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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윈터플레이의 '투셰모나모'
    책|만화|음악 2010. 9. 26. 04:35

    9월의 끝자락 기록적인 폭우가 퍼붓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마치 이게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 날이 많이 차가워졌다. 뜨거운 햇살에 열대야가 작열하던 늦여름의 기세가 엊그제 같은데(아니 진짜 엊그제는 그랬다!), 확 변해버린 기온에 당황하며 부랴부랴 긴 팔 옷을 꺼내들었다. 이제 가을이고, 겨울인가? 몸과 마음에 직접적으로 다가온 환절기를 만끽하며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 찾게 된 품목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뜨끈한 오뎅 국물과 따뜻한 호빵, 아님 붕어빵에 연인의 작디 작은 손과 손수 짠 목도리, 떨어진 오색의 낙엽 빛깔에 발 아래로 밟히는 바스락 소리. 그리고 이 모든 걸 푸근하게 감싸줄 이어폰에서 나즈막이 흐르는 재즈 선율까지. 인터플레이 2집을 만난 시점은 그렇게 너무나도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가요에 조금 세세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혹은 한국 재즈에 대해 귀동냥으로 들은 풍월이 있다면 윈터플레이를 이끌고 있는 이주한에 대해 별로 길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허나 현실은 아이돌이 음악판을 좌지우지하는 상황. 슈주나 동방신기, 카라와 소녀시대는 알아도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실력파 세션맨이자 재즈 뮤지션, 음반 프로듀서로 활약한 한 명의 천재 트럼펫터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게 사실이다. 이런 불공평한 세상! 이런 생각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였던 듯, 그는 세월의 더께가 무겁게 쌓인 훈장과도 같은 이력과 성과들을 뒤로 하고 2008년부터 윈터플레이라는 새로운 팝재즈 그룹 활동을 시작한다. 대중친화적이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을 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채. 그래서 사람들이 어렵게 느끼는 연주 음악이 아닌 보컬 곡을 전면에 내세우고, 팝적인 감성에 탄탄하게 기본기와 실력을 갖춘 혜원(보컬), 최우준(기타), 소은규(베이스)의 라인업으로 대중 앞에 섰다. 그 결과는? (수 차례에 달하는 각종 세계 공연과 히트 친 CM송, 그전 앨범들에서 알려진 '집시걸'과 커버곡' 빌리진' 등을 전혀 모른다고 해도) 이번 2집이 충분히 대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1. Songs of Colored Love
    혜원의 건조하면서도 청아한 보컬이 기타 사운드와 무엇보다 잘 어울리는 보사노바풍의 노래. 일본 아이튠 차트 1위에 빛나는 기록이 말해주듯 귀를 사로잡는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가 일품이다. 사랑에도 색깔이 있다면 이처럼 신비롭고도 애절하며 복잡미묘한 스펙트럼이 아닐까. 그 미묘한 감정의 지점을 노래하는 곡.
     
    2. Your Eyes
    쌉쌀한 커피 뒷맛과도 같은 여운의 보사노바 곡. 그러나 첫 번째 트랙과는 전혀 다른, 절제한 슬픔을 꾹꾹 눌러 담은 한국어 가사와 이주한의 솔로 연주가 어우러지며 애잔한 감수성을 자극한다. 가을에 더할 나위없이 잘 어울리는 트랙으로 이별의 아픔을 무덤덤하니 소화한 혜원의 보컬이 매력적이다.
     
    3. 투셰모나모 (Touche Mon Amour)
    톡톡 튀는 라틴 계열의 타이틀 곡. 현란한 기타와 나긋나긋한 혜원의 변화무쌍한 보이스 컬러가 인상적이다. 3개 언어가 혼재된 가사에서도 살짝 엿볼 수 있지만 이런 무국적인 퓨전성이야말로 윈터플레이가 전세계적으로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발판이 되지 않았나 싶다.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곡이지만 리드미컬한 연주가 강렬한 색채감을 던져준다.
     
    4. Moon Over Bourbon Street
    스팅의 멜랑꼴리한 노래를 윈터플레이만의 스타일로 변신시킨 커버곡. 허무하기 그지없는 세기말적인 스팅의 보이스에 클래식한 연주가 어우러진 원곡과 달리 스윙감을 잔뜩 살린 베이스와 그루브한 기타, 오버더빙된 트럼펫의 질감으로 표현해 블루스와는 또다른 팝재즈의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5. Hey Bob (rejazzed)
    1집에 실렸던 곡을 다시 편곡해 선보인 트랙. 둔중한 베이스가 왈츠를 추듯 경쾌하게 무대를 장악하고 이 와중에 뒤로 물러선 기타와 트럼펫 사운드로 균형을 맞추며, 도도하면서도 잰 채 하는 듯한 혜원의 상큼하고 얄미운 보컬이 떠받친다. 언제 들어도 장난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런 곡.
     
    6. June Ballad
    초여름날 잠시 가졌던 감정을 시간이 지나 곰삭은 채 추억하는 듯한 서정적인 블루스. 뒤에 배치된 '눈 내리던 어느날'과 함께 앨범에서 가장 느린 곡이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무심한 듯 통통 튀며 쉬크한 보이스로 기억되는 혜원의 목소리가 이런 스타일에도 이렇게나 잘 어울리다니. 이주한의 트럼펫이 애절하게 가슴에 스며드는 건 뽀나쓰.


    7. Thoese Darn Feelings
    스타카토로 톡톡 끊어주는 리드미컬한 기타와 베이스, 시원스런 보컬과 트럼펫이 어울어져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신명나게 표출해낸 곡. 'Happy Bubble'에서도 느꼈지만 이런 모던한 경쾌함이야말로 윈터플레이가 추구하는 대중성의 정수이자 핵심이 아닐까. 정갈한 흥겨움으로 가득찬 가슴 떨리는 필링!
     
    8. I need to be in Love
    카펜터스의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발라드 넘버를 블루스 스타일로 소화해낸 곡. 미성으로 대표되던  카렌 카펜터스 깔끔한 색채를 칼칼하리만치 담백하게 접근한 혜원의 보컬이 귀를 감싼다. 카펜터스 특유의 밝고 아름다운 사운드를 이렇게 미묘한 경계를 타는 곡으로 재해석해낸 시각이라니.
     
    9. 눈 내리던 어느 날
    어쿠스틱 기타로만 표현해낸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사운드스케이프. 이를 반추하는 건 역시나 앞선 6번 트랙 'June Ballad'로 놀라움을 안겨준 혜원의 보이스다. 기교와 파워를 잠시 접어두고 회한에 가까운 기억 속 감정을 조심스레 꺼내 소박하니 부르는 게 그룹명에 가장 어울리는 분위기의 곡을 만들어냈다. 차거운 겨울바람도 매섭지않게 느껴지도록.
     
    10. Don't Know Why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인기를 끈 노라 존스의 원곡을 커버한 노래. 헤원의 스캣과 트럼펫의 첨가를 빼고는 원곡과 거의 유사한 접근법을 취한다. 혜원의 담백한 음색이 워낙 노라 존스와 닮아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윈터플레이만의 독특한 해석력을 기대했다면 욕심이었을까. 
     
    11. 세월이 가면
    최호섭의 히트 발라드를 보다 느린 템포로 리메이크한 곡. 쭉 뻗어가는 시원스런 창법으로 인기를 끌었던 곡이라 혜원의 힘있는 보컬을 기대했는데, 다소 처지는 분위기가 정말 세월이 가는 안타까움과 미련을 실감나게(!) 담아낸 것 같아 아쉽다. 만약 스윙이나 보사노바였다면?
     
    12. Shout
    팝재즈의 매력을 유감없이 표출하는 곡. 펑키하면서도 모던한 스윙감이 마치 맨하턴 트랜스퍼를 떠올리게 만든다. 베이스와 기타, 트럼펫의 조화도 뛰어나고, 혜원의 능청스런 보컬은 윈터플레이의 색채감을 간단명료하게 드러내준다. 이것이 바로 윈터플레이다! 소리질러. 샤우트.
     
    13. Blue Without You
    블루지한 사운드가 심금을 울리며 드뎌 기타만 치던 최우준의 보컬이 등장한다. 하림의 음색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 소울 충만한 음색이 쉬크한 혜원의 목소리와 댓구를 이루며 주고 받는 형식은 이주한의 트럼펫이 부추기며 정점을 향해 달려간다. 확 불 지르는 느낌이 아닌 은은하게 불씨를 가슴에 품은 숯불마냥. 꿈틀대는 기타의 울림이 긴 겨울밤 내내 가슴 속을 마구 헤저을 것 같다.


    보다 대중친화적인 접점을 찾기 위해 재즈라는 토양 위에 다양한 장르와 감수성을 이식해 그들만의 색채를 유감없이 펼쳐보이는 윈터플레이. 아이돌만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 음악 시장에 새로운 조류를 형성해내기를 바라고 또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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