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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원호의 '천년한 대마도'
    책|만화|음악 2013. 5. 12. 06:51

    이원호는 대단한 소설가다. 질보단 양이지. 이 문장에 정확히 들어맞는 작가랄까. 문학적인 풍취나 예술적 감흥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자극적인 재미와 극적인 박력으로 똘똘 뭉친 200% 테스토스토론 정제 덩어리의 남성용 로망 판타지를 만들어낸 건 분명하다. 데뷔 이래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부지런한 필력은 또 어떻고. 대한민국의 그 어떤 소설가도 같은 시간 대비 그보다 많이 쓰고 많이 팔진 못했을 것이다. 액숀, 기업, 정치, 연애, 청춘, 역사, 추리는 물론 심지어 SF까지 그 어떤 장르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섭렵하는 잡식성의 소유자인데다가 대사 위주의 스피디한 장면 전환과 양념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노골적인 성애 및 폭력 묘사, 그리고 상투적이지만 확실한 플롯으로 중무장한 그의 글은 어떤 작품이 됐던 쉽고 빠르게 읽힌다. 그런 이유로 독자층이 다소 편향된 건 어쩔 수 없는 한계지만 그들은 두텁고 충실하다. 대본소와 도서 대여점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으로 대박을 터트린 그는 자신의 경력대로 장사꾼처럼 소설을 쓰고, 상품처럼 소설을 내놨다. 재미와 감동, 그 하나만을 보고 달려온 지난날이었다.

    대마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세계만방에 천명한다! 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천년한 대마도]는 그래서 그의 이력에 비춰봤을 때 새롭게 다가왔다. 대중 통속작가라는 한계를 넘어 나름 투철한 사명감과 의지를 불태우며 자료조사를 하고, 이야기를 직조해나갈 것이란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두에서나 각종 인터뷰에서도 작가는 밝히고 있다. 1923년 조선총독부 소속 조선사편찬위원회가 역사학자 구로이타 가쓰미 고문 주관 하에 대마도를 방문해 한국 관련 문서 6만6469장, 고기록 3576권, 고지도 34장 등을 불태웠다는 사실을. 일본이 그토록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없앤 이유가 바로 대마도가 조선의 땅이었다는 증거를 없애려고 한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두 집안의 인연을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헤쳐 나간다. 근데 그 방식이 누가 아니랄까봐 딱 이원호식이다. 대통령이나 국방부장관, 북쪽 지도자와 일본 총리의 실제 이름을 사용한 건 물론, 실제 지명이나 장소를 무대로 삼고 중국과 미국, 일본, 북한 등 동북아 민감한 정세를 투영시켜 현실감을 심어주는 건 좋았지만, 자신의 상상력과 재미를 버무려 극단으로 밀어붙인 무협지스러운 판타지는 이전작들과 비교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의미와 취지는 좋았지만 [천년한 대마도]도 결국 이원호 세계관의 동어반복인 셈이다. 김성모의 [돌아온 럭키짱]이 여전히 변함없이 김성모 만화 듯이.

    작가는 동아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대중이 원하는 역사는 결국 이해할 수 있는 역사 아니겠어요? 괜히 교과서적으로 팩트에만 연연해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죠. 제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아, 그렇구나. 일본이 1000년 동안 우리에게서 많이 빼앗아 갔구나. 그런데 우리 한민족은 너무 잘 잊어버리는 민족이구나’ 깨닫도록 썼어요. 대중 역사소설은 재미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지, 의미 속에서 재미를 찾으면 안 돼요. 어떻게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독자들에게 다가가기에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대중 역사소설이나 팩션이 갖는 그 관용도와 허용치를. 언제나 이런 류의 소설들은 재미와 상업적인 오락성 때문에 왜곡된 시선과 역사를 조장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본다. 허나 이 이원호 작가의 신작에 정색하는 것도 사실 우습다. 의미는 좋게 받아들이지만 남성용 펄프 판타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재밌으면 장땡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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