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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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중의 '비어 헌터 이기종의 유럽맥주 견문록'책|만화|음악 2010. 9. 21. 05:31
다리 부상 이후 알콜을 전혀 입에 대보지 못한 관계로, 술에 관계된 책이라도 읽으면 그런 갈망이 좀 가시겠지 싶어 집어들었는데 오판이었다. 세상에 이런 둘도 없는 미련한 짓이라니. 한밤중에 음식 짤방 보고 잠 못이루는 밤을 맞이하는 기분에다 때 마침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전기통닭 냄새가 스며드는 꼴이었다. 눈으로 그리고 활자로 읽는 맥주의 부드럽고 알싸한 목넘김이란 참 메마른 체험이도다. 귀에선 벌써 쏴아아 하니 탄산이 올라오는 환청이, 손에는 공기와 맞닿아 촉촉히 이슬이 맺히는 기분좋은 착각이 생생했다. 목울대가 절로 젖혀지며 마른 침이 넘어가는 나는야 디오니소스의 승냥이. 오 제발 한 모금이라도 실제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렇게도 실감나게 써놓으면 읽는 사람들은 어찌하라고. 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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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쓴 이유.음식|스포츠 2008. 4. 27. 22:28
술이 쓴 이유는 화학적인 설명으로만으로 부족하다. 술이란 매개체를 통해 진심을 털어놓는 사람들의 자태가 답답하고 안타까워 그런 거다. 취기를 빌어 내 굳게 닫힌 가슴에 꽁꽁 열려있던 진심이 누수되길 바라는 비겁한 마음 때문에 자조 어린 쓴 맛이 드는 거다. 솔직하지 못한 내 자신과 과장된 연극배우 탈을 쓴 자아의 껍데기에 건배를. 술이 단 이유는 그런 모습을 잊기 위해서다. 자꾸 마시면서 쓴 맛을 잊듯 내 진심을 지워버리는 거다. 그래서 술은 쓰고 단 맛이 나는 거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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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백태 Alcohol百態.음식|스포츠 2008. 3. 2. 23:49
만화경 세상. 알록달록 빛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시야에서 의지는 나약하기만 할 뿐. 쓰디쓴 자극은 목구멍을 타고 넘어와 신경을 마비하고, 감각을 극대화한다. 확장된 혈관을 마하 2.45의 속도로 지나는 알콜은 온 몸에 퍼져 현실을 판타지로 둔갑시킨다. 잔상 효과와 다중 노출은 기본, 어지럽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무빙에 사운드는 에코가 걸리니 아주 진상이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거북이와 시합하던 토끼와 원조교제하고, 오즈의 마법사가 아더왕을 도와 엑스칼리버를 뽑자, 도로시는 피터팬과 결혼해 홍길동을 낳으니, 호형호부에 목마르던 그가 섬에다 모로 박사를 초청해 돌연변이들을 길러내더니, 훗날 그 섬에 비행기가 불시착하고 마는데, 생존자들이 미스테리를 추적하다 소년 로빈슨 크루소가 구해주더라. 15소년 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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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년회.잡담 2007. 12. 23. 03:11
한국 사회에서 금주나 절주는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지금같은 연말 망년회 시즌에, 나 같은 의지박약은. 사회에서 왕따 당할 거 각오하고, 친구 몇놈 의절을 결심한다면 몰라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 무사히 잘 버티기 위해선 술이란 입장권을 마다해선 안된다. 건강 정도는 가볍게 희생해주는 건 센스. GR발광에 발버둥 쳐봤지만, 금주와 절주는 여전히 내게, 이 사회엔 어려운 숙제다. 그나마 위안거리가 하나 있다면 예전에 비해 주량이 대폭 줄었다는 거. 궤짝으로 놓고 퍼마시던 주당 9단의 실력 발휘를 하던 게 아니라서 줄은 주량이 티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줄여나간다면 반드시 금주에 성공하지 않을까? 아니, 절대 불가능하다는 거 안다. 아주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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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홀릭.음식|스포츠 2007. 12. 5. 03:53
예전만큼 술을 못 즐긴다는 건 슬픈 일이다. 바커스에 이를 정도로 마셔대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술자리만의 요란뻑쩍지근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로선 정말 안타깝다. 언제 이 잔을 비워야 하나. 얼마나 더 마셔야 할까. 다시 몸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을까. 같이 마시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기에, 이제 그 자리가 낯설고 불안하다. 예전처럼 달려보고도 싶지만, 한번 사는 인생 죽으려면 뭔 짓을 못하냐란 충고에 한없이 겸허해지고 만다. 그냥 집에서 영화 보며 간단하게 맥주 두어캔 비우는 정도, 바에서 맛나는 칵테일 몇 잔 마시는 정도, 아니면 와인 1잔에 치즈와 비스켓 뜯는 정도에 만족해야 한다. 내게 음주 생활은 이제 유치원생의 세발 자전거 타기만큼이나 얌전해진 셈이다. 주량의 정확한 정의는 뭘까. 제정신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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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잡담 2007. 6. 9. 16:39
내 주변의 지인들은 거의 대부분, 모스트 오브 올 술을 좋아한다. 아니 술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청년 문화를 겪은 세대다. 고민이 있어도 술, 즐거워도 술, 괴로워도 술, 오랜만에 술, 취직해서 술, 결혼해서 술, 누가 죽어도 술, 태어나도 술. 내면 속의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위해선 술을 필요로 한다. 술이 없는 만남은 있을 수 없고, 술이 없이는 마음 깊이 담아둔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 술 친구를 얼마나 아느냐? 얼마나 만나느냐?에 따라 내 미래가 달라지고, 인간 관계가 개선되고 못되고 판단난다. 전 국민의 알콜홀릭화 현상이다. 대한민국은 지인(知人)이 아니라 주인(酒人)의 관계가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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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술.음식|스포츠 2007. 4. 20. 23:58
우습다. 술이 먹기 싫을 땐 그렇게 술 약속이 많더니, 술이 먹고 싶을 땐 마시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맥주 한 캔의 여유조차 허락되지 못하는 요즘, 딱 저 도쿠리 1병 정도의 따끈한 정종이 마시고 싶다. 노릇노릇 구어진 여러가지 꼬치 구이와 함께 말이다. 미지근한 알콜향이 목구멍 깊숙이 내려가는 느낌. 그 풍취의 일부가 코끝에 올라와 퍼질 때의 전율. 달콤하고 짭짤한 소스에 녹아든 구이의 참 맛이 어울어지는 즐거움을 갖구 싶다. 한 잔의 술이 필요한 T.G.I. 프라이데이(Thanks God It's Friday)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