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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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사키 토모카의 '그 거리의 현재는'책|만화|음악 2007. 12. 24. 17:20
[오늘의 사건사고]를 보게 된 건 순전히 내가 좋아하는 다나카 레나가 나온다는 사실 때문이었지만, 의외로 영화에 더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제목과 달리 하루 하루와 평범한 젊은 군상의 이야기들을 이렇게 상업영화에서 아무렇지도 않게(긴장된 플롯과 특출난 에피소드 없이) 그려낼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래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변화없는 일상성에 많은 이들은 지루함을 느낄지 몰라도, 진정 중요한 삶의 순간은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사건사고가 아닌 그 이면에 차곡차곡 쌓인 두터운 일상의 틈새에서 만들어지는 법이다. 반복돼 쌓이지 않으면 모를 아주 작은 불균질함 속에서 말이다. 그런 디테일을 잘 포착해낸 섬세한 이 영화가 난 정말 맘에 들었다. [오늘의 사건사고]는 시바사키 토모카의 원작 소설로 읽지 못했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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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쓰오의 '암보스 문도스'책|만화|음악 2007. 12. 13. 23:35
엄밀히 말하자면 이 단편집은 추리소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비밀, 섹스, 음모, 배신, 추억, 소외, 사랑과 공포를 다루지만, 풀어내는 방식은 지극히 냉정하고 노멀하기 때문에. 소설 어디에도 스릴과 트릭을 느낄 수 없다. 대신 어떠한 범주로도 정의할 수 없는 기리노 나쓰오만의 다크 월드가 존재할 뿐이다. 비등점에 다다른 뜨거운 소재들을 이처럼 차갑고 비정하게 내뱉는 그녀의 문체는 매혹적이다. 거부감이 들 정도로 톡 쏘는 와사비 맛과 같다. 그녀만의 강렬하고 일탈적인 여성 캐릭터는 여전하고, 일반적인 모럴을 손쉽게 뒤집는 인간의 탐욕과 시기로 점철된 세상 역시 그대로다. 부정적이고 삐딱한 세계 속에 살아 숨쉬는 군상들은 치졸하고 더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를 묘사하는 그녀의 시선은 지극히 담담하고, 가라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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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쓰오의 '아임 소리 마마'책|만화|음악 2007. 12. 12. 23:27
기리노 나쓰오. 현재 한국에서 미야베 마유키와 함께 가장 잘나가는 일본 여류 추리소설 작가. 극강의 포스와 전설적인 소문을 동시에 자랑하는 그녀의 대표작 [아웃]을 먼저 읽고 싶었지만, 언제나 대출중이란 표시에 눈물을 머금고 대타로 골라 잡은 게 [아임 소리 마마]다. 짧은 분량에 깔끔한 문체는 쉽게 읽히지만, 까끌한 소재와 가학적인 심리 묘사가 뒷끝을 심하게 남긴다. 트릭 위주의 미스테리나 심리 스럴러의 느낌이라기보단 사회파 고발소설에 가깝다. 로스 맥도널드같은. (드세고 공격적인 성향의) 일탈적인 여자 묘사에 일가견이 있다는 소문대로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코는 성인의 모습을 한 어린아이이자 괴물이다. 자기 맘대로 행동하는 그녀는 옳고 그르고가 아닌 좋고 나쁘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정의하기에 더욱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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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사와 야스히사의 '야구감독'책|만화|음악 2007. 12. 7. 03:31
다른 스포츠와 달리 야구에선 감독이 정장을 입지 않는다. 선수들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자신의 망가진 배불뚝이 몸매를 안쓰럽게 드러낸 경우가 허다한 것. 이는 초창기 야구가 발전하던 시기부터 내려온 전통 때문이란다. 그 당시엔 따로 감독직이라는 게 없고 주장이 감독을 겸했는데, 주장 역시 선수이므로 당연히 유니폼을 착용했고, 이것이 굳어져 감독이나 코치진 역시 유니폼을 그대로 입게 됐다는 설이다. 그래서 다른 스포츠와 달리 야구감독은 그라운드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야구감독은 선수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에비사와 야스하시의 [야구감독]은 그런 야구감독의 생리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1970년대 일본 프로야구를 배경으로 실존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가공의 꼴지 야구팀 엔젤스의 성장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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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책|만화|음악 2007. 11. 14. 18:06
톰 고든은 보스톤의 마무리 투수 이름이다. 스티븐 킹은 보스톤의 열혈광 팬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야구 소설이 아니다. 그렇다고 공포 소설을 표방하지도 않는다. 제목만 보면 토니 스콧의 [더 팬]이 떠오를 법하지만, 실상 소설은 리 타마호리의 [디 엣쥐]에 가깝다. 11살 소녀의 고군분투 조난기가 담긴 모험 소설인 셈. 200 페이지가 넘는 소설 내내 악당도, 조력자도, 그렇다고 극적인 플롯도 없이 어린 소녀 하나만으로 끝까지 간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조마조마한 심정을 이끌어내는 킹의 글발은 정말 대단하다. 당장 뛰어들어가 구조해주고 싶은 생생한 묘사력과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구축이야말로 이 소품을 더욱 빛내준다. 공포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욱 무섭고 두려운 법, 킹은 진짜 무서움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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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있다'책|만화|음악 2007. 10. 26. 17:08
막연한 생각이지만, 내가 소설을 쓴다면 이런 분위기를 찾지 않았을까. 경쾌하면서도 짜릿한 느낌이 있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 만화다운 상상력과 너무나 독특해 눈에 도드러지는 캐릭터가 한데 뭉쳐 찬란히 빛나는 봄날의 햇살 같은 소설을 말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역전 경기를 다루고 있는 미우라 시온의 이 소설은 때론 [슬램덩크]같고, 때론 [허니와 클로버]에, 때론 [H2]처럼 섬세하면서도 열혈로 가득찬 청춘의 다양한 색깔을 생생히 재현해낸다. 젊음이란 한없이 불안하며 의심하고 부정하면서도 한계와 경계를 뛰어넘는 것. 그러기에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서서히 젊음이 끝나가는 무렵에 서있기에 더더욱 절절하게 다가온지도 모르겠다. '글로 쓰여진 만화'라는 찬사답게 1, 2권 합계 700 페이지가 넘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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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하라 스나오의 '청춘, 덴데케데케데케~'책|만화|음악 2007. 10. 18. 18:03
아직도 철이 없어서 그런가. 젊음을 그린 소설들이 좋다. 그 만져질 듯한 풋풋함과 지치지 않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문체에 설레인다. 실패와 좌절 뒤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패기와 열정에 나도 몰래 감동받고 내 지나간 나날을 반추해본다, 청춘을 다룬 소설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써보고 싶은 타임머신이자, 과거라는 놀이동산의 자유이용권이다. 읽고 있는 순간만큼은 그 따스한 노스탤지아에 행복해지고 가슴 아파진다. 아시하라 스나오의 이 소설 역시 기분 좋은 타임머신이다. 1960년대 고교생 4명이 밴드를 조직하는 자기 회고록적인 이야기를 아주 매끈한 유머와 경쾌한 필치로 풀어놓았다. 가슴 아픈 생채기나 갈등 따위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보내고, 시종일관 촌스러울 정도로 순박한 좌충우돌 밴드 결성기를 풋풋하게 그려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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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커리의 '최후의 템플 기사단'책|만화|음악 2007. 7. 26. 15:07
여름엔 역시나 추리소설(혹은 스릴러)의 계절이다. 그런 마음에 부담없이 읽을 만한 작품들을 찾고 있는데, 지역구민이 다들 내 마음과 동일한지 원하는 책들은 모두 대여중이다. 미야베 미유키나 기리노 나쓰오 소설을 보고 싶었는데, 가뜩이나 일본 소설이 잘 나가는 터라 대타를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고른 건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레이먼드 커리의 [최후의 템플 기사단]. 전에 읽었던 김명섭의 [아켈다마]처럼 십자군 원정과 성전 기사단을 소재로 삼은 팩션이다. [아켈다마]가 악마주의와 개인적인 복수담을 엮어냈다면 이 작품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 등 서양 종교의 원류와 왜곡을 수수께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게 차이. 그런 면에선 [다빈치 코드]와도 조금 연계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사성과 수수께끼에 중점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