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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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수의 '여곡성'영화|애니|TV 2009. 7. 21. 23:50
80년대 최고의 호러라 손꼽혀왔던 [여곡성]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낡고 구닥다리에 유치한 결과물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약발이 남아 두근두근거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명불허전이랄까. 아직도 잔상이 흐려지지 않을 우리네 확실한 명품 호러다. 쓸데없는 깜짝쇼에 집착하기보단 한 양반 집안의 여성 수난사에 집중하며 거두절미 이야기를 심플하게 풀어낸다. 한정된 인물들이지만 각자의 사연이 녹아들며 저주와 원혼의 잔혹사가 80년대 특유의 촌스럽지만 은근 묘한 매력이 있는 애로틱한 시선과 함께 어우러져 쌉쌀한 재미를 안겨준다. 옵티컬과 주밍을 이용한 효과들은 전체적으로 싼티아나 급이라지만, 시어머니로 등장해 무시무시한 포스를 작렬하는 석인수 씨의 카리스마 만빵 넘치는 연기는 크리스토퍼 리나 벨라 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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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민의 '살인마'영화|애니|TV 2009. 7. 20. 23:43
김기영과 이만희만 있는 게 아니다. 이용민도 있다. [살인마]는 진정 60년대 가장 빛나는 한국 호러/스릴러 중에 한 편일 것이다. 와이드한 화면에 담아낸 공간 연출력과 과감한 동선, 흑백의 음영을 이용한 표현주의적인 디테일에, 거리낌없는 다양한 시각효과까지. 전통적인 방식의 한국 괴담류 스토리를 굉장히 다이나믹하면서도 이질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짜임새 넘치는 구조 또한 참신하고. 호기심을 유발해 끝까지 끌고 가면서 클라이막스를 놓치지 않는 대담한 연출력은 할리우드 뺨친다. 초반 짧은 미술관 씬은 [드레스드 투 킬]을 연상시켰고, 흘러내리는 초상화나 들판에서 귀신들 춤추는 장면을 삽입한 시도는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만큼이나 초현실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게다가 여성들에게 무능력하게 휘둘리는 '악역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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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교의 '마계의 딸'영화|애니|TV 2009. 7. 19. 03:22
80년대 한국 호러는 뒤로 갔다. 그것도 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선 아예 자취를 감췄고. 온갖 장르 영화들이 꽃을 피우던 60년대 독자적인 색채와 미학으로 중무장한 호러는 서슬 퍼런 독재 정부와 TV의 대공세 앞에 길을 잃었다. 김기영이란 걸출한 감독마저 없었다면 퍽이나 암울한 70년대를 맞이했을 것이다. 그런 시기 [며느리의 한], [옥녀의 한], [꼬마신랑의 한], [낭자 한] 등 이른바 '한(恨)' 시리즈를 내며 꾸준히 공포영화를 만든 박윤교 감독. 그 장르에 대한 집착과 노력만큼은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마계의 딸]은 그 80년대 뒤로 간 한국 호러의 좋은 예일뿐, 지나친 동어 반복과 획일적인 모양새로 참신함과 호러의 매력을 잃은 작품이다. 컨벤션한 유치찬란 조명이나 조악한 전자음향, 아크로바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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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순의 '대지옥'영화|애니|TV 2009. 7. 17. 02:01
무시무시한 포스를 내뿜는 제목과 달리 무섭지 않다. 지금 보면 엉성하기 짝이 없는 조잡한 효과와 영화의 90% 가량을 어설픈 세트로 커버한 기술적 완성도가 더욱 더 그렇게 만든다. 게다가 불교 법전을 고스란히 답습한 교훈극이라니, [헬레이저]급의 지옥도와 성모럴를 상상했던 내가 너무 앞서 간 듯 싶다. 이건 벳부의 지옥온천을 순례하듯 느긋하게 바라볼 영화였다. 마치 반성에 대한, 회개에 대한 우리네 전형적인 고전 답안과도 같은. 중후반 지옥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낸 비주얼과 불경을 인용해 제리 골드스미스의 'Ave satani'를 연상케 하는 음악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단지 (아무리 사극이라 해도) 지옥을 그렇게 원시적으로만 표현해야 했을까. 군부 독재를 연상시키는 허장강을 보며 비유와 상징, 그리고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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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미네 고의 '오키나와 드림쇼'영화|애니|TV 2009. 7. 6. 22:49
한가롭고 느리다.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한 그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길을 걷고 생활하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가끔 들리는 라디오 속 오키나와 전통 민요가 지루한 삶의 방관을 방해한다. 늘어지게 마당에서 하품하던 누렁이의 심정처럼 일상의 여백을 길게 길게 담아낸 익숙한 풍광에 관객들 몇몇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딱히 스토리도 의미도 없이 수평적으로 담아낸 오키나와의 일상은 우리가 기억 못하고 살아왔던 그 수많은 어느 날과 다름없다. 하지만 그 무수한 일상이 쌓여 견고하게 만들어진 세월의 무게 앞에 그 익숙한 어느 날의 기록은 특별한 일상이 되어진다. 일본 반환 직후의 모습을 담은 이 '드림쇼'는 그래서 앞뒤 문맥 설명없이 풍광만 비추는 걸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중요한 건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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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사쿠 긴지의 '박도외인부대'영화|애니|TV 2009. 7. 5. 23:41
박진감 넘치는 활극.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야쿠자의 지역성과 비극적인 운명, 강호의 의리와 음모 그리고 배신 등 조직의 흥망성쇠와 다툼를 담아낸 리드미컬한 후카사쿠 긴지의 연출력이 빛을 발한다. 각각 캐릭터들의 활용도 좋고, 무엇보다 츠루타 코지의 선글라스 간지 카리스마가 압도적이다. 냉철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조용한 폭발력은 가히 시종일관 빵빵 터지는데, 빠르고 비정하게 막을 내리는 엔딩이 허무하면서도 진한 뒷맛을 남기며 그의 잔상을 각인시키게 만든다. 40년이 다 되어감에도 줌과 스틸, 핸드헬드가 혼재된 스타일리쉬한 촬영과 편집은 여전히 멋지며, [소나티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함에도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풍광보다 먼저 생선 비린내 물씬 풍겨오는 비정한 조폭들의 야수성이 숨겨진 수컷의 마초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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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용의 '돌아온 외다리'영화|애니|TV 2009. 6. 22. 23:54
호리호리하니 안경 벗은 가수 장기하가 생각나는 차리셀의 곱상한 외모. 하지만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빠른 발차기와 호쾌한 액숀은 가히 지금 봐도 유치하지 않을 만큼의 박력과 그 이상의 절도가 넘친다. 스토리야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수많은 홍콩 무협영화들을 스리슬쩍 연상케 하지만, 저마다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잠입해 각자의 액션 합을 펼쳐보이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라스트 씬에선 과일은 안들었지만 묘하게 과일보다 달았던 혼합 쥬스의 독특한 향과 맛이 떠오른다. 엉상한 플롯이지만 정교한 액션의 이질적인 교배가 갖는 재미랄까. 이두용 감독하면 어린 마음에도 혹했던 농염한 포스터의 토속 애로물과 잠자리 안경으로 대표되던 전영록의 '돌아이'만을 추억하는 세대지만, 진정 그의 포스는 70년대 쏟아져 나온 액숀들에서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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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타 토시야의 '바다제비 죠의 기적'영화|애니|TV 2009. 6. 22. 01:03
시원하게 탁 트인 남국의 바닷가를 무대로 펼쳐지는 젊은이의 방황과 아픔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건 별반 차이가 없다. 필리핀과 오키나와라는 동질적이면서도 전혀 다른 공간을 매개로 혼란스러운 자아를 폭력과 객기로 소비한 젊음의 갈 곳 없는 휘발성은 허무하면서도 슬프게 다가온다. 빛바랜 그 시절 추억들을 곰곰이 되씹어 진한 맛이 우러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운명과 선택이 안타까울 뿐. 이국적인 풍취가 익숙한 청춘영화 공식과 만나 젊음을 절절하게 토로한다. 오키나와 영화 특별전은 민감한 역사적 아픔과 중심에서 떨어진 변방의 지역적 특색이 여름이라는 계절과 어우러져 다양한 영화 읽기를 보여준다. 휴양지인 동시에 전장지였고, 가장 늦게 일본에 합류된 지역답게 복잡미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