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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랑셴핑의 '국가는 왜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가'
    책|만화|음악 2013. 1. 10. 05:43


    물가가 살인적이다. 내 월급만 빼고 모든 게 오른다는 우스갯소리가 더 이상 우스개로 들리지 않는다. 연말부터 계속 한파가 몰아닥치고 있는데, 기온이 떨어져서 그런지 물가가 대폭 올라서 그런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겠지 싶다. 장을 봐도 이제 만원이 만원 같지 않다고 느끼는 건 내 착각만은 아닐 게다. 조금 떨어졌다 싶었던 기름 값은 다시 리터당 2000원을 향해 가고 있고, 마트에서 금싸라기가 된 채소는 집기가 겁난다. 바코드에 찍히는 순간 계산대 창에 뜨는 숫자를 볼 바엔 숫제 호러영화를 보겠다. 그 사이를 못 참고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을 발표했다. 1년 5개월 만에 네 번째 인상이란다. 밀가루도 오른 대고, 그럼 연달아 라면, 과자, 빵 그리고 모든 식생활에 이르기까지 연쇄 도미노처럼 줄줄이 인상될 것이다. 국가는 왜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하냐고? 간단하지. 다 이런 것들 때문이다!

    가장 기초적인 상황들을 보장하고 유지해야 될 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데, 어떤 누가 싱글벙글 웃으며 ‘그럼에도 나라가 있어 행복합니다.’라는 넉살좋은 대답을 하겠는가. 랑셴핑 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대국으로 부강해지는 나라와 달리 여전히 가난한 자국 대다수의 국민을 보며 이 간단하고도 보편적인 딜레마에 집중한다. 이건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든 다 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다. 세금을 거둬 4대강 사업이니 별 도움 안 되는 대규모 국책 사업이니 그런 데다 멍청이처럼 돈 자루를 쏟아 붓고 있는 정부를 둔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 그런 전시행정과 정책 이벤트로 생색내는 국가가 낮은 취업률과 높은 실업률, 고공행진을 벌이며 떨어질 줄 모르는 물가와 폭락하는 부동산, 부담되는 의료비에 시달리며 싸우는 국민을 열정도 분노도 없이 무기력하게 만든다. 랑셴핑 교수는 그 간단한 지점에서부터 출발, 국가와 국민이 바라보는 실물 경제 현황의 차이점들을 지적해간다.


    16가지 키워드를 정해 네 부분에 걸쳐 국가가 왜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지 랑셴핑 교수는 설명해 가는데, 딱딱하고 지루해질 수 있는 경제 용어와 해설을 지양하고 중국 현재 상황들을 제시하며 충분한 데이터와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논거를 흥미롭게 피력한다. 또한 길지 않은 챕터 분량 또한 지루할 틈 없이 쉬 넘어간다. 가장 근본적인 무력감을 첫 장으로 치솟는 물가, 도로 통행료, 채소 값과 유가를 한데 묶어 1부에선 국민이 느끼는 실물경제의 위기를 살펴보고 있으며, 2부에선 금리와 노후연금, 내 집 마련과 부동산 시장, 주태 건설 같은 국민의 안정된 생활을 담당하는 국가의 정책들을 통렬히 비판하고, 3부에선 우량기업 만들기나 주식시장, 이국자본 침투 등 근시안적이고 단편적인 금융제도에 대해 꼬집고 있으며, 마지막 4부에 이르러선 교통체중과 대중교통 이용, 교육의 미래 같은 서민생활의 근간을 차지하고 있는 교통과 미래를 책임을 교육에 대해 심도 깊은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여러 부분에서 랑셴핑 교수가 제시하는 원론적인 해답들이 국가가 통제권을 갖는 중국식 수정자본주의와 상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조금은 감안해야 한다. 랑셴핑 교수는 현재 홍콩 중문대학 석좌 교수로 있지만 대만에서 태어나 미국식 교육을 받고 자본주의 경제론에 정통한 인물이기에 근본적인 시스템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지만, 대안에 이르러선 현실적으로 높고 깊은 장벽과 만나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한다. 국가가 나서서 변하길 기대하지만 중국은, 아니 세상의 모든 국가는 (서민들이 서민을 위해 세웠지만) 서민을 위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통쾌하고 시원한 삿대질을 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듣고 보아야 할 국가는 뒤돌아 서 있는 격이다. 그런 면에서 랑센핑 교수의 책은 강경하고 통렬하지만 일편으론 씁쓸하고 안타까운 현실을 곱씹게 만든다. 무엇이 옳은 길인가. 발전과 안정은 서로 다른 편에 선 말이 아닐 텐데, 현실은 자꾸 엇나가는 변곡점을 만들고 있다.


    선거가 끝났다. 누구는 이겼고, 누구는 패했다. 승리의 도취와 패배의 아픔에서 깨어나 다시 하나로 돌아가야 할 시기다. 어렵겠지만 냉정해져야 한다. 그저 새 당선인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명심 또 명심했으면 좋겠다. 시작 전엔 랑셴핑 교수의 다른 책 ‘벼랑 끝에 선 중국 경제’를 읽었는데, 끝난 뒤엔 이 책 ‘국가는 왜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 하는가’를 읽었다. 나름 의미심장한 시점에 상징적인 물음과 답변을 담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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