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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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동급생'책|만화|음악 2010. 2. 10. 23:41
동급생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런데 그녀는 내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다른 동급생을 좋아한다. 뻔하지만 간결한 멜로 드라마로 도입부를 여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소설은 미스터리라기 보단 청춘물에 가깝다. 트릭도 동기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뿐더러, 사실 희미하고 또 그마저도 쉽게 유추 가능하다. 꿰맞추는 퍼즐보다 맞추는 사람이, 그 어긋난 추억이 핵심이다. 요네자와 호노부같은 유쾌발랄달콤한 코지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두근거리는 이팔청춘 성장통이 담긴 단내나는 이야기는 풋사과 같은 시린 상큼함이 있다. 여전히 쉽고 빠르게는 읽히지만 강렬함은 없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무난스런 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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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열녀문의 비밀'책|만화|음악 2010. 2. 7. 23:08
조선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방각본이란 독특한 사료(史料)에 연쇄살인을 접목시킨 [방각본 살인사건]은 한국형 팩션에 좋은 본보기를 던져주었다. 소설 속의 소설史를 구현해보이겠다는 야망과 현 정치 상황을 투영시킨듯한 당쟁다툼 속에서 엔터테인먼트를 쫓는 김탁환의 욕심은 성공이냐 실패냐의 결과론을 떠나 시도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그 후속편이자 백탑파 시리즈의 중간다리인 [열녀문의 비밀]은 전작과 동일한 길을 걷되, 한발짝 더 나아간다. 이번에는 조선 속 여류소설을 파헤치는 동시에 사회 상황이 갖고 있는 한계이자 문제점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방각본 살인사건]이 시작이자 소개고, 그 희망찬 남인들의 소망을 담아냈다면, [열녀문의 비밀]에선 보다 현실적인 상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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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단편 컬렉션-중'책|만화|음악 2010. 2. 1. 15:30
여기 미야베 미유키가 뽑아낸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들은 추리소설의 범주를 넘어 본격 문학에 가까운 질감을 선사한다. 범죄 자체에 대한 외향적인 흥미보단 범죄가 발생하게 된 내면적인 동기와 인간에 대해 더 큰 관심을 보이기에 그의 글에는 언제나 현실의 피로함이 담겨있다. 그는 인간 내면의 비틀어진 마음과 추악하고 비겁한 탐욕 그리고 사회화 속에서 탄생되어지는 컴플렉스에 대해 뛰어난 성찰을 보인다. 어떠한 감정과 시선도 담지 않은 채 냉랭하게 인물을 쫓아가는 그의 메마르고 건조한 필체는 까끌한 시멘트 벽과 같은 사회의 본 모습을 대변하는 듯 하다. 묵직한 두께만큼이나 묵직한 감성을 던져주는 세이초의 무게감이 본 단편집의 묘미다. 여자와 남자로 구분지어 그의 본격적인 면모를 소개하는 중편이야말로 본 컬렉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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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누군가'책|만화|음악 2010. 1. 29. 05:35
소소한 현실의 미스터리를 그리면서도 그 안의 어둠과 고뇌의 무게감을 담아내는 그녀의 필치는 여전하다. 담담하니 별다른 수식없이 써내려가는 문체 뒤에 예리하게 숨겨져 있는 수많은 감정과 상처들은 인간사 본연의 색깔을 보여주듯 형형색색의 다채로움을 뽐내지만, 저마다 응축된 독과 치명적인 악취를 지니고 있다. 일상이라는 덮개에 살짜기 덮여 드러나지 않았을 뿐, 사회의 가장 뿌리깊은 악의 시작은 그 소박하고 미묘한 심연 속에서 싹트고 있음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녀가 마츠모토 세이초 이름 뒤에 거론되는 건 그 때문이다. [이유]와 [화차] 등 빼어난 사회파 미스터리를 선보인 미야베 미유키는 [누군가]에서도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아무래도 주인공인 스기야마가 경찰이나 탐정이 아닌 회사원인만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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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와 아리마사의 '신주쿠 상어'책|만화|음악 2010. 1. 22. 11:30
어느 순간 사람들은 강함을 갈구한다. 육체적인 것을 넘어 정신조차도. 감정을 넘어선 평정심과 미련 따윈 남기지 않겠다는 냉장고 4도씨의 쿨함을 유지하고 싶어진다. 이 비루하고 지저분한 세상 살아가기엔 이성과 논리 그리고 감정만으로 대응하기 너무 빡세고 지치게 만드니까. 그래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캐릭터가 있다. 그리고 그 인기는 한때의 유행으로 치부하기엔 꽤 오래간다. 마이크 해머와 신주쿠 상어 '사메지마'가 그렇다. 그들은 차거운 현대 사회의 진정한 파수꾼, 그러나 내 여자에게만큼은 따뜻한 남자들이다. 평범하기 그지없던 오사와 아리마사를 단숨에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신주쿠 상어]는 87분서 경찰시리즈에 필립 머로우를 믹스시킨 듯한 하드보일드다. 동물적인 섹시 다이너마이트 마이크 해머에 비한다면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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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브루투스의 심장'책|만화|음악 2010. 1. 22. 02:38
도서형 추리소설의 가장 불편한 점은 주인공과 나를 도무지 일치시키지 못하겠다는 거다. 준법 정신이 강력하게 박힌 바른생활 사나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질 걸 뻔히 알고 보는 스포츠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겨서 찜찜, 져도 화가 나는 승부에 도무지 몰입감이 안 생긴다. 아일즈의 '살의'를 읽다 몇번이고 던져버렸던 건 그런 심적인 부담감이 강해서였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여기서 절충안을 던진다. 반은 도서형이지만 나머지 반은 퍼즐형으로 바꿔버리는. 살인 릴레이라는 스릴 넘치는 트릭도 재밌지만, 그대로 벌어지지 않는 사건의 역전성이 뭣보다 X구멍 죄이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읽는 순간 독자를 마취시키는 능력은 좋은 작가만이 가진 미덕이다. (히가시노의) 문제는 책장을 덮으면 그대로 휘발되는 글들도 상당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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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츠지 유키토의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책|만화|음악 2010. 1. 21. 12:16
[암흑관의 살인]보다 먼저 읽었지만 나중에 끄적거리는 이 키리고에, 일명 [무월저 살인사건]은 신본격의 기수 그리고 이젠 중견으로 우뚝 선 아야츠지 유키토의 전형적인 품새를 갖췄다. 고립된 지역, 한정된 인원, 그 속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그리고 정정당당한 승부의 트릭과 퍼즐 맞추기 묘미가 바로 그것. 그러나 태생적 한계에 의해 기시감의 향기를 진하게 머금고 있는 신본격의 승패는 트릭과 동기의 기발함 그리고 분위기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하기에, 이미 관 시리즈로 독특한 캐리어를 구축한 아야츠지 유키토는 여기서 한발 비켜서 존 딕슨 카를 연상케하는 초자연적인 색채를 불어넣는다. 언제나 이런 '폭풍의 산장' 류의 작위성이, 그리고 다소 납득이 안가는 범인의 미묘한 동기가 살짝 걸리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추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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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책|만화|음악 2010. 1. 21. 02:19
나날이 잔혹해지는 사회 범죄 앞에 무력한 일반 시민을 더욱 열받게 만드는 건 모순된 제도 탓이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일면만 바라보는 시선 또한 가슴을 시퍼렇게 멍들게 만드는데,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벙어리 냉가슴이란 답답한 감성까지 잘 파고든 미스터리가 바로 [천사의 나이프]다. 점점 어려지면서 영악스럽기 짝이 없는 소년범죄를 파고든 이 소설은 사회파 계열처럼 강렬한 이슈와 화두를 던지면서도 반전이란 깜짝쇼를 통해 퍼즐 미스터리의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련한 솜씨다. 죄값과 갱생이라는 상반된 입장 아래에 놓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헤아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청기 내려 백기 올려 식으로 어느 한 쪽의 손을 막연히 들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