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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창원의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사건추적'
    책|만화|음악 2013. 8. 31. 22:08


    끔찍하고 잔인하다. 미스터리를 좋아하고 호러물에 열광하지만 현실의 사건들과 마주할 때면 언제나 먹먹한 감정에 빠져들고 몸서리 쳐지는 게 사실이다. 픽션은 어디까지나 픽션일뿐. 이런 일들은 어느 곳에서도 누구에게도 일어나선 아니 된다. 의도하던 의도치 않던 범죄는 인류 최악의 결과물이자 선택지이며, 타인의 고통을 빨아 쌓아올린 잔혹하고 치명적인 욕망의 잔재물이다. 그럼에도 계속 끊임없이 벌어지는 건 S. 존스가 말했듯 언제나 악행이 덕행보다 쉽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것에 대한 지름길을 제공한다.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서로를 속고 속이며, 죽고 죽이는 사건들은 계속 되풀이 될 것이다. 막을 수 없다면 피하는 게 상책인 냉혹한 현실. 전 경찰대 교수이자 범죄수사 전문가로 이름을 날린 표창원은 기존에 벌어졌던 사건들에서 현상과 행동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원인을 분석한다면 효과적인 예방책을 강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대를 달리 해서도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은 패턴을 이루며 반복되고 있기에 잠재적인 범죄피해자가 될 수 있는 절대다수의 독자들이 이를 쉽게 인지하고 주의한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판단한 것이다.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사건추적]은 그렇게 탄생한 책이다.

    그는 이미 이전의 여러 책들을 통해 날카롭고 냉철한 분석과 범죄 심리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보여준 바 있다. 단순히 외국의 사례를 토대로 번역하고 연구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적인 상황과 시대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범죄 매커니즘과 토착화된 유형들에 대해 신경을 기울여 왔다. 4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시대별 원인별로 카테고리화 한 [한국의 연쇄살인]은 그 치밀하고 영리한 기록이었다. 이전의 로버트 해리스의 잔혹한 스릴러 [레드 드래건]이나 [양들의 침묵], 마크 올셰이커와 존 더글러스가 쓴 논픽션 [마인드 헌터] 등을 통해 프로파일링 기법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한국적인 접근법으로 과거 사건들까지 대중적인 시각에서 망라한 건 가히 이 책이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해방 전 일어난 엽기적인 이판능과 이관규 사건을 필두로, 지춘길, 김선자, 온보현, 화성연쇄살인과 수원여성연쇄납치살인, 지존파와 유영철에 이르기까지 신문 지면을 끔찍하게 장식했던 온갖 연쇄살인과 한국형 사이코패스 살인마에 대해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담아낸 그의 생생한 필력은 잔학하기만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사회 전반적인 문제점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무엇보다 그들이 왜 그렇게 괴물이 되고 말았는가 혹은 괴물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비화에 초점을 맞춘 발생기원론적인 추측은 폐쇄적이고 억압된 심리나 가족 혹은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와 모순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아끼지 않으며 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경계감을 깨우쳐준다. 그러한 방향과 시도는 새로 나온 책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사건추적]은 모두 10장으로 나눠져 그간 한국에서 벌어진 다양하고 살벌한 사건들을 담아낸다. 아동 성폭력, 묻지마 범죄, 어린이 유괴살인, 가족(존속)살인, 여성범죄, 다중인격과 살인누명, 절도와 사기, 그리고 주한미군 살인까지. 각 장마다 2-3개의 사건을 기록하며 외국의 사례들과 비교해 사건의 발생원인과 결과, 그로 인해 파생되고 변화하는 사회 전반의 모습들을 담백하게 기술하고 있다. 끔찍한 묘사와 감정적인 어투를 자제하고 심도 깊은 분석으로 시급한 대책 마련과 사회적 보안책에 대해 강하게 토로하고 있는데, 결론에 이르러선 따끔한 촌철살인의 지적 또한 잊지 않는다. 성역 따윈 없고, 정치색도 중요치 않다. 그는 누구보다 범죄를 증오하고, 또 해결하고 싶어 한다. 불같은 열정에 얼음 같은 시선으로 범죄를 바라보고 접근하고 있다. 분량이나 밀도적인 면에서 전작인 [한국의 연쇄살인]에 범접할 순 없지만, 비교적 라이트하게 써진 이 책은 보다 쉬운 접근법과 다양한 사례들로 읽는 이들의 관심을 부담 없이 환기시킨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범죄에 대한 경고장인 셈이다. 범죄의 무서움과 심각성을 깨우치기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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