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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진의 '박종진의 쾌도난마'
    책|만화|음악 2012. 11. 11. 19:57

    언제부터인가 시사정치 관련 이슈에 대해 떠드는 일이 急피로해졌다. 당장 먹고살기 급급해서 그렇다 핑계를 대보지만, 사실 우두머리 하나 잘못 뽑아놓는 것만큼 실경제, 사회생활에 직접적으로 파탄을 던지는 게 또 어딨냐 묻는다면 할말은 없다. 그저 일차원적으로 치고박고 너 잘났니 나 잘났다 외치고 싸우는 꼬락서니가 시끄럽고 보기 싫어 그렇다고 해두자. 가뜩이나 분단돼서 좁은 나라 좌우 편을 가르고, 색깔 공세로 팬질을 해대는 똘끼 충만한 것들과 고루하니 머리 속에 똥만 가득찬 것들의 대립과 아집에 꼴불견이라 욕하고 돌던지는 것도 이젠 지겹다. 차라리 그 시간에 예능을 보며 바보같이 웃던지, 우후죽순 생기는 오디션 프로를 보며 다소 인위적이더라도 감동 하나라도 더 받는 게 낫겠다. 가뜩이나 안 풀리는 인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피곤한 삶 속에서 가학적으로 시사정치 관련 뉴스를 보며 내 자신을 들볶을 필요는 또 없지 않은가. 소통되지 않는 벽에 지치고 막무가내로 돌아가는 상황에 혈압 오르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서는 냉담한 체념과 뜨거운 한탄은 더 이상 맛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피해왔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일.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는 대선일에 맞춰 여기저기 들려오는 풍문과 깨알같이 쏟아지는 논란거리에 눈과 귀가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극히 공세적인 날선 공방과 더러운 물타기가 여전히 자행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결과가 뻔히 보일 것만 같던 삼파전에서 엎치락 뒤치락 한치 앞도 모를 박빙의 양상으로 짜릿하게 흘러가는 이 게임 같은 구도를 거부하기란 바카라나 담배 끊는 것마냥 어려운 일이 될 듯 싶어 오랜만에 시사정치면으로 눈을 돌렸다. 그랬더니 그 중심 한켠에, 여전히 어이없는 시청률이긴 하지만, 나름 종편에선 꽤 높음을 자랑한다는 '박종진의 쾌도난마'가 눈에 들어왔다. 왠만한 예능보다 더 큰 웃음(?)을 보장한다는 정체불명의 소문도 함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황상민 교수의 생식기 발언도,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변신시킨 전당대회 돈봉투 특종도 여기서 나왔다는 나름 화제의 이슈메이커 대담프로였다. 동아일보사 채널A라는 보수매체의 태생과 달리 이 방송의 캐치프레이즈는 '보수-진보, 좌우를 넘어 사람이 중심인 날선 비판'을 내세웠는데, 과연 그러한 중도의 길을 성공적으로 걸어가고 있는지 꾸준히 시청하지 않아 알 수 없었지만 대신 그 동안 방영됐던 15명의 패널과의 대담을 묶어낸 동명의 책을 통해 프로그램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책 띠지에 둘러진 카피가 무색하게 본문에 등장하는 패널 대다수의 성향은 보우우파쪽으로 치우져 있는데, 당적이 민주통합당으로 돼있는 이성 구로구청장을 제외하고 - 민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갈아탄 김경재 前의원이나 한나라당에서 출발해 민주통합당으로 자리를 옮긴 윤여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애매하지만 - 중도적인 입장을 취한 황상민 교수나 소설가 김진명의 분량을 그 대안으로 삼기엔 조금 많이 편협해 보였다. 물론 책 서두에서 박종진 앵커가 직접 야당의원들과 친하긴 하지만 섭외는 힘들었다고 푸념을 늘어놓지만, 진정 방송이 사측 외압이나 진행자 자신의 이념적인 성향에서 자유롭다면 누군들 꺼리겠는가 하는 반문이 생겨나는 게 못내 아쉽다. 그런 이유로 강용석, 이준석, 전여옥, 김종인, 이동관, 신은경과 박성범, 박선영 등 주로 여당에서 활약하던 이들의 생각과 상황을 접할 수 있는데, 즉각적이고 즉홍적으로 반응이 오던 방송과 달리 명료하게 정리된 텍스트를 통해 발언의 뉘앙스와 그 뒷배경에 대해 전후좌우 맥락을 곱씹어 볼 수 있었던 건 나름 수확이었다. 무조건적으로 반감을 가지고 상대를 배척하고 무시하기보다 그 입장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던져주니까. 말과 글은 확연히 다르다. 방송과 책 또한 그 느낌이 분명 다를 것이다.

    책은 충실한 방송의 복기이자 후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가령 총선전 고소 크리로 가히 아이돌급 관심을 얻게 된 강용석 前의원부터 돈봉투 사건과 표절 시비에 휘말리다 결국 정계를 떠난 전여옥 前의원, 이회창과 박근혜, MB 정부 탄생을 도왔지만 지금은 안철수를 끌어내고 문재인측에 선 윤여준, 그와는 또 반대로 DJ의 정치적 아들이란 평가에서 지금은 새누리당에 선 김경재 前의원, MB정부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이동관 前대변인과 박근혜 후보 캠프의 명암으로 드리워진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김연아 교생 건과 이번 생식기 발언으로 채널A대첩을 넘어 일파만파 충격파를 던진 황상민 교수 등 다양한 발언들을 생생히 담아내면서도 세세한 각주와 인터뷰 뒷이야기를 첨부해 일회성으로 소비될 전파의 한계를 보완했다. 또 방송된 이후 변화된 인물들의 상황을 통해 지형도를 다시 유추하고 재정립할 수 있었던 건 색다른 재미였다. 6개월 전과 달리 지금의 김종인과 박근혜의 벌어진 틈을 보면 더욱 그렇다. 대선을 한달 앞둔 이 미묘한 시기 책이 출판됐다는 것과 진보진영의 입장에 대한 형평성 논란 문제에선 비록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2012년 정치판 주요인물들의 등퇴장과 주요한 이슈, 그리고 그 대화(혹은 변명)을 러프하게 스케치했다는 점에서 나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한계점 또한 現언론과 비평계의 상황을 그대로 조망해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가볍게 대선정국과 시사현안에 대해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메리트가 있지만 진보성향에겐 다소 불만족스러울 것 같다. 그리고 그건 책 '박종진의 쾌도난마'뿐만 아니라 방송 '박종진의 쾌도난마'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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