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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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다!잡담 2011. 9. 22. 05:52
더듬더듬. 이불을 못 찾아 잠에서 깨어났다. 투덜대며 몸을 일으켜 멍 때리고 있으니 초등학교 갓 들어간 녀석마냥 코를 훌쩍인다. 선풍기가 돌고 있나 싶어 바라보니 창문이 열려있다. 그 틈 사이로 싸늘한 기운이 노골적으로 들어온다. 소름이 돋아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뒤집어 썼는데 이 녀석 홑이불이다. 잠이 아이올로스 심통에 날아가버린 거 같아 마지못해 일어났다. 옷을 껴입으며 며칠 전만 해도 그렇게 더웠는데, 여름은 대체 언제 가는 거냐며 투덜댔는데, 돈 벌면 젤 먼저 에어컨부터 놓겠다 소리쳤는데, 이제는 소용없다 생각했다. 비로소 윤종신의 '9월'이 제법 어울리는 날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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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잡담 2011. 9. 14. 07:05
비가 지긋지긋하게 내리던 지난 8월초. 휴가 맞은 친구와 함께 145년만에 귀환이라는 외규장각 의궤를 보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꾀죄죄한 인생에 가끔은 이런 건설적인 문화체험학습의 장을 만들어 컬쳐쇼크를 느껴보는 것도 좋은 일인듯 해서. 그러나 마침 초등학생 방학 기간인지라 인파는 가히 폭발적! 후레쉬 터트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장난치지 말라고 타일러도 막무가내. 뜀박질과 소음이 난무하는 가히 악몽 속의 관람이었다. 다른 의미에서 컬쳐쇼크였다고나 할까. 그래도 의궤는 정말 아름다웠다. 아직까지도 이렇게나 선명한 색상을 간직하고 있다니. 더보기 닫기 대한제국기 황제용/황태자용 의궤. 현종과 명성왕후의 혼례. 현종의 장례. 우리에게 의궤란 이런 것이다.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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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푸른색, 리스테린.잡담 2011. 7. 12. 06:52
양치질만으론 답답해 소금물 가글을 했었는데, 매번 섞는 비율이 달라지는 게 짜증나 아예 구강청정제를 들였다. 어떤 놈으로 할까 고민할 것 없이 넷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리스테린으로 말이다. 솔직히 푸른색의 맑고 고운 빛깔로 찬란하게 유혹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악명(?)은 익히 들어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뭐 그래봐야 호올스 물 탄 거 정도 되지 않겠어? 웃으며 입안에 털어 넣었다. 오 마이 갓! 입안에 넣고 가글을 한지 5초만에 세포막을 확 쪼여오는 기분은 마치 소금 한 줌을 입 안에 넣고 씹어대는 걸 넘어 염산 한 통을 들이부은 것 만큼이나 화끈하고 강렬하게 다가왔다. 타들어가는 아픔! 절로 새어나오는 눈물! 비명에 가까운 신음! 3단 콤보. 금방 내뱉고 찬물로 정화를 해보지만 이 얼얼한 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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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안대의 위엄!잡담 2011. 6. 23. 03:04
한국에서 뉴욕 표준시로 생활하는 입장에서 가장 괴로운 건 뭐니뭐니 해도 아침에 드는 잠일텐데, 침대에 누워 창밖에서 찬란히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할 때마다 뱀파이어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았다. 아, 미칠듯이 졸려운데 잠 못드는 게 자연광에 살갗이 타들어가는 기분과 맘먹는구나.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어머니께서 낮잠 주무실 때 쓰시는 수면 안대를 특별히 하사하셨다. 이런 거 뒤집어쓰고 자면 불편해서 어떻게 사노 하는 우려와 달리 쓰자마자 꿈나라로 직행. 수면 안대님의 위력을 몸소 체험하고는 두 개의 엄지를 감히 치켜세우게 되었다. 이건 신의 발명품이구나. 비로소 득템했군. 이제는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무섭지 않다. 내가 자는 곳에 밤이 있으리니. 뱀파이어에게 권해주고 싶은 최고의 선물. 그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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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비.잡담 2011. 4. 7. 12:42
나가선 안 되는 날, 꼭 더 바쁘다. 황사가 몰려오고, 오존주의보가 발령되며, 이렇게 방사능 비가 내리는 때 몇날며칠 없던 약속이 중첩됐다. 누군가 일부로 이날로 몰아넣은 듯 겹겹 레이어로 쌓인 일정이 왜 이리 야속하기만 한지. 호사다마인가. 신경 바싹 세우고 한방울이라도 맞을까봐 몸 사리며 외출하는데 천지빽가리로 튀어오르는 물세례가 당혹스럽다. 기분학상 그 한방울 한방울에 피로감이 몇만배 상승한 느낌이고, 벌써부터 온몸이 곤약처럼 노곤노곤해진다. 세슘과 요오드로 더럽혀진 옷들을 왠지 소각해야 될 것만 같고, 알몸으로 산소 탱크에 들어가 방사능 체크를 하며 온 몸 구석구석을 정화하고픈 심정이다. 그러나 현실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주적주적 내리는 봄비 속을 운치있게 거닐며 돌아다니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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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히어로.잡담 2011. 3. 31. 04:25
객차의 소음은 이어폰에서 흐르는 기타의 영롱한 울림에 이내 묻혀진다. 덜컹거림에도 리듬을 맞추느라 손이 분주하다. 눈의 깜빡임도 잠시 멈추고 쏟아져 내려오는 음의 향연에 집중된다. 5분이 채 못되는 시간 동안 게리 무어와 지미 페이지가 빙의된 듯 현란하게 연주한다. 아직은 서툴지만 마음만은 락스피릿과 메탈혼으로 똘똘 뭉친 전설의 기타리스트다. 방사선 동위원소를 쬐인 사람들처럼 무표정한 낯빛에서 달달한 생기의 원천이 피어난다. 대낮 무료하고 공허한 도심의 공기 속에서 그렇게 음악의 힘을 가진 기타 영웅이 깨어난다. 기나긴 지하철 출퇴근 속에서 아이팟용 기타 히어로 삼매경에 빠졌다. 이 재밌는 걸 왜 이제 알았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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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은 내 친구.잡담 2011. 3. 22. 02:38
좌절은 친구처럼 다가와 의욕을 무참히 짓밟고 함께 걷길 원한다. 때때로 주눅과 긴장이란 녀석들을 대동하기도 하는데, 그럴때마다 옛다 슬럼프! 선물을 건네주곤 한다. 고맙게 받아들면 잠수 타는 건 기본, 주위에 '안 될거야' 기운을 전파시키며 같이 다운되게 만든다. 두통과 짜증유발은 당연하고, 판단미스에 사고정지라는 보너스까지 안기니 그 두툭한 인심은 그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후하기만 하다. 화 내고 애원하며 절교해도 끈덕지게 그간의 친분을 내세워 관계를 회복하는 좌절은 욕심쟁이(후후훗~). 제발 당분간 만나지 말자. 무심코 소비해버린 오늘이 얼마나 얻기 힘든 일상인지 새삼스레 고마운 요즘, 특히 좌절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