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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상무의 '쇼핑몰 사장학'
    책|만화|음악 2010. 10. 17. 06:07

    산다는 게 참 쉽지 않다. 출퇴근 지옥에, 상사 눈치보랴, 실적 생각하랴, 여기저기 깨지고, 치이고, 줄서느라 인생의 꽃같은 시간 허비하고 있으면 왜 이러고 사나 한탄이 절로 새어나온다. 마음 같아선 면전에 대고 서류 한 바가지씩 뿌리며 갖은 욕설을 양념 삼아 해대는 상사에게 사표 한 장 흔들며 쿨하고 과감하게 나 관둔다! 소리쳐주고 고개 빳빳하게 나오고 싶은데, 그렇게 원하던 프리랜서가 되는 순간 당장 닥치는 막막한 생활고가 할리우드 왠만한 공포영화 뺨칠 정도로 무섭기 그지없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덮어놓고 장사를 시작할 수 없는 일. 냉랭한 시베리아 기단의 칼바람처럼 매서운 물가 상승 앞에서 남의 호주머니 속 세종대왕님을 내 통장으로 모셔오기란 메시가 드리볼 하는 공 뺏어오는 것 만큼이나 힘들 게 뻔할 터. 죽이는 창업 노하우나 대박 맛집의 국보급 비밀을 어디서 백원 줍듯 줍지 않는 이상 섣불리 장사는 시작조차 못할 듯 싶었기에, 이 책을 위드블로그에서 만났을 때 이거다! 싶어 김정일 박수를 쳤다. 초기 자본 많이 필요없이 누구나 컴퓨터 한 대에, 번뜩이는 아이템만 있으면 누구나 뛰어들 수 있는 그건, 바로 (두둥) 인터넷 쇼핑몰 창업!!


    나야 꿈을 잡겠단 생각에 이 얄팍한(?)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지만, 얼마나 지속될지 신도 며느리도 모를 일이었기에, 일말의 불안감 해소와 노후대비 및 투잡에 대한 실전 감각을 익힐 겸 읽어두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내심 책에 대한 기대감이 만만치 않았다. '쇼핑몰 사장학'이란 제목답게 뭔가 어마어마한 내공의 비법서겠거니, 기가 막힌 화술로 나를 사로잡을 것이라는 망상마저 뭉게 구름처럼 피어났다. 허나 그 두꺼운 포장을 뜯어보니 막상 책은 내 프리랜서 생활(!)만큼이나 얄팍한 두께의 포켓북 사이즈. 게다가 안에는 그림 하나 없이 빽빽한 글자들의 향연! 실용서라면 나름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하는 마인드 정도는 필요하지 않나. 고객 서비스로다가. 그런 생각이 물씬 들었지만 정신 차리고 읽기 시작하자 대략 30개로 요약된 요점정리는 고딩 시절 배웠던 정치/경제 참고서만큼이나 빠르게 눈에 들어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노하우나 비법서가 아닌, 처세술 및 경영론이다. 저자가 직접 체득한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일반적이지만 쉽게 와닿지 않는 사항들을 5개 항목(쇼핑몰 사장의 마인드와 자세, 쇼핑몰 오픈 전에 세워야 할 계획과 전략, 쇼핑몰 창업과 실천 방안, 쇼핑몰 생존을 위한 자금 관리, 쇼핑몰 매출 및 수익을 위한 홍보/마케팅)에 걸쳐 짤막하지만 힘있게 주장하고 있다. 때론 단정적이고 직접적이지만, 손에 잡힐 듯 쉽고 정확한 어투로 인터넷 쇼핑몰 전반에 대해 설명해준다. 막연히 만만하게만 보였던 이 나홀로 창업이 그렇게 손쉽지만은 않은 세계임을, 이것도 또 하나의 수익을 남기고 고객을 끌어들이며 크게 실패할 수도 있도 있는 현실임을 냉정하게 각성시킨다. 또한 유통에서부터, 자금관리 및 고객유치, 직원교육과 광고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음을 주지시켜 누구나 할 수 있을거란 자만감을 팍! 팍! 꺾게 만든다. 사실 누구나 쉽게 장사를 하지만, 누구나 쉽게 돈을 버는 건 아니다. 이런 철두철미한 마인드가 있어야만 사장이란 호칭이 걸맞는게 아닐까. 저자는 이를 일깨우려는 듯 하다.


    몇 가지 아쉬운 건, 대부분의 실용서들이 그렇지만 단조로운 구성과 조금 높은 가격이다. 짤막한 단원별 구성으로 쉽게 읽히는 감은 있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빽빽한 문단의 획일적인 배치는 읽는 이들에게 다소 지루한 감을 선사한다. 간단한 카툰이나 그림을 삽입해 여유를 주거나 주제를 요약해주고, 실제 좋은 예가 되는 웹쇼핑몰들의 스크린 샷을 첨부해 실제적인 접근성을 높힌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원별마다 다른 레이아웃으로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배려도 괜찮을 듯 싶고. 어디서나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도록 하드커버를 지양하고 가벼운 부피에, 가독성 좋게 오렌지색을 차용한 편집은 좋지만, 포켓북 사이즈에 어울리는 가격대였다면 단색 인쇄로 찍더라도 많은 이들이 친근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용이겠지만서도.


    컴퓨터 한 대에, 기가 막힌 아이템 하나. 그리고 내 의지와 열정만 있으면 나도 사장님 모드! 만사 오케이! 이게 내가 처음 인터넷 쇼핑몰에 대해 가진 인상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건 가히 공상과학급 환상이 아니었나 씁쓸하게 자조해본다. 산다는 게 참 쉽지 않다. 자아 제 점수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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