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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카시마 미카의 'STAR'
    책|만화|음악 2010. 12. 2. 07:51

    내게 있어 가장 완벽한 여성의 롤모델을 처음 발견했던 건 학교에서 흔히들 돌려보던 야한 잡지 속 모델도 아니고, 그 또래의 인기 있던 여학생도 아닌, 중학생 때 본 어느 만화 속에서였다. 정확하게는 B자 테이프에 녹화된 애니메이션 속 여자 주인공이었는데,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기타 피크를 입에 물고 남성과 주먹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뻑- 갔다고 하는 게 맞을 성 싶다. 그전까지 물론 메텔이나 오로라 공주, 혹은 각종 요술봉을 휘두르며 알몸으로 변신하던 소녀들과 순정만화 속 비련의 - 그러나 한편으론 은하계를 듬뿍 담은 눈망울의 여주인공들에게 환호를 보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환상 속의 그대였을뿐 현실의 롤모델로 생각해본 적은 추호도 없었다. 헌데 그 불량 소녀가, 평면적인 셀화 속에서 움직이는 하나의 허상이 그렇게 완벽한 리얼리즘의 판타지를 심어주는 순간, 오덕페이트보다 십수년 먼저 아! 찬탄을 불러일으키고 만 것이다.
     
    나카시마 미카를 처음 본 순간에도 그랬다. [스타탄생]을 떠올릴 법한 일드 [상처투성이의 러브송]에서 연기한 좌충우돌 질풍노도의 그 모습이 과거 기억과 오버랩되며 아무 경력도 배경도 없던 그녀를 머리 속에 각인시킨 것이다. 연기는 다소 어색했지만, 도무지 17살이라곤 믿겨지지 않은 농익은 창법에, 감정을 담아낸 노래만큼은 완벽한 여가수의 롤모델을 만나는 것 같았다. 아니 대체 이런 얘가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아무로 나미에, 하마사키 아유미, 우타다 히카루만큼의 폭발력은 아니더라도 이 메가톤 급의 뭔석을 품은 신데렐라가 사기 유닛이라는 것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로부터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지났다. 하물며 여가수이자 여배우가 데뷔 10년차면 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을까. 그러나 나카시마 미카는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데뷔 부터 지금까지 줄곧 스타였으니까. 1집, 2집이 모두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영화 [NANA]를 통해 배우로도 가수로도 변신에 성공하고 흥행했으니, 그때의 겁없고 무서운 신인 스타는 이제 노련하고 한결 여유로워진 진짜 스타로 거듭난 셈이다. 그리고 그 10년을 맞아 이렇게 새 앨범 6집 'STAR'를 선보인다.


    첫 포문을 여는 건 가히 나카시마 미카의 전매특허라고 부를 발라드 'Always'다.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눈의 꽃 雪の華'을 비롯해, 포지션이 리메이크한 '연분홍빛 춤출 무렵 櫻色舞うころ' 등 호소력 짙은 발라드로 인기를 끌던 그녀인지라 무엇보다 우수에 찬 감성적인 보이스가 빛을 발한다. 드라마틱한 구조와 서정성 덕분에 이재한 감독의 [사요나라 이츠카] 주제곡으로도 쓰인 아름다운 곡.  그 뒤를 이어 일본 특유의 정서를 담은 발라드 '가장 아름다운 나를 一番綺麗な私を'가 이어진다. 마치 과거 엔카를 연상시키는 고전적인 선율과 풍부한 스트링 편곡, 그리고 무엇보다 사계절을 담아내 운명과 연결짓는 일품의 가사가 어우러져 싱글 컷트 당시 많은 인기를 누렸던 곡이다. 허스키한 미카의 보이스컬러가 그루브한 미드 템포 R&B를 만난 'Baby Baby Baby'는 킬러 트랙. 감정을 듬뿍 실어 부르는 사랑에 대한 호소가 애절한 기타 솔로 연주로 바뀌는 순간 전율이 인다. 이 분위기를 바꾸는 'Over Load'는 일렉트로니카 댄스 곡. 경쾌한 업비트에 파워풀한 보컬, 견고하게 쌓이는 스트링이 밝은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듯 힘차다.
     
    레트로 분위기 잡음이 깔리다 경보를 울리듯 시작하는 이 복고지향적인 사운드의 'Game'은 섹시하고 성숙한 소울풍의 곡으로, 비음을 섞은 그녀의 목소리와 야성적인 느낌의 백보컬의 조화가 마치 여태까지 발라드의 미카는 잊으라는 듯 놰쇠적으로 주문을 건다. 그 뒤로 이어지는 건 신비스럽고 무표정한 나카시마 미카의 모습을 시원스럽게 날려버릴 웃음소리로 시작하는 'Smiley'. 낭창낭창하고 펑키한 브라스 섹션이 쉬크하고 도도하게 부르는 미카의 창법과 잘 어울린다. 영화 [시카고]를 연상케 할 'Candy Girl'은 재즈의 선율이 강한 비트의 힙합튠과 반복적인 코러스와 화학작용을 하며 짙은 인상을 남기는 곡. 다크하면서도 통통 튀는 사운드가 트랙이 끝나도 귀에 남는 듯 하다.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에 오토튠으로 만진 미카의 목소리가 시원함을 안기는 'Lonely Star'는 이 앨범에서 처음 등장하는 신곡. 후렴부에서 확 터지는 비트의 질주감과 사운드 스펙트럼이 상쾌하다. 영롱한 고조감으로 시작하는 'No Answer'는 기교없이 담백하게 삶에 대해 충고하는 모습이 일렉 사운드와 만나 묘한 질감을 빚어낸다. 보이스컬러는 전혀 다르지만 왠지 모르게 yuki의 노래를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Spiral' 역시 중독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인상적인 곡.


    아름다운 피아노가 인트로를 장식하며 하우스 스타일로 급변환하는 'Memory (Feat. Daishi Dance)'는 클럽 DJ로 높은 인기를 끈 다이시 댄스가 피쳐링한 곡으로 가성을 구사하는 나카시마 미카의 새로운 모습과 만날 수 있다. 기존의 허스키하고 파워풀한 보컬과 달리 투명한 색채감을 선보이는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가사가 모두 영어로 되어 있다는 점도 특색있다. 역시나 이번 앨범에 처음 등장하는 신곡이기도 한 '16'는 그간의 들뜬 분위기를 다시 가라앉히는 어쿠스틱한 사운드로, 미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지메를 당해 학교를 중퇴하고 꿈을 쫓아 노력하던 그녀의 어두운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사이토 마코토의 기타를 배경삼아 조근조근 고백하는 목소리엔 그 어떠한 회한도 아픔도 묻어나지 않는다. 그저 스쳐지나간 인생의 시련과 고난이었을뿐. 그리고 다시 그녀만의 발라드 '流れ星'가 뒤를 잇는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Song For A Wish' 역시 이번 앨범에 새롭게 등장하는 신곡. 첼로와 베이스, 피아노로 이루어진 단촐한 구성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나카시마 미카의 호소력 짙은 창법을 유감없이 부각시켜 주는 듯 하다.
     
    비록 14곡 중 11곡이 5집 이후 발표된 싱글커트와 커플링된 B-side곡을 담고 있어 일본 자국 팬들에겐 아쉬움을 자아냈겠지만, 싱글 앨범이 따로 소개되지 않는 한국 사정에선 모두 새로운 곡들이라 2년만의 신보가 그저 반가울 뿐이다. 게다가 건강 이상으로 당분간 활동을 접겠다고 발표한 터라 언제 복귀가 이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정규 앨범의 가치는 더욱 더 올라가지 않을까. 박효신과 바다, 포지션, 민효린과 화요비 등 유난히 한국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하고, 국내 J-pop 최다 판매량을 자랑했을 만큼 인기가 높은 그녀의 존재감이 어느 때보다 두드러져 보인다. 그게 바로 '스타'의 역할이 아닐까.


    덧) 위에서 언급한 그 애니메이션은 [오렌지 로드 きまぐれオレンジ☆ロ?ド]고, 주인공은 아유카와 마도카 鮎川まど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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