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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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펭귄뉴스'책|만화|음악 2008. 2. 13. 17:57
글로 쌓인 스트레스는 글로 푼다. 장르 불문하고 다른 글들 읽다보면 시샘과 부러움이 동시에 솟구쳐 의욕을 불러일으키기에. 내던진 키보드를 다시 앞에다 끌어놓고 나도 어떻게 하면 저런 명문을 따라해 볼 수 있을까 짱구를 굴리게 된다. 물론 '결국 안 된다'에 좌절하며 뻗어버리곤 하지만. 그래도 몇분간(?)의 의욕고취라도 필요하니까 자꾸 읽는다. 가급적 단편으로. 그래서 골라잡은 게 김중혁의 첫 단편집이었다. 제목이 끌렸다. 펭귄뉴스라니. 단 걸 보면 입 안에 고이는 침만큼이나 제목에서부터 상상력에 침이 고이잖아. 얼어붙은 전두엽을 확확 돌려줄 거 같고. 그 기대감만큼 일상 속에서 포착한 섬세한 일탈이 세련되게 표현된 소설들이었다. 웰즈의 단편을 보는 듯한 '발명가 이눅씨의 설계도'와 '바나나 주식회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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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마술은 속삭인다'책|만화|음악 2008. 1. 31. 23:22
거장에게도 습작이 있고, 데뷔작이 있기 마련이다. 탄탄한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이 소설이 바로 그 반증이다. (발표된 순서대로 읽지 않으면 이런 점에서 종종 실망감이 들곤 한다...) 전혀 연관 없고, 살인이라 볼 수 없는 3건의 자살을 통해 주요인물을 등장시키는 도입부는 상당히 흥미롭다. 거기에 서브리미널 광고와 최면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도입해 일반적인 사회파 추리소설에서 조금 벗어난 것 역시 신선하고. 그러나 2개의 큰 플롯을 무리하게 접목시킨 구조와 범인의 동기는 허술하고 작위적이다. 개연성이라던지, 설정들이 좀더 촘촘하게 이루어졌다면 직조 솜씨가 빛났을텐데, 아직 이때의 그녀는 지금의 내공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충분히 즐길만 하다는 거... 괜히 미야베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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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책|만화|음악 2008. 1. 14. 22:18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읽어보려 벼르고 있던 건 사실이다. 이 작품이 아닌 [스나크 사냥]과 [모방범]이었지만. 하지만 대타로 집어들었다 해도 [화차]의 눈부신 명성을 전혀 몰라뵜던 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리던 이 소설을 모를 리 없다. 귀에 딱지가 베기도록 칭찬을 들었으니까. 사실 미야베 월드로 들어서기 위한 입장권을 너무 좋은 걸로 골라잡았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 기대감을 이 작품은 여지없이 채워주었다. 15년 전에 나온 소설이지만, 지금 현재 한국 사회에도 통용될 정도로 긴 생명력과 현시성을 갖췄다. 두툼한 분량임에도 빠르게 읽히는 건 물론이거니와, 요새 유행하는 반전이나 잔혹한 스릴러 코드를 갖추지 않아도 몰입감과 재미가 상상초월이다. '빨려들어간다'는 의미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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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책|만화|음악 2008. 1. 7. 21:57
안타깝게도 현재 추리소설에서 본격(혹은 고전) 형식의 퍼즐 미스테리를 접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의 진보와 매체의 다양화는 더 복잡하고 과학적인 사고와 자극적인 흥미만 요할 뿐, 페어 플레이 속에 피어나는 논리정연의 중요성은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다. 픽션들보다 더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 없는 현실의 무자비한 사건사고들이 가져다 주는 충격파가 한몫 했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그런 면에서 현재 추리소설은 하드보일드와 사회파라는 스릴러, 반전과 싸이코패스 그리고 CSI만 남아 있을뿐, 엘러리 퀸이나 애거서 크리스티, 반 다인 등의 고전적 품격은 쥐도 새도 모르게 날아가 버렸다. 여기 1987년 혜성처럼 등장한 아야츠지 유키노의 이 데뷔작은 그런 고전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오마쥬이고, 복고지향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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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지 유키야의 '도쿄밴드왜건'책|만화|음악 2008. 1. 6. 23:37
한없이 착한 소설이다. 놀라운 시청률을 자랑하는 밥상머리 드라마 KBS 일일 홈드라마보다도 더. 물론 싱거울 수 있다. 폐륜이 판을 치고 사강오륜이 눈물을 흘리는 현재, 쌍팔년도 비둘기합창을 연상케하는 대가족 이야기는 도덕 교과서 공자왈 맹자왈 만큼이나 박제된 게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일상에 자리잡은 인간사,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드라마틱하고 자극적인 것만은 아니기에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들에 더 쉽게 반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착한 소설은 자극이 없다. 자극은 더 큰 자극을 요구한다. 순응이 되면 그건 더 이상 의미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애초부터 무자극으로 일관한다. 폭력, 섹스, 욕설이 거세되고, 가족이란 이름의 정서적 유대감이 잔잔한 소동극과 조우한다. 게다가 이 소소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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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루헤인의 '코로나도'책|만화|음악 2008. 1. 4. 21:17
인간에 대한 묵직하면서도 어두운 포스를 무럭무럭 안겨주는 데니스 루헤인의 글발은 새벽 3시 심야 라디오 DJ의 나지막한 목소리 같다. 이내 맞이할 밝은 아침을 이야기하지만 지금은 어둠이라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처럼 조용하면서도 강직한 울림을 갖기 때문이다. 우울하면서도 쌉씨한 인물군상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는 결코 유쾌한 작가가 못된다. 그렇다고 속사포처럼 쏴대는 랩처럼 독한 맛을 지니고 있지도 않고. 그저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지하철역 길바닥 어딘가에 조용히 앉아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면 추적 60분 속의 아이템마냥 어마어마한 이슈 보따리를 풀어내는 도시 빈민층의 제보자 같단 생각뿐이다. 그가 말하지 않으면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진실을 가진. 이 단편집은 그러한 심증을 더욱 굳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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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그로스의 '블루존'책|만화|음악 2008. 1. 3. 22:50
국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스티븐 킹과 마이클 크라이튼, 톰 클랜시와 존 그리샴과 함께 미국의 빅5로 불리는 제임스 패터슨. 그의 장기는 스피디한 호흡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5분의 법칙을 떠올리게 할만큼 인상적인 장면부터 시작한다는 데 있다. 스릴과 몰입감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 그의 곁에서 공동작가로 활동하던 앤드루 그로스의 솔로 데뷔작 [블루존]도 제임스 패터슨의 작법과 닮아있다. 속도감 넘치는 짧은 호흡, 임팩트있게 시작하는 도입부, 스릴감과 반점을 주된 무기로 조근조근 풀어내는 플롯이 영락없는 제임스 패터슨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단점 역시 제임스 패터슨을 빼다박았다.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속도감 넘치는 챕터에 비해 심하게 더디다는 점. 신중하고 치밀한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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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펠레카노스의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책|만화|음악 2008. 1. 2. 14:15
더쉴 해미트와 레이먼드 챈들러가 하드보일드의 프로토 타입이라면 미키 스필레인이나 로스 맥도널드는 초호기다. 그리고 엘모어 레너드와 제임스 엘로이로 진화해, 데니스 루헤인과 조지 펠레카노스 같은 아이들(?)이 탄생했다. 데니스 루헤인이 보다 본격적이고 문학적인 본질을 꿰찬다면 조지 펠레카노스는 TV스럽다. 보다 상스럽고 자극적인 소스의 맛이랄까. 미키 스필레인 소설만큼이나 스피디하게 읽힌다. 마초적이고 단순무식한 건 비슷하지만, 스필레인만큼 무대뽀로 흐르진 않는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전후 매카시즘이 판을 치던 때와 다른 맛을 갖는 건 당연지사겠지. 까끌까끌하면서 정제되지 않은 표현과 사상에 부딪치긴 하지만, 그 거칠고 진한 맛이 매력이다. 내용과 구조는 복잡하지 않다. 비슷하게 찍어대는 싸구려 펄프픽션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