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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나의 'Sensitive'
    책|만화|음악 2011. 11. 9. 05:39

    가을이란 계절엔 전통적으로 발라드가 강세였다. 몰론 아침 저녁으로 스산해지는 바람과 입시 추위에 딱 맞춰 뚝 떨어지는 기온이 그 흐름을 부채질한 것도 무시 못하겠지만, 왠지 뜨거웠던 여름철의 시원한 댄스가 태풍처럼 휘몰아치고 가면 그 텅 빈 공백을 메꿔주는 건 언제나 감정을 복받치게 만드는 조용한 노래들 역할 같아서였다. 마치 뜨끈한 국물을 삼키듯 목구멍부터 뱃속까지 쭈욱 타고 내려가는 그 서글프고 청승맞던 한(恨)의 노래들은 서릿발처럼 찬 입동을 앞두고 구들장 속에 발을 디미는 것 마냥 후끈후끈 가슴을 달아오르게 했다. 사랑에 울고, 이별에 울고, 행복에도 우는 그 구질구질한 가사말 속에 감정이입해 흥얼거리다보면 동장군도 기를 펴지 못한 채 삼한사온이 후딱 지나가곤 했다. 발라드는 감정의 난로였던 셈이다. 그러나 요즘 11월 날씨가 20도를 넘고 단풍이 지는 대신 개나리가 피기도 하는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거꾸로 4번 타거나 러시아에다 파는 보일러 시대엔 계절에 상관없이 쉴새없이 댄스가 울려 퍼지고, R&B가 득세한다. 계절의 이득을 보려는 그런 유행이 오히려 구시대적 유물처럼 느껴진다.

    노블하우스의 케이넌이 프로듀스한 신인가수 유나 역시 계절이 계절을 잊은 이 시기, 적절하게 발라드 대신 감성 일렉트로니카를 선보인다. 이별한 연인에 대한 아픔과 상처를 노래하는 가사들은 애잔하니 정통 발라드에 가깝지만, 노래 자체는 70-80 BPM 정도의 미디엄 템포가 아닌 110-120 BPM 정도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다. 쥐어짜낸 슬픔과 구구절절한 사연은 유지한 채 유나의 덤덤하니 무색무취 담백한 보이스에 스피드와 비트감을 얹혀 색다른 감성을 창출해낸 셈이다. 아직 이렇다할 경력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깨끗하고 투명한 톤을 가진 유나(yuna)의 목소리는 일본에서 유행한 - 그리고 국내에도 이제 막 상륙한 보컬로이드처럼 인위적인 색채를 갖췄다. 보코더를 활용한 것도 물론 간과할 수 없겠지만 원래 그녀가 가진 - 최대한 감정을 절제한 채 호소력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 아련한 듯 무감각한 보이스는 마치 애써 꾹 눌러 참고 있는 섬약한 대비를 보여서 더욱 슬픔이 증폭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건 굉장히 몽환적이고 신비스런 사운드를 들려준다.

    'Sensitive'라는 타이틀의 이 디지털 싱글에는 눈물을 의미하는 '루(淚)'와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자친구를 지칭하는 신조어 '곰신' 두 곡이 실려있다. 두 곡 다 그레이와 케이넌이 공동 작사 작곡한 노래로 유나의 특징을 드러내기엔 충분하다. 청량하게 울려퍼지는 인트로에 뚜렷하고 중독적인 멜로디라인이 돋보이는 '루'는 일렉트로닉 사운드 특유의 반복과 점층, 해체와 복합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으로 강렬함과 화려함 대신 유려하고 부드러운 조율로 드라미탁한 완급을 선사한다. 후반에 이르러선 조금 단조롭고 지겨워질 법 하지만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적절한 분량에서 효과적으로 마무리 짓는다. 훈련소 입소장의 풍경을 담은 엠비언스로 운을 떼는 '곰신'은 앞선 '루'보다 더 감성적인 접근을 하는데, 이는 멜로디나 편곡의 영향이라기 보단 보다 명확해진 가사의 느낌이 크다. 단순한 반복과 점층에 그쳤던 '루'에 비해 솔직한 감정과 자신의 사연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곰신'은 그러나 오토튠으로 변조된 목소리를 덧붙이며 좀처럼 감정적으로 치달아야 하는 순간 그 여지를 주지 않고 교묘히 빠져나간다. 일렉트로니카가 가진 차가움의 질감을 반어적으로 살려보고자 한 프로듀서의 선택이 아니였나 싶다. 일장일단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론 무난하게 다가온다.

    듣기 편한 일렉트로닉 팝이지만, 단 두 곡으로 그녀의 모든 걸 재단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아직 어린 나이에서 오는 성장 가능성과 정형화 되지 않은 매력적인 음색, 그리고 프로듀서의 역량이 큰 작용을 하는 일렉트로니카 특성상 충분한 버프만 받을 수 있다면 인상적인 다음 발자취를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선선한 가을 시린 가슴 한 켠을 청량한 음색으로 위로해줄 따뜻하고 고운 일렉트로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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