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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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시마 미카의 'STAR'책|만화|음악 2010. 12. 2. 07:51
내게 있어 가장 완벽한 여성의 롤모델을 처음 발견했던 건 학교에서 흔히들 돌려보던 야한 잡지 속 모델도 아니고, 그 또래의 인기 있던 여학생도 아닌, 중학생 때 본 어느 만화 속에서였다. 정확하게는 B자 테이프에 녹화된 애니메이션 속 여자 주인공이었는데,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기타 피크를 입에 물고 남성과 주먹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뻑- 갔다고 하는 게 맞을 성 싶다. 그전까지 물론 메텔이나 오로라 공주, 혹은 각종 요술봉을 휘두르며 알몸으로 변신하던 소녀들과 순정만화 속 비련의 - 그러나 한편으론 은하계를 듬뿍 담은 눈망울의 여주인공들에게 환호를 보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환상 속의 그대였을뿐 현실의 롤모델로 생각해본 적은 추호도 없었다. 헌데 그 불량 소녀가, 평면적인 셀화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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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즈 앤 선즈의 'Good Morning Mother'책|만화|음악 2010. 11. 18. 07:32
차거운 바람 속 유난히 반짝이는 햇살의 산란에 눈이 부시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봄이 오길 기다린다. 시린 감성과 매마른 열정에 불을 붙여줄. 그 시기를 기약하며 점점 더 겨울잠에 빠져든다. 비실비실 추위에 하나 둘 죽어가는 늦가을 모기마냥. 그래서 이맘때 듣는 팝사운드는 특별하다. 둔해진 움직임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귀로 들어와 과다 활동성의 에너지를 투하할 녀석들로 고르게 되니까. 머리 속에서 터지는 파워풀한 음의 마술은 계절이 만들어낸 잠자는 미녀의 독사과를 순식간에 갈아 없애 버린다. 질주하는 기타 스트로크는 시베리아 기단 칼바람보다 매섭고, 영혼의 심장을 두드리는 둔중한 드럼 비트는 홋가이도 폭설보다 강하다. 계절을 이기는 팝은 네 번 타는 보일러 못지 않게 뜨겁다. 그리고 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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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리오의 '오아시스를 만날 시간'책|만화|음악 2010. 11. 13. 02:06
한때, 아주 정말 한때 음악을 해야겠다 맘먹은 적이 있다. 그건 계시였다. 기타 코드도 못잡고, 양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눌러본 적도 없으며, 절대음감은 커녕 화음넣기나 돌림노래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면서 말이다. 댄스와 힙합, R&B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브릿팝에 열광하던 이십대의 난 멍청할 정도로 무모했고, 황당할 정도로 게을렀다. 그러면서 꿈꾸기를 그치지 않았으니 세상만사 쉽게 적응할 리 없었다. 대체복무시절 어설프게 화성학 책을 보며 공부하던 동갑내기 후임과 박사를 준비하던 나이 꽤 드신 시간제 강사 후임을 꼬드겨 카피밴드부터 차근차근 밟아 나가겠다 작당까지 했었다. 록스피릿만 있으면 그까짓 연습이야 전혀 문제 없을거라 여겼다. 매력적인 보이스와 비주얼은 갖추지 못했지만, 솔직히 믹 재거나 노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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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즈 엔드 걸프렌드의 'Seven Idiots'책|만화|음악 2010. 11. 9. 03:19
어느 정도 음악을 접하고 선택하는 경우는 예외겠지만, 한 번도 듣지 않은 CD를 처음 받아들 땐 묘한 기분에 사로 잡힌다. 비닐을 벗기고, CD를 올려놓고, 이어폰을 꽂으며, 플레이 버튼을 누를 때까지 그 짧은 시간동안 약간의 설레임과 약간의 두려움이 공존하는 것. 이 음악가와 오래 공명하게 될지, 아님 그저 장식장의 장식품이 되어버릴지, 첫 음이 귓가에 울려퍼지기 전까지 상당한 긴장감이 방광을 죄어오는데, 그 쫄깃한 기분이야말로 진정한 음악의 카타르시스가 아닐까. 가츠히코 마에다의 원맨 밴드 World's End Girlfriend(이하 WEG) 신보를 받았을 때 역시 수많은 감정들이 머리 속을 헤짚었다. 생각보다 어두운 자켓 이미지에, 우중충한 스테인드 글라스 무늬의 CD 프린팅, 핏빛으로 적힌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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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의 'Woman Being'책|만화|음악 2010. 11. 6. 19:59
내게 박기영은 '블루 스카이'로 '시작'된다. 세기말 그 시절엔 자우림과 더더(박혜경), 소찬휘와 김현정, 서문탁 등 쟁쟁한 여성 보컬들이 저마다 군웅할거하던 낭만이 존재했다. 물론 그 속엔 가녀린 몸에 이쁘장한 얼굴로 명징한 기타 사운드에 맞춰 깔끔하고 힘찬 목소리로 사랑과 젊음을 노래하던 그녀도 있었다. 비록 1집은 쉽게 기억나진 않지만 2집과 3집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들꽃의 향기를 내뿜던 그녀는 신선했다. 밴드에 소속되지 않은 보기 드문 여성 솔로 로커이자 싱어송라이터로 규칙적이진 않지만 꾸준하게 20대라는 큰 도화지 위에 자신의 색깔을 채워나간 그녀는 '산책'과 '나비', '그대 때문에' 그리고 몇몇 디지털 싱글로 여전히 현역임을 증명해냈다. 그리고 올 가을 결혼과 함께 자신의 일곱번째 앨범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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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V의 '집행유예'책|만화|음악 2010. 10. 22. 06:21
지금 와서 솔직히 고백하건데 90년대초 댄스와 블랙뮤직이 가요계를 침공했을 때 난 꿋꿋이 015B와 이승환 그리고 이른바 동아기획이라 불리는 언더의 음악을 선호했다. 윤종신과 이장우, 김돈규 등의 객원가수제에 환호했고, 더클래식과 이오공감 오태호에 박수를 보냈으며, 푸른하늘과 박학기, 장필순과 김현철, 봄여릉가을겨울 정돈 흥얼거려줘야 음악실에서 껌 좀 씹었구나 찬탄하는 수준이었다. 춤추고 랩하는 건 저기 학급 뒷분단에 앉아 슬랭을 쓰며 분위기 잡던 친구들이 열광하는 거지 가요계에서 음악성 완성도 운운하려면 보편적으로 남들 잘 듣지 않는 노래를 꿰차고 있어야 한다는 - 일종의 허세에 레알 쩔었던 셈이다. 허나 그 이면 숨겨진 사실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건 내가 심각한 몸치/박치라는 것이었다. 춤추다 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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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GBONG의 'Leaving U'책|만화|음악 2010. 10. 2. 07:21
살인도 추억이 되는 80년대 중반부터 교주 서태지가 나타난 90년대 중반까지 질풍노도로 내달렸던 내 젊은 시절, 고무줄로 간신히 고정시킨 구닥다리 워크맨 속 카세트 테잎엔 언제나 그 피 끓는 영혼을 달래줄 (라디오 방송에서 갓 녹음한) 발라드가 자리했었다.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 신해철의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장미' 그리고 예능 늦둥이가 아니라 발라드 늦둥이였던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까지. 현재의 소몰이 창법이 판을 재패하고 대세가 되어버린 R&B와 전혀 다른, 한국식 발라드가 있었다. 애절한 멜로디에 드라마틱한 악곡, 처량맞은 분위기의 가사, 그리고 진심이 묻어나는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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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플레이의 '투셰모나모'책|만화|음악 2010. 9. 26. 04:35
9월의 끝자락 기록적인 폭우가 퍼붓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마치 이게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 날이 많이 차가워졌다. 뜨거운 햇살에 열대야가 작열하던 늦여름의 기세가 엊그제 같은데(아니 진짜 엊그제는 그랬다!), 확 변해버린 기온에 당황하며 부랴부랴 긴 팔 옷을 꺼내들었다. 이제 가을이고, 겨울인가? 몸과 마음에 직접적으로 다가온 환절기를 만끽하며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 찾게 된 품목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뜨끈한 오뎅 국물과 따뜻한 호빵, 아님 붕어빵에 연인의 작디 작은 손과 손수 짠 목도리, 떨어진 오색의 낙엽 빛깔에 발 아래로 밟히는 바스락 소리. 그리고 이 모든 걸 푸근하게 감싸줄 이어폰에서 나즈막이 흐르는 재즈 선율까지. 인터플레이 2집을 만난 시점은 그렇게 너무나도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가요에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