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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M.의 'Collapse into Now'
    책|만화|음악 2011. 4. 10. 22:02

    얼마 전 '라디오 스타'를 보니 부활의 5대 보컬이었던 박완규가 나와 예능 첫 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이미 그 전의 '위대한 탄생'때 독설로 검색순위 1위에 오르는 반짝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만, 라스에서 보여준 진정한 록커로서의 고민과 자세는 꽤나 멋지고 매력적인 소신을 가진 음악인의 모습이었다. 대중들에게는 예능과 거리가 먼 그의 모습이 4차원스러웠던 김태원의 첫 모습과 겹쳐져 신선하게 느껴졌겠지만, 이를 도약 삼아 그의 음악이, 그 목소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싶다. 그러나 최근 디씨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가 바라보는 상황은 전혀 낙관적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국 록의 상황은 굉장히 암울하고 절망적이라고까지 표현했다. 80년대 3대 록그룹 중 하나인 백두산이 며칠전 새 앨범 '러쉬 투 더 월드(Rush to the World)'를 발표하며 기지개를 켰다고 하지만, 과연 자꾸 작아져만 가는 현 음악 시장에서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런 비젼 없는 한국 록현실과 달리 영미권에선 얼터너티브의 기수이자 저항 문화의 산파이고 정신이며 살아있는 레전드인 30년차 락밴드 R.E.M이 신보를 내놓았다. 83년 데뷔이래 15번째 스튜디오 앨범. 한국 록은 신음을 흘리며 골골대고 있는데, 세계 속의 록은 아직도 쨍쨍한 고음을 질러대고 있다.
     
    R.E.M.에 대해선 어떠한 설명이 어울릴까. 아니 사실은 그 어떤 미사어구에, 찬사를 늘어놓아도 불필요할 정도의 위상과 인기를 가진 그들이다. 그들이 시애틀락의 태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건 물론, 포크적인 성향과 펑크의 요소를 넘나들며 혁신적인 실험과 모험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 또한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 현실 참여를 주저않는 정치성과 타협하지 않은 음악성, 그리고 퓰리쳐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의 뛰어난 가사와 영원지속 가능한 현시성을 갖춘 노래들까지 R.E.M은 80년대 이후 U2와 어깨를 나란히 할 최고의 락밴드 중 하나다. 물론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 중반까지 드러머 빌 베리가 탈퇴하는 시기와 겹쳐져 꽤나 긴 슬럼프를 겪었지만, 바로 전작인 'Accelerate'를 통해 부활을 알린 만큼 이번 신보에 쏟아지는 기대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혹자는 R.E.M.만의 까칠하고 드라이한 락스피릿이 사라지고 평범한 대중성에 묻혀버린 앨범이라 'Accelerate'를 서슴치 않고 혹평하지만, 그간의 침전되고 가라앉은 기운을 환기시키기 위한 그들만의 달콤한 휴양이자 일탈이었다고 보기에 개인적으론 퍽 만족스러웠다. 상업적인 성공 또한 이를 증명했다 생각하고. 그렇다면 3년만에 발표한 30년차 락밴드의 내공은 과연?

    아련하게 눈앞에서 산란되는 햇살처럼 찬란하기 그지없는 피터 벅의 트레몰로 주법으로 시작하는 'Discoverer'는 그들의 완벽한 부활을 알리는 서곡으로 적격이다. 진취적이며 파워풀하고 아름답고 역동적이다. 마이크 스타이프의 날선 목소리는 여전히 힘차고 희망적이며, 객원으로 참여한 인더스트리얼 락계 최고 실력자 빌 리플린의 드럼은 부품 가슴을 약동시킨다. 이 기운 그대로 질주하는 'All the Best' 또한 만만치 않다. 과거 사운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 강력한 얼터너티브 락넘버는 드라이하고 스피디하다. 폭발적인 감성으로 똘똘 뭉친 시한폭탄마냥 끝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해간다. 그들이 외치는 All the Best는 선동문구처럼 가슴에 낙인처럼 찍힌다. 숨 고르기를 하듯 어쿠스틱한 색채로 돌아서는 'Uberlin'은 그들의 포크적인 성향을 유감없이 들려주는 곡으로 서정적이고 쓸쓸한 기타의 나른한 울림이 귓가에 남는다. 그 뒤를 잇는 'Oh My Heart' 역시 포크와 컨트리의 색채를 지닌 채 낭만적인 접근을 잊지 않는다. 아코디온과 혼의 합류로 노스탤지아를 자극하는 선율이 마이클 스타이프의 절제된 호소력과 어우러져 애절함을 부각시킨다.
     
    분위기를 바꿔 미디엄 템포의 적절한 흥분감을 안겨주는 'It Happened Today'는 피쳐링한 면면에 더욱 기분 좋아지는 곡이다. 시애틀락 4인방 중에 하나인 펄 잼의 에디 베더와 캐나다 인디 밴드 히든 카메라즈의 조엘 킵이 합류해 탁하고 나즈막한 스타이프 목소리에 힘을 불어넣어준다. 후렴구에 들리는 세 남자의 은은한 하모니가 상쾌한 즐거움을 던져주는 매력적인 일상의 찬가다. 차분하고 감성적인 발라드 'Every Day Is Yours to Win' 역시 R.E.M의 넓은 스펙트럼의 진가를 보여주는 노래. 이펙트를 건 스타이프의 보컬과 일렉 기타의 진실한 울림의 조화는 천상에서 들려오는 읊조림마냥 화사하고 따뜻하다. 그들의 희망찬 사운드의 기저를 잃지 않는 멋진 트랙. 다시 파워풀한 락큰롤로 회귀하는 'Mine Smell Like Honey'는 그들의 원색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노래로 그들의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새삼스레 증명해낸다. 꽉 짜인 투박함 속에 원천적인 에너지가 관통하는 신신파스같은 트랙이다. 피아노로 서정성을 강조한 'Walk It Back' 역시 R.E.M. 특유의 보석같은 어덜트 컨템포러리 계열의 곡. 개인적으로 스타이프의 까끌한 보이스컬러는 파워풀한 넘버들보다 이런 스타일에 더할 나위없이 어울린다고 보기에 참 마음에 든다.

    노골적으로 복고지향적인 70-80년대 사운드로 회귀하는 이 긴 제목의 'Alligator_Aviator_Autopilot_Antimatter'는 신스팝 여성 뮤지션 피치스가 합류해 황홀경의 로큰롤 세계를 펼쳐보인다. 하이 톤의 피치스와 로우 톤의 스타이프의 이질적인 양극단의 조화는 서로를 보완하며 강렬한 맛을 효과적으로 살린다. 신명나는 헤드뱅잉을 자기도 모르게 펼쳐보이게 할 만큼 멋진 트랙. 그 뒤를 잇는 'That Someone Is You' 역시 스피디한 질주감을 맛보게 하는 초기 락큰롤과 펑크의 이종배합과도 같은 곡으로, 2분이 채 안되는 정말 짧은 시간 동안 칼리지락의 정수를 선보이는 동시에 회귀의 의미를 강하게 갖고 있다. R.E.M.은 변해도 변하지 않음을, 원초적인 색채를 지닌 채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겠단 의지가 읽히는 곡이기도 하다. 스산하고 사색적인 의미로 다가오는 'Me, Marlon Brando, Marlon Brando and I'는 쓰디쓰고 거친 맛의 아메리카노 같다. 갓 볶은 원두에서 막 추출한 느낌의. 편성은 단촐하지만, 부유하는 기타는 기억을 아로새기고, 가슴을 때리는 드럼은 현실을 빠르게 되새김한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을 잊지않은 트랙. 이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계속된다. 펑크락의 대모이자 시인이기도 한 패티 스미스가 참여한 'Blue'는 수록곡 중 가장 긴 곡으로 마이크 스타이프의 빠른 나레이션 속에 그녀의 매혹적인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실험성 짙은 곡이다. 그리고 노래가 끝날 쯔음에 다시 앨범의 첫 번째 트랙 'Discoverer'의 트래몰로 주법이 울려퍼지는 순간, 그들의 화려한 복귀가 이제 막 시작임을 알리는 자신감 넘치는 선포에 온 몸에 전율이 돋는다.
     
    전작 'Accelerate'에 이어 프로듀서 잭나이프 리를 중용하며 성공을 이어나가겠다는 R.E.M.의 시도는 성공적이다. 전작처럼 수록곡들의 길이도 짧고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전작에서 대중적인 호응도를 얻어냈다면 이번 'Collapse into Now'에서는 대중적인 화법 외에도 특유의 실험성과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대범한 교류도 이끌어냈다. 강렬하며 파워풀하고 인상적이다. 그간의 침잠된 슬럼프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Out of Time' 이후 최고의 앨범이라는 그들의 자신감이 허풍으로 들리지 않는다. 현재 빌보드챠트 200에선 39위를 기록 중이고, 록앨범 중엔 8위, 얼터너티브에선 7위, 디지털 앨범에선 21위를 기록하며 노장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여전히 R.E.M.은 R.E.M이고, 그들은 진보된 사운드와 대중을 감싸안는 아우라, 음악에 대한 진정성을 잃지 않는다. 나이가 무색하리 만치! 우리의 시나위와 백두산, 부활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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