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Mew의 'Eggs are Funny'
    책|만화|음악 2011. 3. 3. 06:21

    국내에서 팬질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않는 한 일단 접하기가 어렵고, 그 어려움을 기꺼이 무릅쓰고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 주위에서 '덕후'라는 칭호를 붙여주니, 이건 참 아스트랄한 오해고 극단적인 편견이며 취향에 대한 대중의 폭거인 셈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불편함이 주는 일종의 저주인지, 아님 대세론자들의 친절한 깨우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구나 즐기는 대중적인 트렌드 외 그 이면의 취향과 다른 문화가 숨쉬고 있다는 걸 캐치해내는 것도 꽤나 중요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대범하고도 통넓은 포용력을 갖기에 우리 대중문화 시장은 작고 열악하다. 인식과 소비가 이루어지기 전에 급격하게 변해가는 기술의 속도와 문화 풍속도는 세계의 크기와 다양성을 너무나 쉽게 한정지었다. 세상은 보기보다 넓고, 경험한 것보다 훨씬 더 크다. 더 많은 새로움이 항상 즐겨왔던 범주를 넘어 언제나 나를 놀라게 그리고 기쁘게 할 것이다. 이번 덴마크의 생소한 그룹 Mew도 그렇다.
     
    1997년에 첫 앨범 [A Triumph For Man]을 필두로 지난 14년간 5장의 앨범을 발표한 - 나름 중견 밴드의 길을 걷고 있는 그들을 첫 베스트 앨범 [Eggs are Funny]로 만난다는 게 사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감이 안 잡힌다. 지난 시간 밴드의 발달이 담긴 궤적을 모두 접할 수 없고, 앨범 안의 유기적인 흐름을 무시한 편집 앨범이라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멤버가 직접 선곡한 대표곡들이라는 점에선 신뢰가 가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보다 알기 쉬운 접근법인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들이 자신있게 내놓은 하나하나의 트랙들은 그만큼 Mew의 색깔과 성격을 더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그들의 곡을 처음 접했던 '156'과 'The Zookeeper's Boy'이 실려 있어 만족스러웠는데, 그들 데뷔 년차를 상징하는 14곡에 신곡 하나를 플러스한 풍성한 트랙 리스트마저도 기분 좋은 포만감을 선사했다. 북유럽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와 환상적인 멜로디가 변칙적이고 독특한 리듬과 조화를 이루는 순백색의 이 북구 모던락은 프로그레시브하면서도 슈게이징한 풍취가 갓 장독대에서 꺼낸 김치 포기 속 유산균 마냥 마구 살아 숨쉬고 있다.


    영롱한 기타 소리에 약동하는 드럼으로 포문을 여는 첫 곡 'Am I Wry? No'는 이들의 성격을 단박에 말해주는데, 가녀린 듯 몽환적으로 다가오는 보컬과 독특한 드럼 비트는 일반적인 모던락에서 느낄 수 없는 질감을 선사한다. 노이즈와 일렉 기타의 공습이 강렬한 묘미를 안기는 'Snow Brigade'가 그 뒤를 잇고, 미성의 보컬이 빛을 발하는 동시에 그들 음악 중 가장 대중화된 진행을 보이는 'Beach', 그 후엔 그들 특유의 엇박 리듬에 후크한 기타 선율이 서정적인 보이스 컬러와 조화를 이룬 'Introducing Palace Players'가 소개된다. 독특하게도 이 곡에서 디스코적인 색채를 느꼈다면 오바일까. 그리고 오버더빙된 듯 느껴지는 환상적인 보컬과 미디엄 템포의 드럼 비트가 아름다운 'Silas the Magic Car'가 이어진다. 스피디한 기타 속주가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Wheels Over Me'는 중간 중간 나오는 일렉 사운드와 트럼펫이 스산한 기분에 잠기게 만든다. 브릿팝 뉘앙스에 Kent를 가미한 듯한 'Saliva'는 통통 튀는 피아노 위에 펼쳐진 그들의 또 다른 일면을 상징하는 곡. 산타가 살고 있는 마을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살고 있을 그들이라면 이런 식의 북구 캐럴을 만들지 않았을까 연상케 하는 'She Came Home For Christmas'는 서정성의 포텐이 터지는 노래. 따뜻한 현악이 뒷받침해주는 것이 차갑고 무거운 현실을 사르르 녹여준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독특한 진행을 가진 'Sometimes Life Isn't Easy'는 뿌연 안개처럼 느껴지는 이펙트 걸린 보컬에 몽환적인 신디, 해맑은 코러스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곡. 이 베스트 앨범에서 처음 소개되는 'Do You Love It?'은 펑키한 기타 위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이질적인 분위기를 선사하며, 서서히 고조되어가는 기타루프의 긴장감이 인트로를 장식하는 'Eight Flew Over, One Was Destroyed'는 또 다른 그들의 음울한 매력이 잘 표현된 곡이다. 퓨전 장르처럼 구성상 전반과 후반 분위기가 돌변하는 '156'에선 우중충한 분위기 속 폭주하는 싸이키델릭 사운드가 정점에 이른다. 낭창낭한 기타에 페이즈 시프터의 몽롱함, 견고한 리듬에 다크한 색채감이 진동하는 'Special'이 소개되면 그 뒤를 이어 역시나 펑키한 기타 위에 환상적으로 울려퍼지는 보이스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아름다운 멜로디가 맞물린 'The Zookeeper's Boy'가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자 귀가 호강하는 필청 트랙. 그리고 마지막 곡 'Comforting Sounds'가 대미를 장식한다. 오랜 방황 속을 홀로 항해하는 듯한 기분의 이 쓸쓸한 서정시는 진정 Kent와 Travis를 떠올릴 정도로 인상적인 8분짜리 대곡이다. 점점 고조되어가는 진행이, 힘이 실려 폭발하는 기타 스트로크가, 증폭되는 디스토션이 시리고 또 시리다.


    유난히 춥고 추웠던 이번 겨울, 집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웅크리며 따뜻한 봄날을 꿈꾸었다. 북구의 그 수많았던 메탈 그룹과 드림팝 밴드들 역시 그러며 노래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들의 잿빛과 순백을 오가는 모던한 색채감은 비단 민족성 때문만은 아닌, 기후와 지형적인 특색에서 만들어진 산물이자 일종의 지장일 것이다. 이렇게 서늘한 매력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을 터, 라이센스된 그들의 베스트 앨범까지 나왔으니 팬질하기가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