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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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운의 SSD 라이프.잡담 2012. 3. 16. 16:19
겨우내 그지같은 컴퓨터 한번 체질 개선 좀 시켜볼라고 SSD 하나를 형님께 하사받았다. 문제는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갑작스레 컴퓨터에 날개를 달아주었더니, 이 자식 너무 좋아 막 블루스크린 에러를 남발하며 다운되고 흙바닥에서 개헤엄을 치는 게 아닌가. 천리마처럼 쌩쌩 날아댕겨도 시원치 않을 판에! 하여간 뭘 해도 바쁘기 그지없는 황금같은 시간에 윈도우 깔기만 수만번, AS센터에 택배 보내기도 세차례, 다른 제품으로 교환도 받고, 숙련된 서비스센터 과장에게서 1:1 빨간펜 지도 첨삭까지 받았음에도 비약적인 성능 개선으로 놀란 컴퓨터의 급체 증상은 멈출 줄 몰랐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미련없이 포기. 형에게 SSD를 반납하고야 말았다. 아주 주옥(이라 쓰고 zot이라 읽는다)같은 컴으로 회귀하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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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프레가 끝나고 난 후.잡담 2012. 3. 14. 14:05
언제부턴가 나라는 사람을 코스프레하기 시작했다. 본질은 어디론가 휙 증발해버린 채 형에게 물려받은 외투를 걸친 어린 내 모습처럼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자연스럽지 못한 움직임, 꾸밈이 느껴지는 말투, 굳어버린 미소와 예전같지 않은 낯가리는 글발까지. 마리오네뜨 인형처럼 삐걱거리는 리듬과 엉성한 템포로 나라는 사람을 열심히 연기하고 있었다. 허울 좋은 허상뿐, 진심은 무엇이었는지 이제 잊어버렸다. 왜 그리 살아온 걸까. 뭘 하고 싶었던 걸까. 옷을 벗어던진 요즘 부쩍 공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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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정기승차권을 끊었다.잡담 2012. 3. 8. 16:59
지하철 정기승차권을 끊었다. 고딩 시절 통학을 위해 마그네틱 정기권을 끊은 이후 처음이다. 카드로 충전하게 된 다음부터 정기권이란 게 따로 존재하는지도 몰랐는데, 그 만큼 일상이 달라진 건 아닐까 살짝 설렌다. 큰 변화야 있겠냐만은 그래도 이런 기회가 주어졌단 사실에, 짧지만 조금 다른 길과 미묘한 내 판단에 힘을 실어보련다. 쉬 피곤하고, 좀 뻘쭘하며, 확 다른 기분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듯. 예전엔 겁도 많았지만 저지르기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자꾸 무덤덤해지려는 감정의 게으름이, 끊임없던 시도의 퇴화가 제일로 섭섭하다. 익숙함을 버리고 두근거림을 간직하자. 이런 기분을 꾸준히, 정기 승차권처럼 이용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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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연초에.잡담 2012. 1. 3. 17:51
내 나이의 숫자가 생소하다. 그래도 10대 20대땐 곧잘 쫓아갔는데 30대가 넘어가면서부터 뒷자리가 매년 헷갈린다. 혹여 잘못 말하기라도 하면 이 사람 왜 이래? 눈초리로 바라보는 타인의 관심도 싸늘하게 느껴지고. 설마 천일의 약속 꼴이겠냐 싶지만 나이뿐만이 아니다. 몸도 마음도 예전같지 않다. 체력은 나날이 상실의 시대고, 자신감은 내 조루 핸드폰 못지않게 방전일색이다. 그래서 작심삼일의 고향 연초가 돌아왔으니 모처럼 나도 그럴듯한 플랜과 비전을 세워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실은 2012년 세계멸망의 해를 맞아 '신과 함께' 지옥 가기 전 바르게 살고자 노력했단 걸 조금이라도 만회해보잔 심보가 더 크다. 그래도 막판엔 참회하고 회개하면 나도 고문목사 이근안처럼 용서 받고 잘 살 수 있을 거 같아서.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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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연말이 이게 뭐니..잡담 2011. 12. 31. 04:59
엔트로피 증대를 운운하며 애초에 하늘이 점지해 준 운명이나 사주팔자같은 요행 따윈 믿지 않는다고 큰소리 뻥뻥 치고 싶지만 사실 난 그렇게 결벽적으로 이성적인 사람이 못 되는 편이고, 년초부터 지금까지 초지일관 꼬여만 가던 여러 일신상의 사유들을 보면 정말 감히 웃어넘길 수도 없는 운세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 건 아닐까 심각하게 고려하게 만든, 참으로 힘든 지난 1년이었다. 결국은 쉽게 풀 수 없는 매듭을 하나 선사받고 한 해를 급하게 마무리하게 되었는데, 이를 어찌 해야할지 참으로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훈훈한 패가망신의 법칙이자 운수대통의 변곡점에서 부르짖던 '못 먹어도 GO!'를 외쳐야 할지, 이 게으른 손모가지 걸고 오햄머를 앞에 두고서 결혼해DUO도 부러워할 만한 인생플랜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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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 속 SSD 라이프.잡담 2011. 12. 8. 05:25
원치 않는 데서 경제적 출혈이 생겼다. 임기응변을 모색하느라 심란한 마음이 한가득. 게다가 며칠째 피부 트러블로 안경을 쓰지 못해 세상이 막막한데, 속까지 완존 곯아 개고생 중이다. 화장실을 내 방처럼 머물며 자칫 이렇게 살다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강하게 머리를 때렸다. 가히 최악의 년말이다. 하지만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고 했던가. 아니 그 반댄가 암튼 잘 모르겠지만, 이 암울한 나날에 한줄기 희망찬 소식이 있었으니, 드디어 내게도 파코즈의 시민권이라던 SSD를 달 기회가 생겼다는 것! 비록 최신 올 깜장의 쉬크하고 도도하며 치명적인 매력의 830시리즈는 아니지만, 한없이 버벅대는 내 컴에 470도 왠 피렐리 슈퍼소프트 타이어 만큼의 호사란 말인가! 어차피 내 컴은 sata3가 뭔지도 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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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텍 무선 터치패드.잡담 2011. 10. 29. 23:24
유난히 하루 온종일 컴퓨터 붙잡고 마우스 혹사질을 하는 동생을 불쌍히 여긴 형께서 무지무지 고맙게도 특별 선물을 하사해주었다. 이름하여 로지텍 무선 터치패드! 애플에서 인기리에 사용된다는 매직트랙패드에 대응되는 녀석으로 마우스와 타블렛과는 또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입력장치다. 쉽게 설명하면 노트북에 붙어있는 패드가 대략 5인치 크기로 따로 나와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멀티 터치 제스쳐에 따라 다양한 기능이 작동한다. 손목을 장시간 얹어놓고 사용하는 마우스와 달리 손가락으로 모든 동작을 소화하는 터라 굉장히 편리한데, 한 손가락/ 두 손가락/ 세 손가락/ 네 손가락 터치가 모두 달라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꽤나 헛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허나 익숙해지는 순간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톰형 못지않은 현란한 손가락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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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을 알게 됐을 때.잡담 2011. 9. 28. 03:52
목을 쭈욱 빼고 기다렸을 때 도착하지 않은 기회는 언제나 술 마시고 돌아가는 길 막차 버스처럼 헐레벌떡 찾아오고, 이를 간신히 잡아타면 우리 동네 가는 버스인지 슬슬 번호가 헛갈리기 시작하는 법이다. 자랄 걸 대비한다고 몇 치수 크게 사면 거기까지 크지 못하고, 내 앞 타석까지 올 것 같던 야구 경기는 그 전에 끝나고 만다. 기회가 제때 제때 알아서 사정 봐가며 다가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은 약 70억 인구가 득실대는 그 속에서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는 사실에 되려 감격하고 감사해야 할 상황. 오디션마저 잡지 못한 무수히 많은 재능들은 어디선가 썩은내를 풍기며 곯아터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 세상은 원래 그런 법이다. 공정은 무슨! 야속하고 잔인한 쟝글인 걸 몰랐단 말인가! 타카피 노래 '글로리 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