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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NGBONG의 'Leaving U'
    책|만화|음악 2010. 10. 2. 07:21

    살인도 추억이 되는 80년대 중반부터 교주 서태지가 나타난 90년대 중반까지 질풍노도로 내달렸던 내 젊은 시절, 고무줄로 간신히 고정시킨 구닥다리 워크맨 속 카세트 테잎엔 언제나 그 피 끓는 영혼을 달래줄 (라디오 방송에서 갓 녹음한) 발라드가 자리했었다.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 신해철의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장미' 그리고 예능 늦둥이가 아니라 발라드 늦둥이였던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까지. 현재의 소몰이 창법이 판을 재패하고 대세가 되어버린  R&B와 전혀 다른, 한국식 발라드가 있었다. 애절한 멜로디에 드라마틱한 악곡, 처량맞은 분위기의 가사, 그리고 진심이 묻어나는 담백한 창법과 미성으로 중무장한 일련의 발라드 계보는 가히 절대적이었다.
     
    맨날 사랑 타령, 이별 노래만 해대는 가요계가 문제라며 주구장창 씹어대던 기자들도 많았지만, 그때는 그게 낭만이고 멋이라 생각했다. 너 땜에 내가 미쳐! 오 오 오 오빠를 사랑해! 쏘리 쏘리 내가 내가 네게 네게 빠져 빠져를 적나라하게 외쳐대는 So Cool한 세대들에겐 그게 찌질하다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런 비루함은 아픔을 승화시키고자 마음에게 하는 다짐이고, 상대에 대한 지고지순 일편단심의 예의였으며, 자기비하를 통해 서정의 미학과 풍류를 깨우치던 시대의 반어적인 표현이 아니였을까. 순간적이고 감각적인 지금의 노래보다 예전 노래들에서 깊이와 감칠맛을 알아가는 건 직설적인 감정의 배설보다 고민에서 묻어나는 사랑/이별 스토리만의 은은한 쾌감이 더 오래가기 때문일 것이다.


    30대를 넘긴 3인조 직장인 밴드 [봉봉]은 첫 싱글로 그 시절의 감성을 이야기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기시감을 불러 일으키듯, 너무 솔직해 촌스럽고 투박한 감성들을 꾸밈없이 풀어 놓는다. 이문세와 변집섭의 현신이다! 빙의다! 경악할만큼 뛰어난 가창력은 아니지만, 기름기 좍 뺀 기교없이 담백한 보컬과 군더더기없는 매끈한 연주, 오글오글 돋는 광고 카피 같은 트렌드와 전혀 다른 - 진솔함이 묻어나는 가사로 추억을 환기시킨다. 무엇보다 쉽게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 라인이 예전의 친숙한 8-90년대 사운드를 떠올리게 만든다. 청아한 피아노 도입부에 뒤를 받치는 영롱한 기타 그리고 고조부에서 터져나오는 드럼과 스트링으로 전형적인 발라드 공식을 떠올리게 만드는 첫 곡 '떠나간 뒤에'는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이 오히려 획일화된 메인스트림에서 도드라져 들린다. '잊지마 기억해 함께했던 시간들. 그래 그대가 날 버렸다는 걸 알아'라고 외치는 가사는 또 어떤가. 찌질함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때 그 시절 자주 듣던 발라드만의 청승과 미련이 잘 섞인 시멘트마냥 끈끈하게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 유치하면서도 매달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랑과 이별의 치졸한 미학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슬로우 템포의 드럼 파트로 포문을 여는 두 번째 곡 '그대 눈물 닦아줄 수 있는 사람' 역시 발라드만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서정적인 피아노와 스트링 사운드가 깔리며, 보다 직접적이고 애절한 가사로 이별의 아픔을 호소한다. 감성적인 코러스와 절정부의 '아무 일도 없는 거라면 아무렇지 않게 아무 일 없다는 듯 내게 돌아와'라는 가사가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자조어린 절규는 절제되었지만 구차한 심정의 끝을 보여준다. 예전 015b의 발라드를 듣는 듯한 착각이 5초간 들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묘한(!) 필링의 곡. 세 번째 트랙이자 마지막 트랙은 첫 곡이었던 '떠나간 뒤에'의 MR. 그리 어렵지 않으니 뒤에 적힌 가사를 보며 자기만의 Feel로 청승+찌질하게 따라 불러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갱지 같은 재생용지에 종로 타워가 떡하니 그려진 자켓 이미지는 예쁘지만, (아무리 홍보용 CD라도) 싱글 케이스에 따로 담아주지 못한 건 옥의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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