복감으로 중무장한 채 다음 앨범을 들고 찾아오진 않을까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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