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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바다의 'City Complex'
    책|만화|음악 2010. 12. 8. 18:09

    한 해가 저물어간다. 이뤄놓은 것도 없는데 이미 가버린 시간들이 류현진의 낙차 큰 써클 체인지업을 보는 듯 하다. 아직은 젊다고 이를 악물고 되네여 보지만, 그 놈의 12간지 숫자 앞에서 능력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을 뿐. 적어도 한국에선 나이에 걸맞는 순리를 따라가길 종용하니까. 그렇다면 100%다. 올해도 혼자 아쉬움을 가득 품은 채 오이도 앞바다에서 해넘이를 보며 주먹을 불끈 쥘 것이다. 아무도 없다면 이렇게 소리치겠지. 안녕, 더럽게도 재수없던 2010년아(절대 발음주의)!! 그리고 싸늘한 바다 바람 앞에 핑 도는 눈물을 애둘러 감추며 이어폰에서 나오는 음악을 BGM 삼아 개폼 잡고 내년을 설계할거다. 청승 맞은 노래도 괜찮고, 무드를 타도 좋을 거 같고. 때론 경쾌한 밴드의 달달한 사랑 이야기도 힘이 되지 않을까. 그래, 괜히 우울한 곡 듣다 충동적으로 뛰어내리면 OECD 자살률 1위 타이틀 방어에 도움만 주는 셈이니 그 편이 낫겠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바다 앞에서 '안녕바다'보다 더 잘 어울릴 만한 선택이 또 어디 있겠나.
     
    얼핏 들으면 경쾌하고 흥겨운 노래가락이 'FT아일랜드'나 'CN블루'같은 트렌드 속 아이돌 보이밴드를 떠올릴 법도 한데, '안녕바다'는 그보단 연식이 조금 더 있는 양반들이 모인, 2006년 결성된 '난 그대와 바다를 가르네'를 모태로 삼은 인디밴드다. 작년 이맘 때 첫 미니 앨범을 선보이고, 여러 드라마 OST에 부분 참여하긴 했지만 또 일년이 꼬박 흐른 지금에야 정규 1집을 냈으니 상당히 늦은 데뷔를 치룬 셈이다. 그러나 이에 비례해 곰삭은 실력과 찰기 진 호흡으로 이뤄진 팀웍이 어디로 도망가지 않았으니, 무늬만 밴드인 팀들에 비해 듣는 재미와 완성도를 갖췄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더욱이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 전체적인 앨범을 프로듀스한 W(Where The Story Ends)의 역량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더라도 - 밴드 사운드에 일렉트로니카를 결합시킨 입체적인 색채감이다. 이는 전체적인 곡을 작업한 나무의 역할만큼이나 프로그래밍 및 키보드를 담당하고 있는 대현의 능력이 크다는 반증일텐데, 실질적으로도 나무 다음으로 가장 많은 곡에 참여해 유기적인 사운드를 뽑아내었다. 꽉 짜인 연주와 독특한 보이스컬러가 어우러진 이 중고(?) 신인의 앨범은 새벽녘 신문을 가질러 나갔다 만나는 출근길의 상큼한 향수 내음 만큼이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1. Never Stop
    음료수 이름이 아니다. '안녕바다'의 첫 트랙이다. 하지만 통통 튀는 보컬과 강렬한 기타 스트로크, 힘있는 드럼, 맛깔스런 신스가 어우러져 에너지 음료 못지 않게 활력을 충전시켜준다. 젊은 패기를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직설적인 가사와 고막에 쏙 파고드는 쉬운 멜로디 라인이 에피타이저 만큼이나 입맛을 돋군다.
     
    2. 내 맘이 말을 해
    미니 앨범에 실렸던 곡을 새롭게 편곡한 버전으로 전면에 일렉트로니카적인 색채가 짙게 묻어난다. 마치 강렬한 사운드에 당의정을 입혀 중화시킨 듯한 느낌인데, 그 절충안이 꽤나 재미있는 결과를 낳았다. 다소 기타 사운드가 신디에 묻히는 감이 없진 않지만, 그 공존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증폭이 가사 속 아련히 남은 감정의 아쉬움까지도 표출해낸다. 타이틀 곡으로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에 삽입되기도 했다.
     
    3. 창 밖은 평화로운 식탁
    어쿠스틱 기타에 나무의 편안한 보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제목만큼이나 따사로운 감정을 노래한다. 상대방으로 인해 변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해 놀라워 하며 조심스레 고백하는 가삿말이 다소 간지럽긴 하지만 소박한 연주와 힘을 뺀 보컬이 만나 풋풋한 감수성을 디테일하게 살려준다. 맑은 피아노와 멜로디언, 우클렐레 등의 음색들이 정감어리게 다가온다.
     
    4. You & Me
    이 앨범에서 상큼 발랄 경쾌함을 대표적으로 책임지는 곡. 영롱한 멜로디 라인에 촘촘히 박힌 기타, 리드미컬한 드럼비트 그리고 달달한 가사가 비빔면 비비듯 잘 버무려져 듣는 이의 오감을 새콤달콤하니 자극한다. 가사만큼이나 아찔한 행복감이 전해져 오는데, 후렴구의 'You & Me & You & Me & We Sing'이 청신경에 각인될 만큼 중독적이다.
     
    5. 오늘도 생각이 나네요
    서늘한 엠비언스, 단조의 건반이 무겁게 짓누르며 우수에 찬 사운드를 들려준다. 기억에 함몰되어 가는 고통 그리고 집착에 대한 아픔이 숨겨진 담담한 가사를 가성으로 소화해낸 나무의 보컬이 에스프레소마냥 까끌하게 느껴진다. 백킹 보컬이 오버레코딩되며 회환과 비애감을 증폭시키는 게 수록곡 중 가장 가라앉은 분위기를 선사한다.


    6. 청혼 
    드라마 [장난스런 키스]에 삽입되기도 했던 복고지향적인 락큰롤로 영화 주제가 'That Thing You do'를 떠올릴만큼 흥겹고 사랑스럽다. 심플하고 매력적인 멜로디와 닭살 돋을 만큼 직설적인 가사가 너무나도 달달하게 느껴지겠지만, 바로 전 트랙의 우울함과 기름기를 걷어낸 나무의 상콤한 보컬이 고칼로리의 당도를 그나마 낮춰준다. 청혼하기엔 다소 가벼워 보이지만, 그 들뜬 사랑의 열병을 잘 표현한 곡.
     
    7. Fight Club
    '내 맘이 말을 해'처럼 전면에 깔리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에서 쉽게 눈치 챘겠지만, 키보드와 프로그래밍을 담당한 대현이 공동 작곡한 곡으로 그루브한 베이스와 파워풀한 비트감이 인상적이다. 숨지말고 자신을 믿고 현실과 맞서 싸우라는 가사가 호소력 넘치는 나무의 보컬과 어우러지며 독특한 질감을 갖는데 굉장히 매력적이고 흥겹다.
     
    8. 별 빛이 내린다
    역시 이전 미니 앨범에 실려있던 곡으로 이들이 단순한 어쿠스틱 인디 밴드가 아님을 증명해낸 범코스믹한 사운드가 일품이다. 나무의 아름다운 멜로디도 환상적이지만, 이를 정말 별빛이 쏟아져 내릴 것처럼 형상화시킨 한재원과 김상훈의 편곡 또한 최고다. 그들은 이미 W 2집에서 '은하철도의 밤'으로 놀랍도록 낭만적인 코스믹 판타지를 완성해낸 바 있다. 샤랄라라의 후렴구가 허공에 흩뿌려지며 찬란하게 반사되는 음의 스펙트럼은 가히 '안녕바다'의 백미다.
     
    9. 눈물바다
    모호하면서도 중의적인 가사, 애절하니 갈구하는 창법, 풍부하게 깔리는 신스 스트링까지. 이 모든 게 용광로처럼 녹아들며 '안녕바다'표 락발라드를 들려준다. 마치 넬을 떠올리게 만드는 감수성이 묻어나기도 하는데, 시원스레 내지르는 나무의 보컬이 애절함과 청승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며 젊은 날의 이별과 추억을 복기한다.
     
    10. Liar
    단촐한 키보드에, 조금조근 쌓이는 보컬, 거기에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베이스와 기타 리프, 마지막으로 방점을 찍는 드럼 합주는 마치 80년대 복고지향적인 사운드를 듣듯 촌스럽지만 강렬하다. 심플한 진행과 훅(Hook) 있는 후렴구가 매혹적으로, 여기에 백킹 보컬까지 오버 레코딩돼 점차 상승하다 한순간 다시 단촐한 키보드로 돌아오는 수미상관식 구조는 뻔하지만 듣는 재미를 준다.


    11. 베개를 적시다
    베이스를 담당한 명제가 참여한 곡으로 모던한 신스가 전반에 깔리는 세련된 발라드. 홀로된 심정을 고백하듯 읊조리는 초반과 달리 후반에서 먹먹하게 휘몰아치는 폭발력이 눈여겨 볼 만하다. 그러나 앞선 '눈물바다'와 달리 절제된 나무의 보컬이 베개를 조용히 적시는 눈물처럼 아스라히 놓칠 것 같은 감정을 풀어놓는 게 가슴 저민 그리움을 잘 담아내고 있다.
     
    12. City Complex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곡으로 도시의 환락과 이면을 다룬 가사를 브라스 섹션이 참여해 앞선 곡들에선 전혀 느껴보지 못한 펑키한 빅밴드 스타일의 음악으로 풀어내고 있다. 스카 밴드의 흥겨움을 고스란히 담아낸 듯한 이 뮤지컬 넘버스러운 트랙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이질적이고도 유쾌한 시도로 다가오는데, 마치 그들이 정형화된 밴드로서 이미지를 거부하고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기 위해 마지막으로 수록하지 않았나 착각하고 싶을 정도다.
     
    알록달록 앤디 워홀의 팝아트를 떠올리게 만드는 자켓 이미지만큼이나 톡톡 튀는 수록곡들로 자신들의 컬러를 유감없이 표출한 이들의 데뷔 앨범은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준비된 은둔(?) 고수 실력자들이 좋은 프로듀서를 만나 화려하게 꽃 피우는 걸 바라보는 것 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곡들간의 통일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 프로듀싱의 옥의 티긴 하지만, 밴드 음악과 일렉트로니카를 접목시킨 이종교배의 사운드는 풍성하고 다채롭다. 오랜 기간 기다렸던 것과 달리 다음 행보는 빨라질 수 있을까. 팬들에겐 부디 Bye가 아닌 Hello 바다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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