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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기와라 히로시의 '하드보일드 에그'
    책|만화|음악 2008. 11. 26. 23:49

    누구에게나 인생의 책이 있다. 처음 보는 그 순간 활자가 안구로 날아와 두뇌피질에 직접 박히고, 책장을 넘김에 따라 내 몸도 마음도 따라 움직이게 만드는 그런 책이. 내 인생의 바이블도 슌페이처럼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이었다. 도서관에선 만난 건 아니었지만, 헌책방에서 뒤적거리다 산 거였으니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선수들 말곤 다 딴 짓하던 학창시절 체육대회 때 책장을 넘기며 인생이 그렇게 쿨할 수 있음을 처음 깨달았다. 그러나 난 탐정이 되진 않았다. 심부름센터에도 안 들어갔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도 깨달았다.
     
    하드보일드를 꿈꾸는 그의 인생은 시트콤 라이프다. 챈들러의 대사를 인용하고, 독한 술을 마시며, 쭉빵 미녀를 기다리고, 탐정 일을 하지만, 아무도 몰라주고, 숙취에 고생하며, 곁에 있는 건 할머니에, 의뢰는 애완동물 찾아달라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이런 인생, 이런 삶, 추하지 않다. 꿈을 향해 진득하니 버틴 우리 주인공 슌페이의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코지 미스테리(Cozy Mystery)를 표방한 발랄하고 경쾌한 내용의 '하드보일드 에그'는 제목과 정반대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상의 아기자기한 맛을 담아낸 작가의 달필이 끝내주는 수제 스프를 먹었을 때의 느낌만큼이나 훈훈한 기쁨을 선사한다. 살짝쿵 감동도 있고.
     
    이 소설을 읽으면 알게 된다. 아주 간단한 진리를. 삶은 달걀이다. 것도 아주 완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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