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
한 해의 온도.잡담 2010. 12. 30. 04:49
한 해가 저문다. 계절이 티를 내며 세상을 덮는다. 옷깃을 세우며 찬 공기를 막아보지만 어김없이 한기가 스민다. 빨라지는 걸음을 따라 거리에 새겨지는 자국이 촘촘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새 앞서 있던 그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미끄러워 넘어질까 서로 잡고 가는 모습이 조심스럽고 굼뜨다. 넓게만 느껴지던 저 우직한 등판과 언제나 따뜻해 보이던 가슴 품 안이 왜 이리 좁고 서늘해 보이는지. 시간의 온도 차가 매섭다. 보폭이 따라 느려진다. 다가가 슬며시 내 손을 내민다. 이제야 속도를 맞출 수 있게 된 이 길이 조금만 길었으면 싶다. 머리에 어깨에 얹은 흰 것이 눈발 때문만은 아니겠지 생각한다. 내 마음 속 한 해 한 해의 온도가 조금씩 떨어져간다.
-
합정동 크레인 붕괴 사고.잡담 2010. 10. 6. 18:38
잠이 덜 깬 상태로 앉아있는데 지축이 울린다. 국군의 날 기념 편대 비행을 되풀이하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동네 지하철 앞 아파트 건물 공사 크레인이 무너진 소리랜다. 옥상에 올라 내다보니 엿가락 마냥 휜 채 주저앉은 몰골이 참상을 대변하듯 을시년스럽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던 날이라 내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일텐데, 곧바로 들리는 사망자 소식에 가슴 한 켠이 무거워진다. 익숙한 공간 바뀐 풍경에 쉬 잊어버리겠지만, 넋은 남아 책임을 묻고 있을 것이다. 스산한 기온만이 조용히 대꾸하는 현실에 목이 메어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3월의 사건.잡담 2010. 3. 11. 15:02
예전엔 안다고 생각했던 게 요즘은 통 모르겠다. 너무도 많은 정보 같지 않은 정보들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정으로 연결되기에, 그저 희생자들만이 무수히 양산되는 과정만 목도할 뿐이다. 이젠 추측과 음모론, 그리고 권력과 당파싸움이 연계돼 내리는 '자기만의' 단정은 꼴도 보기 싫다. 대중으로 호도(糊塗)하는 마녀 재판과 집단적 이지메도 신물이 난다. 지금 시대에 객관이라는 걸 요구하는 자체가 무리인줄 알지만, 설레발과 호들갑으로 점철된 여론들마저 '깝'치는 상황은 매일매일이 안습이다. 진실을 그리고 범인을 알고 싶다. 반복되는 아동성범죄에서 가장 필요한 조취는 화학적 거세뿐. 시도 때도 없이 발정기라고 나대는 것들이 동물과 다를 바 뭐 있겠는가. 동물에게 인권 운운하는 것조차 아깝다.
-
지진.잡담 2010. 2. 9. 19:07
순간적인 떨림에 누군가 밖에서 공사하는 줄 알았다. 아니면 아래층에서 쿵쾅쿵쾅 뛰던가, 짐을 옮기던가. 근데 그 떨림이 멈추자 여태까지 느끼던 층간 진동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마치 배에 탔을 때 느끼던 그 출렁거림이다. 상하좌우의 중력운동이 감지되는. 아! 돌이 깨우치는 탄식과 함께 뒤늦게 찾아온 깨달음, 지..지진이구나!! 시흥 쪽에서 8km 떨어진 곳에서 6시 8분쯤에 발생한 진도 3.0의 지진. 서울에서 이 정도 진폭은 처음 관측되는 거라던데, 아이티의 지진이 어느 정도였는지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무섭다. 자연재해는 역시나 무서워. ㅠ_ㅠ ps. 불쌍한 지진희와 최여진...;;;
-
불리한 전쟁을 시작합시다.잡담 2009. 10. 2. 01:02
불리한 전쟁을 시작합시다. 적이 우리보다 수만배쯤 강하다고 생각합시다. 우리에겐 상식도 무기도 부족하고 정부도 법률도 우리편이 아니라고 생각합시다. 가장 용맹한 검찰마저 심신미약이란 만취 속에서 죽어갔으며, 성폭력의 함대는 사회에서 여전히 활개친다는 불리한 전황들을 직면합시다 어처구니 없는 전쟁을 시작합시다. 학교에도 이 사회에도 버젓이 들어와 번지고 있고, 서서히 여성의 희망을 밟아가는 적들과 싸워 나갑시다. 그들의 욕망와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새까만 씨앗들이 겨울을 견디어내듯 조금씩 이겨 나갑시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전쟁을 시작합시다.
-
내 하얀 토끼들은 어디로 갔나.잡담 2009. 6. 19. 02:55
반장이라고 못봤어, 안봤어, 안보여 우이독경 맘대로 하는 녀석이나, 그 꼴 못보고 장외투쟁한다며 교실 바깥으로 뛰쳐나간 학급위원이나, 주번 주제에 모여 떠드는 얘들도 없는데 칠판에 이름 적어 벌금 걷는 새끼나, 설왕설레 마구잡이로 반 소식을 반장과 짜집기하던 교지 편집위원이나... 모두 맘에 안들었다. 이런 교실은 항상 편 가르기와 위협, 싸움에 위쪽의 또 다른 독재권력인 담임선생이 핵방망이 몽둥이를 들고 막무가내로 개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만 피해자에, 희생자였지. 분위기도 좆같고. 왜일까. 그냥 문득 지랄같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