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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차드 뮬러의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책|만화|음악 2011. 11. 28. 21:31

    학창시절 전파과학사에서 나오던 현대과학신서와 블루백스 번역판을 즐겨 탐독하던 이과생으로 - 사실 물리학보단 생물학을 더 좋아했지만 - 과학교양서에 대한 거부감이나 부담감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과학이나 수학을 잘해서라기 보단 긴 수업과 보충으로 다져진 익숙함 때문이라는 게 더 그럴 듯한 이유겠지만, 사실 그런 책들을 즐겨 보던 형에 대한 영향력과 조그마한 관심도 한몫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조지 가모프의 '이상한 나라의 톰킨스씨'같은 서적들은 인생의 필독서로 뽑을 만큼 감명깊게 보고 또 보곤 했는데, 화려한 수식과 기본적인 지식 없이도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접근하는 방식을 보며 과학이 이렇게 재미있고 쉽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경탄하곤 했었다. 지금이야 이러한 스타일이 트렌드화되었고, 또 더욱 기발한 개념의 서적들도 나오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친절한 설명과 적절한 비유, 명쾌한 유머로 과학을 가볍게 포장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시절이었기에 그 책들은 - 그 자체로도 완벽했지만 - 더욱 더 고전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모처럼만에 읽은 과학교양서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도 복잡한 수식과 전문적인 지식없이도 쉽게 펼쳐볼 수 있는 책이다. 비록 개콘 뺨치는 위트로 점철된 유머는 고비 사막 강수량만큼이나 부족하지만 친절한 설명과 명쾌한 예시로 여러 이슈화 되고 있는 과학적 매커니즘을 쉽게 집어내는 솜씨만큼은 기똥차다. 그러나 제목에서 느껴지듯 리차드 뮬러 교수의 이 책은 다른 일반 순수한 과학교양서와는 조금 궤를 달리 한다. 물론 정치적인 접근은 없다 해도 현재 가장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과학적 시선을 들이대는 논조는 편향적이고 목적성이 짙다. 이는 그러한 주제들을 다루는 사람들이 보다 빠르고 명쾌한 해답을 내릴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곁다리 빙빙 도는 부차적인 설명과 잔기술 없이 다루고 있는 테마에 대해 핵심적이고 드라이하게 파고드는 직구 스타일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진짜 재미다. 그 본질을 잘 헤아리고 바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과학의 힘을 빌어 설명하는 테크닉이야말로 대통령 자문을 맡고 있는 그의 역할이기에 그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술을 놀랄만치 만큼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가 뽑은 테러리즘과 에너지, 원자력, 우주와 지구온난화라는 5가지 테마는 현재 가장 핫하고 시의적절한 이슈들이며, 비록 '대통령'이라고 지칭했지만 바로 그를 뽑는 국민들에게도 해당되는 가장 중요하고도 정확한 사안들로 논조의 목적성과는 상관없이 가감없는 앎의 태도로 논리적으로 해설해간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비행기의 충돌로 인한 운동 에너지도, 테러범들의 폭탄 위협 테러도 아닌,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진 항공유의 화력 때문이며, 이로 인해 테러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가 어떠한 지점을 콘트롤 해야 하는지 그 사건의 본질을 다시 바라보게끔 만들어낸다.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에 나온 주장에 대해서도 과장된 측면을 충분히 집어주며 기상이변과 환경 문제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상식과 편견을 바로 보라고 충고한다. 뮬러 교수의 전공분야이자 일본 지진으로 더욱 주의깊게 바라봐야할 원자력 챕터 역시 방사능에 대한 오해와 공포를 정확히 직시하게 만들며 소통과 아집의 벽이 더 공고해지기 전에 정형화된 사고의 틀을 깨부시며 유연한 변화와 대처를 강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 의미에서 서두에 나온 마크 트웨인의 문구는 중요하다. '사람들의 문제는 무지가 아니다. 문제는 잘못된 것을 옳다고 믿는 것이다.' 정보와 지식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요즘,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고 무엇이 옳은지 심판하고 결정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 문제는 본질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이를 바탕으로 과감히 움직일 수 있는 실천력이다. 뮬러 교수의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은 물리학에 국한된 단순한 과학교양서를 넘어 사회 전반에 대해 진단할 수 있는 시각과 그에 대한 옳은 답을 내릴 수 있도록 행동하게 만드는 좋은 가이드 역할을 자처한다. 중요한 건 서로 달라보이고 떨어져있다 믿어도 사실은 모두 연계돼있다는 것이다. 모든 결단은 결국 대통령이 내리지만 이를 뽑는 건 국민의 몫이기에 사실상 모든 판단과 결정은 우리 손과 말 하나하나에 달린 셈이다. 잘못된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충분히 지난 과거사를 통해 경험한 바 있기에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이 갖는 상징성은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학창시절 읽었던 과학교양서가 꿈과 희망, 경이와 감동의 세계를 이끌었다면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이 책은 더 묵직하고 실제적인 세계에 눈을 뜨라고 말을 건네고 있다. 이에 어떤 대답을 할지 그 결정은 각자 읽는 이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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