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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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받다.잡담 2012. 12. 17. 03:30
바야흐로 마야력이 끝난다는 2012년 12월 21일 금요일 세계 멸망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천주교에 귀의했다...는 사실 뻥이고, 지난 늦여름부터 차근차근 예비자 교리를 이수해 무사히 세례를 받았다. 천주교 집안에서 자라면서도 오랜 기간 무신론자로 버텨왔던 터라, 혹 모종의 건강상 이유나 급작스런 심경의 변화, 아님 성당 오빠의 흑심을 노린 것 아니냐는 등의 의심 아닌 오해를 받아왔는데, 아니다. 그런 거 절대 아니고, 나이가 들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고, 기대고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해지면 어떤 종교든 차별없이 다녀보려고 예전부터 생각했었다. 단지 그 시기가 예상보다 빨랐던 셈이다. 계획은 한 오십부터 천천히...였는데. 흑. 종교를 가졌다고 갑작스레 하늘에서 꽃가루가 내려오고, 한강이 두쪽으로 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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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은 아프다.잡담 2012. 12. 9. 23:21
조짐이 좋지 않았다. 이미 5번이나 미끄러질 뻔한 기운을 간신히 추슬러 걷고 있던 터라 다음에 찾아올 위기엔 뭔가 사단이 나겠거니 막연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양손에 든 짐 또한 결코 균형을 잡는데 도움이 되질 못했다. 진짜 최악이었던 건 바로 신발이었는데, 하도 오래 신어 밑창이 맨들맨들해진 마찰계수 제로의 구두였다. 미끄럼엔 그저 쥐약. 마치 힐리스처럼 빙판길에선 쭉쭉 미끄러졌는데, 다리에 잔뜩 긴장을 머금은 근육과 초집중 정신력으로 가까스로 제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깜빡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이하이의 ‘여전히 정신 못 차려 왜’란 구절에 정줄을 놓은 순간, 왼발이 미끈! 오른발에 힘을 주는데 역시나 미끈! 아 씨ㅂㅏ...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발이 모두 공중으로 붕 떴다. 중력은 아프다. 허리와 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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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잡담 2012. 12. 7. 04:39
때 이른 폭설이 도래했다. 아직 한겨울이 되기엔 한참 모자란 12월초. 싸래기처럼 날리던 가루들이 이내 굵어져 펑펑 쏟아졌다. 마치 요동을 치며 혼전으로 치닿는 하루하루 같다. 금세 질척해 더러워질 게 분명한데 깨끗한 척 모든 걸 덮는 모습이 가증스럽다. 엉금엉금 기는 차들은 못 봐주겠다. 때마침 버스 엔진에서 들려오는 영감님 가래 소리. 미끄러움을 부끄러운 몸뚱이가 주체하지 못하는 건 사람이나 사물이나 비등하다. 괜시리 서글프다. 녹아서 물기로 엉망이 된 신발에 애꿎게 화를 풀어본다. 더딘 속도의 차들이 점점 도로에 쌓인다. 쌓이는 건 눈과 그리움만이 아닌가 보다. 강추위도 함께 닥쳤다. 겨울이다. 진짜 겨울이 시작되었다. 올해가 가기 전 따뜻한 소식을 꼭 좀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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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다, 디지털 컨버터.잡담 2012. 11. 21. 23:47
아날로그 방송이 오는 12월 31일 종료된다. 이미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곳이 종료됐다고 하니 어쩌면 이런 푸념도 때늦은 뒷북인지 모른다. 이미 남들은 LED TV다, 3D LCD다, 하다못해 PDP나 케이블 혹은 위성을 달아 디지털 방송을 보는 편인데, 아직까지 감시용 편집용 모니터에 비디오와 쌍팔년도 V자 안테나를 연결해 아날로그 방송을 시청해왔던 내게 연말 송출 중단은 꽤나 심각한 현안이었다. TV를 한 대 장만하자니 철저한 서민 코스튬을 지향하는 나로선 경제적 출혈이 장난 아니고, 케이블이나 위성을 신청하자니 가뜩이나 폐인 증상을 보이는데 크리티컬 포인트를 선사할 것 같고. 고민과 고민 끝에 (황송하게도) 정부가 4만원이라는 거금을 선뜻 옛따 지원해준다는 디지털 컨버터를 우체국에 달려가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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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항해술.잡담 2012. 9. 27. 04:51
비행기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날아갔다. 소리에 비해 속력은 빠르지 않았다. 노인학교 컴퓨터 실습실에서 보이던 마우스질만큼 더딘 속도였다. 마우스 포인터처럼 작았지만 무게감이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노인들의 팔에서도 종종 그런 느낌을 받았다. 세월의 무게감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다져진 신중함과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두려움과 경이가 섞여 의지의 속도를 경감시켰다. 신경의 무던함과 근육의 낡음도 한몫했다. 그들의 느림은 처량했다. 여유조차 구질구질하게 다가왔다. 느림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남은 건 슬픔뿐이었다. 굼벵이같은 비행기가 늦여름의 짜증을 더했다. 유난히 큰 소음이 존재감을 부각시켰고, 느림을 강조했다. 비행기는 원래 빠름빠름빠름 하며 지나가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러나 저 파란 하늘을 유유히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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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날씨.잡담 2012. 8. 31. 04:53
습기를 잔뜩 머금은 잿빛 하늘은 동네 서예학원에서 못쓰는 글씨를 어떻게 하면 감출 수 있을까 고민하며 마주하던 엄숙한 화선지를 닮았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 종이는 까끌까끌하니 성글고 메마른 회색이었다면 저 무겁도록 낮은 하늘은 손가락을 살짝 찌르면 금방이라도 먹물을 흘릴 듯 젖어있다고나 할까. 핫요가 부럽지 않던 무더위가 물러가버리고 찾아온 건 두 개의 태풍과 내 방 선풍기 바람보다 더 센 강풍 그리고 미칠 듯 불유쾌한 습도였다. 그런 변화가 제법 몸에 익을 나이때도 됐지만, 언제나 계절이란 내 기대보다 빠르거나 혹은 늦곤 했다. 그리고 그건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어김없이 계절이 지나간다. 인터벌 촬영 속 화면처럼 주르륵 흐르던 변화무쌍한 구름이 오늘의 날씨를 이야기한다. 영원히 맞추지 못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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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그 무더움에 대하여.잡담 2012. 8. 7. 03:09
불볕이다. 94년 이후 최고의 서울 더위라는데, 젊음의 혈기가 그 온도보다 더 불을 뿜었던 그땐 사실 그리 더운 줄 모르고 죽어라 농구만 했던 기억이 선하지만, 지금은 좀 버티기가 많이 힘들다. 나이가 들면 경험도 많고 연륜이 쌓여 참을성도 늘어날 법하지만... 쥐뿔! 40도에 육박하는 방 안에 앉아 책이라도 읽거나 모니터라도 바라보고 있으려면 어느새 정신을 잃고 의자에 녹아 달라붙고 만다. 간신히 의식을 차리고보면 타임워프라도 한 양 시간이 후딱 증발해있다. 샤워하고 물 먹고 정신 잃고 샤워하고 물 먹고 정신 잃고가 무한 루프로 돌아가는 하루가 이젠 끔찍하다. 이글이글 작열하는 태양 아래 유일하게 남은 내 희망과 용기마저 쉬 녹아버릴까 두렵다. 같이 맞불 놓기에 이 나이는 연일 지속되는 35도의 날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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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을 취득했다.잡담 2012. 7. 10. 15:56
자격증을 취득했다. 운전면허 이후 국가공인자격증이 얼마만인가. 올초에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하나가 손 안에 들어오니 제법 기분이 뿌듯한 게 매년 하나씩은 따줘야겠다는 건방진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같이 준비한 자격증 하나는 실기에서 떨어지고 말았는데, 워낙에 부정적인 기운이 강한 사람인지라 하나 붙었다는 사실보단 하나가 떨어졌다는 자괴감에 더 우울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실물로 자격증을 받고나니 그 괴로웠던 마음이 눈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아 이 알량하고 한없이 가벼운 멘탈이여. 종종 자격증 수십개인 사람들이 방송에 나오면 왜 저걸 저렇게 모으나 의문을 가졌었는데, 그 기분 조금 알 것도 같다. 어느 커트라인을 넘어섰다는 - 일종의 자신감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나 할까. (물론 떨어지면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