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노 타다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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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영화|애니|TV 2009. 11. 27. 23:12
떠나는 자는 말이 없다. 남겨진 자는 의문을 갖는다. 그들이 던지고 간 일상의 수수께끼를 과연 풀 수 있을까. 아니. 영영 해답은 없다. 살아가는 내내 그 화두는 잊혀졌다 떠올랐다를 반복하며 남은 자들을 괴롭히지만, 결코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추측과 예상만이 그려질 뿐, 막상 내게 아름다운 한줄기 빛이 내려와 저 바다로, 철길로 끌어당긴다 해도 떠나는 그 순간에도 답을 알 순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풍광과 일상의 세밀한 묘사로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의 '부재의 고통'을 담아내는 조용한 강렬함은 [환상의 빛]이 가진 힘이다. 부차한 설명과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아도 우리 곁에 만연한 죽음의 일상은 언제나 납득하기 어렵다. 부재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익숙함은 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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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기요시의 '밝은 미래'영화|애니|TV 2009. 11. 24. 23:15
물 속에서 평온하게 부유하는 해파리의 독은 치명적이다. 천사의 모습으로 악마의 기운을 품고 있는 그런 이중성이야말로 구로사와 기요시가 포착한 젊음이다. 나른하면서도 몽롱한 현실감각이 영화 전반을 지배하며 제목과 달리 막막하고 정체된 소통단절의 초상을 담담하니 담아낸다. 그럼에도 부유하는 청춘은 서서히 강물에서 바다로 나아가는데, 그 시간의 흐름을 통한 성장에서 소통하려는 의지를 읽어내고 밝음을 이야기한다. 여러 작품을 통해 인간 본연의 기저에서 심리적 공포감을 탁월히 뽑아낸 바 있는 그이기에 젊음의 불안하고 미성숙한 감정의 폭발을 섬세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오다리기 죠와 아사노 타다노부의 만남도 화제였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메타포와 미장센을 보여주며 정적이면서도 과잉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밀레니엄 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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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이 소고의 '꿈의 미로'영화|애니|TV 2009. 11. 17. 19:00
몽환적이고 탐미적이다. 짧은 일본 고전 기담을 읽듯 은은하게 올라오는 서늘함과 정갈한 색기가 조용히 어우러진다. 강렬한 흑백 대비가 만들어낸 인생의 암(暗)과 명(明)의 뚜렷한 이미지들은 잘 골라 의미를 꽉꽉 눌러 채운 시어(詩語)처럼 망막에 알알이 박힌다. 뜨거운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위험한 사랑을 감수한 여성의 적극적인 모험담은 파괴와 허무에 도취되는 일본 특유의 미학과도 맞닿아있다. 설명을 가급적 배제한 채 긴장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이시이 소고의 탄탄한 연출력과 여백의 감성은 아름답다. 꿈 속을 헤매듯 긴 터널을 빠져나와 마주치는 빛의 스펙트럼에 현실감을 잃고 방향을 더듬이는 코미네 레나의 모습도 잊을 수 없고. 타다노부는 그냥 타다노부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