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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쿠마루 슈고의 'In Focus?'
    책|만화|음악 2013. 3. 11. 08:16


    CD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음이 튀어나오는 동시에 눈앞에 그림이 그려진다. 쨍한 푸른색 하늘이 칠해지고, 그 위로 하얀 구름이 넘실대며, 오색찬란 무지개가 반짝반짝 빛나면, 눈부신 원색의 유럽 어딘가에 있을 마을에 순식간에 당도한다. 거기에는 만반진수 산해진미의 음식이 가득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별스런 장난감과 진기한 물품들이 날 반기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오가는 장터 속 여행자의 모습을 한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소박하지만 아날로그의 풍광을 간직한, 조금은 옛스럽지만 활기 넘치는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 좋은 여행의 풍광 같다. 토쿠마루 슈고의 음악은 그렇다. 그의 사운드는 놀랍도록 회화적이다. 다채로운 악기들과 신기한 음향이 만들어내는 마술 같은 사운드스케이프는 심상을 자극해 청자만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을 녹여내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어디선가 들어봄직 하지만 결코 들어보지 못한 기시감의 행복이다. 입체적이고 다층적이라 처음 접한다면 그 현란한 사운드 파편에 다소 정신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그게 바로 토쿠마루 슈고다.

    벌써 자신의 다섯 번째 앨범이자 국내에 세 번째로 소개되는 'In Focus?'를 선보인 토쿠마루 슈고는 여타의 다른 천재 뮤지션들처럼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발현한 인물로, 일본 자국 내에서 쉽게 소비되어지길 거부하고 낯선 환경인 미국과 유럽에서 여러 뮤지션들과 함께 투어를 거쳐 다양한 경험과 음악적 열정을 축적해 정의되어지지 않는 자신만의 확고한 음악세계를 만들어냈다. 월드뮤직과 포크, 일렉트로니카와 락 등 여러 장르를 가리지 않고 씨줄과 날줄 엮듯 혼합해 완성한 새롭고 재미난 음악적 패치워크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청량음료에서 탄산이 알알이 터지듯 귓가에 쏟아져 나오는 다채로운 음색의 악기들과 견고하게 층층이 쌓아올린 변화무쌍한 멜로디와 리듬의 배치는 기가 막힐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답다. 그 어떤 메시지나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그 듣는 순간의 느낌을 중시하는 그의 음악은 그래서 감각적이고 충동적이다. 곡의 흐름이나 전개를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통통 튀는데, 그런 상상력과 흥겨움 속에 숨겨진 하모니가 바로 토쿠마루 슈고만의 매력이자 단점이다. 하지만 유치하지 않은 화사함의 알록달록함을 그 어찌 사랑하지 않으리오.

    보너스 트랙을 포함 총 17트랙을 담고 있지만 50분이 채 안 되는 러닝 타임이 말해주듯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마치 황홀경의 꿈을 꾸듯 아쉬울 정도다. 낭창낭창한 기타 소리, 독특한 음색의 리듬군이 서서히 깔리며 이펙트 걸린 신비스러운 - 그렇지만 편안한 슈고의 목소리가 합류하면 기분 좋은 청량감을 던진다. 첫 곡 'Circle'은 짧지만 효율적인 인트로다. 그 뒤로 한곡처럼 바로 이어지는 'Katachi'는 좌우로 새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리코더에, 포크 느낌이 물씬 풍기는 기타, 흥겨운 클랩과 타악기가 첨가되며 새콤한 사워크림처럼 앨범에 방점을 찍어주는 곡이다. 형이상학적인 가사처럼 신비롭지만 강렬한 트랙. 'Gamma'는 마림바의 질주감이 장난스럽게 표현돼 마치 8비트 게임음악이나 혹은 대니 엘프만의 초기 영화음악을 떠올리게 만드는 동심의 사운드를 구현하는데, CM송에 어울릴 법한 연주곡이다.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려주는 'Decorate'는 슈고의 사운드를 잘 대변해주는 노래로 서정적인 목소리와 다채로운 악기들과 음향이 봄바람처럼 귓가에 산들거린다. 사운드가 산란돼 청신경을 자극하는 인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아이리쉬 음악 듣듯 피리와 아코디언, 기타가 휘몰아치는 'Call'은 변화무쌍한 곡의 흐름이 혼을 쏙 빼놓게 만드는 노래로, 신명나는 리드미컬함이 마치 짧은 여행을 다녀온 듯 하다.

    긁어서 연주하는 구이로와 기타처럼 현을 튕긴 바이올린, 불협화음의 하모니카 등의 소박한 악기들이 어우러진 장난스럽고 기괴한 소품의 'Mubyo'가 끝나면 라틴풍의 - 그러나 역시 토쿠마루의 색채감이 여전한 'Poker'가 이어진다. 이전의 쏟아져 내릴 법한 화려함과 달리 초반엔 소박하게 시작하지만 중반 이후 들어서며 상상도 못할 악기들과 효과, 믹싱이 어우러지며 꽉 잡힌 사운드의 묘미를 들려준다. 보이스와 신체를 활용한 사운드도 인상적이다. 투명한 보이스가 시원한 바닷바람 맞듯 다가오는 'Ord Gate'는 빈 여백의 낭만을 물씬 담은 곡으로 노래에도 결이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인다. 보이스가 다양한 효과와 결합해 유쾌한 혼돈을 선사하는 'Pah-Paka'는 짧지만 화려하고 현란한 하모니가 담긴 연주곡이다. 그렇다고 토쿠마루 슈고가 장식과 꾸밈에만 집착하냐 묻는다면 천만에! 영롱하게 심금을 울리는 기타만의 어쿠스틱 발라드 'Tightrope'를 듣는다면 이전 색색깔의 강렬함은 순식간에 휘발될 것이다. 모노톤의 정갈한 사운드는 그가 가진 음악의 원형과 본질이 얼마나 아름답고 강한지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다. 점점 고조되며 끝을 맺는 후반부 역시 인상적이다.

    낭만적이고 유려한 집시풍의 기타로 포문을 여는 'Helictite'는 상쾌한 실로폰과 독특한 리듬감을 가진 흥겨운 퍼쿠션 그리고 휘파람과 아코디언 등 여러 악기들이 만나 고색창연한 유러피언 포크 사운드를 들려준다. 달콤새콤 알록달록한 트랙이다. 우크렐레와 리코더가 리드하는 'Shirase'는 천진난만한 동요풍의 곡으로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현실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을 위로하는 희망적인 가사와 대중적인 편곡으로 편안하게 다가온다. 고전적인 기타 연주곡을 듣는 듯한 멜로디를 속주로 연주하는 'Miero Guitar Music'는 마치 게임음악의 미디 사운드를 듣는 기분을 선사하는, 짧지만 유쾌하고 정교한 연주곡. 토코마루 슈고가 자신의 스타일로 풀어낸 컨트리송 'Down Down'는 목가적인 색채감 속에 빛나는 변화무쌍한 매력과 장르의 교배로 얻어지는 파격적인 미학을 엿볼 수 있는 곡으로, 기괴하지만 장난스러운 후반의 즉홍성이 그의 강렬한 사운드의 마력을 순간적이지만 힘껏 표출해낸다. 일렁이듯 속삭이는 기타 위에 얹어진 그의 다소곳한 보이스에 다이나믹한 편곡이 합쳐진 'Balloon'은 토코마루 슈고의 사운드 총집합으로 강렬한 변곡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놀랄 정도의 균형과 질서를 가진 그의 천재성을 다시금 입증해 보인다. 잠깐의 텀을 두고 일렉트릭 기타와 오르간이 만들어내는 편안한 마무리는 마치 꿈자리로 들어서는 자장가처럼 푸근한 사운드로 마음을 위로한다. 귀를 정화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개의 보너스 트랙. 하나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올드넘버 'When I fall in Love'고, 다른 하나는 그의 키치적인 색채가 두드러지는 'Asatte'이다. 전자가 사랑에 빠지는 마법적인 순간을 일렉 기타와 마림바, 톱 악기 등을 활용해 몽롱하니 환상적인 톤으로 섬세하게 연주하고 있다면, 후자는 마치 헬륨가스를 들이켜고 흥얼거리는 듯한 음성변조 톤으로 계산된 재미와 재기발랄한 위트를 유감없이 들려준다. 일본 한정판에선 이 앨범에 쓰인 99종의 악기 프레이즈를 수록한 99트랙의 라이브러리 CD를 동봉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국내 버전은 이를 들을 수 없다. 어떤 악기들이 쓰였는지 알고 싶었는데, 음악을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그런 토쿠마루 슈고가 곧 방한한다. 오는 3월 24일 일요일. 홍대 상상마당에서 캐스커와 아침, 얄개들과 함께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이 방대하고 어마어마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지닌 그가 도대체 어떻게 라이브 공연을 펼칠지 무엇보다 궁금하다. 그 많은 악기와 효과들을 모두 살릴 수는 없을 터. 연주하고 노래해야 하는 그도 인간인지라 두 개의 손과 하나의 성대뿐이 없을 텐데, 어떤 식으로 라이브를 꾸밀지 사뭇 기대가 된다. 자유분방하게 장르를 가리지 않고 소리로 자신만의 세계를 재정립한 이 젊은 편집광적인 천재의 아름다운 시도를 바로 눈앞에서 생생히 목도할 수 있단 거, 퍽 즐거울 것 같다. 마법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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