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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ETE의 'Romantico'
    책|만화|음악 2011. 3. 19. 05:24


    네스티요나(Nastyona)의 음악은 몽환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하다. 그루브함 속에 나른한 기운이 시종일관 귓가를 간지럽피곤 한다. 텔레파시(Telepathy)는 펑크와 일렉트로니카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한다. 감각적인 흥겨움이 모호한 패턴 속에 살아숨쉬고 질주한다. 둘 다 범상치 않은 음악 색깔을 지닌 인디 밴드다. 근데 이 두 그룹을 거친 베이시스트 테테(임태혁)의 솔로 EP라니, 도통 어떤 느낌일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아마도 베이시스트 특유의 리듬감으로 무장된 펑키한 락 사운드가 아닐까 그저 그렇게 막연히 상상했을 뿐. 허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이 서투른 지례 짐작은 재생지로 만들어진 디지팩을 받아드는 순간 사막의 신기루마냥 스르르 사라지고 말았다. 까끌한 특유의 도화지 느낌에 베이지톤 단색으로 콜라쥬된 그림 위에 소박하지만 장난스럽게 쓰여진 필기체는 아주, 그것도 아주 아주 아날로그틱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전에 유추할 수 있는 몇 가지 정보들이 있긴 했다. 앨범 제목 'Romantico'가 라틴어로 '낭만'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점, 수록곡 모두 'Romantic', '저녁', '야상곡', 'Last Scene' 등의 감상적인 단어로 표현되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통 밴드에 머물던 뮤지션들이 솔로로 데뷔할 때 절대 같은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지 않는다는 점까지. 왜 그땐 몰랐을까. 정말 놀랍다 싶을 정도로 테테(임태혁)는 그간 머물던 밴드들과 180도 다른 사운드로 중무장한 채 나타났다. 네스티요나와 텔레파시에서 파워풀한 리듬감을 지배하던 존재감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거친 일면을 버리고 각성(?)한 그는 부드럽고 서정적인 이미지로 변모했다. 아니 원래 이게 그의 진면목인지 모른다. 뮤지션의 변신은 언제나 무죄, 특권이 아니였던가. 사실 봄보다는 가을이라는 계절에 더 잘 어울릴법한 노래들이지만, 점점 따스해져가는 햇살 아래 피폐해진 심신을 달래줄 한 잔의 차 같은 여섯 곡의 노래들은 어쿠스틱 특유의 질감 아래 감미롭고 아름다운 아우라를 선사한다.

    보사노바, 탱고의 라틴 정서를 물씬 풍기는 첫 번째 트랙 'Instant'는 경쾌한 템포의 그루브함이 시종일관 춤을 리드하는 숙달된 남미 댄서만큼이나 매력적인 노래다. 건조한 듯 나른한 듯 읊조리는 테테의 보컬도 담백하니 좋고, 어쿠스틱 사운드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등장하는 일렉트로닉의 청량감도 시원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것이 테테다! 지장을 쾅 하고 남기는 서두로서 아주 잘 어울린다. 멜랑꼴리한 기타 사운드로 시작하는 앨범 제목과 동명의 두 번째 트랙 'Romantico'는 미디엄 템포의 리드미컬한 노래. 베이시스트로서 장기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들썩거림이라 생각하는데, 저탄산 음료를 마실 때 만큼이나 알싸하고 황홀한 목넘김의 쾌감을 선사한다.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저녁 노을 같은 세 번째 트랙 '저녁'은 집집마다 풍겨오는 밥 짓는 냄새 만큼이나 푸근하지만 외로움의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 기타의 서정적인 사운드와 애절한 보이스의 조화가 마치 누룩처럼 구수하니 작용하는 곡이다.
     
    피아노와 기타, 코러스가 스산하지만 감미로이 어우러진 'Island'는 단조로움 속에 짙은 맛이 느껴지는 네 번째 트랙. 고독과 외로움을 상징하는 동시에 목표이자 꿈이 되는 'Island'를 표현하기 위해 테테와 장유진이 함께 부른 이중적인 질감이 백미다. 안젤로 바달라멘티의 영화음악이 살짝 떠오르기도 했다. EP의 마지막 보컬 곡이기도 한 다섯 번째 트랙 '야상곡' 역시 쓸쓸한 애수와 니힐리즘의 색채가 묻어난다.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를 위주로 풀어가다 후반에 드럼과 일렉 기타가 합류하며 드라마틱한 사운드를 펼치는 마지막 간주는 꽤나 아름답다. 대미를 장식하는 'Last Scene'에 이르러서 드디어 자신의 본거지로 회귀한 듯한 성향의 일렉트로니카를 선사하는데, 사실 이것도 펑크와 뉴웨이브에 가까운 것이 아닌, 엠비언트나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에 근접해있다. 허나 멜랑꼴리한 멜로디를 헤비하지만 클래식컬하게 포장해내는 그 만듦새는 그 차거운 기계음 질감 속에서도 어쿠스틱한 분위기를 창출하는데 일가견을 보인다.

    30분이 조금 안되는 짧은 분량임에도 그간의 이력을 지워버린 채 솔로로서 자신의 스타일과 색깔을 명확히 보여준 미친 존재감은 대단하다. 어쿠스틱과 낭만이라는 테마에 걸맞게 응집력 있는 구성을 짜면서도 라틴 음악과 8-90년대 복고적인 색채, 일렉트로닉을 적절히 나누어 구사하며 변화를 주는 노련한 센스도 만족스럽다. 내공과 감각이 만나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테테, 그 황홀한 애수에 대하여 이태리 장인이 한땀 한땀 수놓은 듯한 답을 펼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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