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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유의 'Real+'
    책|만화|음악 2011. 3. 10. 04:05

    작년 말부터 올초까지 그야말로 '아이유 신드롬'이었다. 하루 자고나면 쉴새없이 패러디돼 쏟아져나오던 3단 콤보 움짤은 물론, 그녀가 직접 부른 가요프로 라이브 영상은 연일 화제였다. 그리고 그 관심은 드라마 [드림하이]까지 이어져 출연 분량과 비중이 늘어난 건 물론, 급기야 전혀 상관없을 법한 어느 유치원 홈페이지까지 마비시키고 말았다. 문근영도 그렇고, 김연아도 그렇고, 새천년을 맞이한 이래 유난히 국민 여동생에 열광해 온 대한민국 여론상, 이 아이유 광풍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기세다. 평범하기 그지없었던 어느 소녀 가수가 어떻게 연예계 화제의 중심이 되었을까. 그 조짐의 시작은 슬옹와 함께 한 '잔소리'부터였다. 물론 그 전에 발표한 'Boo'와 '마쉬멜로우'가 챠트에서 나름 선방하며 아이유의 존재를 알리긴 했지만 통통 튀는 어린 가수 이상의 매력을 심어주지 못한 반면, '잔소리'는 슬옹의 희생(?)적인 서포트 속에 완전 아이유에게 커스티마이징된 곡이었던 것이다. 발랄한 템포에 쉽게 각인되는 멜로디, 남녀 각자의 입장이 드러나는 유쾌한 가사 그리고 깜찍하면서도 허스키함이 묻어나는 매력적인 음색까지.
     
    여기에 기름을 붇고 부채질하며 방점을 찍은 건 3단 부스터의 그 곡 '좋은 날'이었다. 그 수많았던 아이돌 그룹들과 리얼리티쇼 우승자들을 단번에 KO시키고, 연말과 연초 가장 상종가를 기록한 소녀감성 충만한 이 곡은 '잔소리'에 이어 오빠 판타지를 충족시키며 섹시하지도 명품 몸매를 지니지도 않은 아이유에 열광하게 만들었다. 경쾌한 미디엄 템포에, 대중친화적인 멜로디, 짝사랑의 설레임이 가득 담긴 풋풋한 가삿말에, 뚫어 뻥! 마냥 쫙쫙 뻗어가는 시원스런 가창력까지 '잔소리'와 비슷한 공식을 대입한 이 노래의 성공 신화는 아이유의 매력과 본질을 명확히 꿰뚫어 본 프로듀서 조영철과 작곡가 이민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과연 아이유는 어디로, 또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이번에 새로 나온 싱글 앨범 'Real+'에 있다. 마치 6곡 7트랙이 담겼던 전작 'Real'의 서비스팩과 같은 개념의 이 EP 후속앨범은 단촐하니 딸랑 3곡만 담고 있는데, 단촐하단 말이 우습게 들릴 만큼 지명도를 갖춘 작곡가 윤상과 피아니스트 김광민이 힘을 보태고 있다. 과감하게 그간 인기를 끌던 업템포에서 벗어나 마이너 발라드를 선보이고 있단 점에서 변신의 의지도 엿볼 수 있고.


    그런 첫 곡 '나만 몰랐던 이야기'는 전형적인 윤상표 발라드라 부를만 하다. 뮤직박스 음색으로 시작하는 신디와 풍부한 스트링의 조화는 물론, 감정을 절제한 채 스산한 우수를 꾹꾹 눌러담아낸 서정적인 매력이 과거 90년대 강수지가 부른 노래들과 상통한다. 가녀린 듯 깨어질 듯한 강수지의 투명한 보컬과 달리 허스키한 음색과 풍부한 감수성을 갖춘 아이유가 과연 이런 윤상표 발라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듣기 전에 살짝 의심도 했지만, 역시나 불필요한 기우였다. 아이유는 3단 부스터 고음 없이도 이런 먹먹한 감성이 담긴 상실감과 이별의 끝없는 깊이를 담아냈다. 그것도 나이가 살짝 의심될 정도로 성숙하고 아름답게. 이처럼 스펙트럼이 넓은 가수였나 찬탄하는 동시에 그녀가 강수지의 발라드들을 리메이크한다면 어떨까 상상까지 해보았다.
     
    두 번째 곡 '잔혹동화'는 장중한 스트링과 코러스가 왈츠풍으로 어우러지며 일렉 사운드가 인상적인 비트감을 심어주는데, 같은 재료를 가지고 윤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선보인 세인트 바이너리의 취향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곡이다. 트립합과 드럼앤 베이스 성향의 모던한 일렉 사운드를 구사하던 그인지라 이런 클래시컬한 스타일이 상당히 놀라운데, 첫 곡의 미니멀한 스타일을 날려버리겠다는 듯 작정하고 드라마틱한 구조를 갖춘다. 그러나 아이유의 보컬만큼은 여전히 힘을 뺀 채 투명한 색채감을 유지하는데, 후렴구에 이르러 터지는 코러스 또한 일방적인 고음보다는 중저음역대의 호소력 짙은 보이스 컬러를 강조하고 있다. 이전 앨범이 양이고 빛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음이고 어둠을 상징하듯 전체적으로 씁쓰레하고 음울하다. 그리고 그 느낌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트랙을 장식하는 건 첫 곡이었던 '나만 몰랐던 이야기'의 김광민 피아노 연주 버전. 섬세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담긴 그의 담백한 연주로 편곡된 노래는 아이유의 가감없는 호소력짙은 음색과 어우러지며 이별가에 걸맞는 분위기를 조성해낸다. 마치 과거 '지구에서 온 편지'나 'Rainy Day'를 떠오르게 할 만큼 절제된 슬픔의 미학이 유감없이 표출된 곡.


    정상의 위치에서 답습을 거부하고 새로운 지점으로 나아가는 아이유의 변신은 '잔소리'와 '좋은 날' 2연타 이후 예고된 것이었지만, 그 예상을 넘어 좋은 퀄리티와 탁월한 만족감을 안긴다. 2011년에 가장 잘 나가는 가수에게서 맛볼 수 있는 90년대 향수라니. 그 감성을 새롭게 포장해 음악적 완성도를 높인 조영철 프로듀서의 혜안에, 이를 이토록 놀랍게 해석해낸 아이유에게, 그리고 멋지게 서포트해준 윤상과 세인트 바이러리, 김광민에게 박수를 보낸다. 과연 대세는 아이유다. 진리의 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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