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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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안 펀치 트렁크.잡담 2009. 8. 30. 23:59
여름이 끝나가는 무렵 알록달록 꽃무늬 반바지를 샀다. 비록 올해는 해안가 모래사장에서 어여쁜 아가씨들의 뭇 시선을 끌며 차거운 도시 남자의 마력을 내뿜을 기회조차 없었지만, 언젠간 그럴 수 있겠지 아쉬움을 고이 접어 나빌레라 싶었다. 이국적인 따뜻한 남쪽 섬나라 모래사장에서 서핑하는 금발 미녀들을 바라보며 인생을 논하는 그런 나날을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며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옥상 위 푸른 하늘 아래서 떠올렸다. 현실은 시궁창 같은 방구석. 하아. 기분이라도 내주는 내 빨간 하와이안 펀치 트렁크가 그저 고마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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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잡담 2008. 6. 13. 23:36
어렸을 땐 이 세상 사람이 엄마랑 나, 단 둘로만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었다. 아버지도 형도 할머니와 고모도, 그리고 친구도 모두 엄마가 특수한 탈을 뒤집어쓰고 나를 시험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 세상은 그런 거라고 그러니까 너무 주눅 들 필요없다고 되네이곤 했다. 그래봤자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모두 엄마의 다른 모습일뿐이야 그렇게 자신에게 위안 삼곤 했었다. 가짜일뿐이라고, 엄만 다 알고서 모르는 척 한 거라고, 난 다른 방식의 '트루먼 쇼'를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게 믿기엔 내 머리와 세계관이 너무 넓어지만. 저 많은 곳의 불빛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걱정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겠지. 아니, 엄마가 새로운 모습으로 날 만날 탈을 고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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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핸드폰 망상 세가지.잡담 2008. 5. 29. 23:24
1. 어느날 오른쪽 넓적다리 근육이 이상하다. 뻐끈한 게 다리도 무겁고 해서 병원에 찾아갔더니 의사 내게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종양입니다. 핸드폰 전자기파로 인해 세포 조직이 괴사하고 있네요.' 으아아아. 맨날 핸드폰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녔더니 이런 무서운 결과가! 2. 거리를 걷고 있는데 사람들이 날 보고 쑥덕거린다. 뭔일이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걷고 있는데, 문득 오른쪽 넓적다리가 뜨겁다. 내려다 봤더니 김이 모락모락, 이내 불이 확 붙는 게 아닌가. 설마 자연연소? 아니다. 불량 배터리로 인한 폭발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으아아아. 맨날 핸드폰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녔더니 이런 무서운 일이! 3. 지하철에서 깜빡 졸다 오른쪽 넓적다리에 기척을 느꼈다. 옳거니. 핸드폰 진동이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