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
오늘의 날씨.잡담 2012. 8. 31. 04:53
습기를 잔뜩 머금은 잿빛 하늘은 동네 서예학원에서 못쓰는 글씨를 어떻게 하면 감출 수 있을까 고민하며 마주하던 엄숙한 화선지를 닮았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 종이는 까끌까끌하니 성글고 메마른 회색이었다면 저 무겁도록 낮은 하늘은 손가락을 살짝 찌르면 금방이라도 먹물을 흘릴 듯 젖어있다고나 할까. 핫요가 부럽지 않던 무더위가 물러가버리고 찾아온 건 두 개의 태풍과 내 방 선풍기 바람보다 더 센 강풍 그리고 미칠 듯 불유쾌한 습도였다. 그런 변화가 제법 몸에 익을 나이때도 됐지만, 언제나 계절이란 내 기대보다 빠르거나 혹은 늦곤 했다. 그리고 그건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어김없이 계절이 지나간다. 인터벌 촬영 속 화면처럼 주르륵 흐르던 변화무쌍한 구름이 오늘의 날씨를 이야기한다. 영원히 맞추지 못할..
-
제임스 맥티그의 '닌자 어쌔신'영화|애니|TV 2009. 11. 30. 00:37
아메리칸 닌자의 부활인가. 노우. 코리안 닌자다. 캐스팅 명단만 훑어봐도 닌자의 나라 일본보다 한국인이 더 많다. 아무렴 어때. 머리 까만 동양인이면 되지. 아니 차라리 전 세계 각국 고아를 불러모아 세계 속의 닌자를 양성하는 거야. 이 심보로 만든 전형적인 할리우드 오리엔탈리즘 시각의 이 액션 판타지는 국가나 역사적 의미에 대해 별 신경쓰지 않는다. 하물며 여기에 등장하는 닌자조차도 슈퍼히어로의 변종일뿐, 그 오리지널리티와 매력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뻔한 클리셰들로 뒤얽힌 습자지같이 얄팍한 줄거리의 이 영화에서 남는 건 오로지 피칠갑 고어의 향연이 된 액션뿐. 정신없이 난도질되어 가는 프로틴 덩어리와 헤모글로빈의 홍수 속에서 그저 아드레날린을 방출하는 묘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물론 비의 성..
-
장마의 시작.잡담 2008. 6. 16. 23:47
장마가 온다. 어느 때랑 다름없이. 하늘이 담배재 색깔로 물드는 걸 보니 확실히 그럴 것 같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집 안에 갇혀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 빗방울을 맞으며 신나게 춤이라고 추면 낭만스러울 듯 하지만, 몸치에다 머리 빠질 걱정이 먼저 드니 그저 동동주에 파전을 꿈꾸는 게 더 나을 듯 하다. 비가 싫다. 그 눅눅함이 싫고, 처량맞게 들리는 소리도 싫다. 우산을 들어야 하는 것도 신발이 스멀스멀 젖어들어가는 것도 맘에 안든다. 장마는 감옥이다 내게. 끔찍스런 형벌이고, 갑갑한 구속이다. 침전되는 기분을 안고 거추장스런 장식 달린 옷을 입고 디스코 추는 그런 불편함이다. 이번 장마는 부디 짧았으면. 차라리 파란 하늘에 어질어질 내리쬐는 햇볕의 살인 무더위가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