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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arious Artists의 '그대가 들린다'
    책|만화|음악 2013. 4. 30. 23:46

    며칠째 봄인지 겨울인지 여름인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날씨가 이어진다. 싸늘한 바람에 몸서리를 치다가도 어느새 작열하는 태양에 땀을 뻘뻘 흘리고, 비 한 번 내리면 다시 입김이 서리는 날이었다가 펑펑 눈이 내리질 않나, 자고 일어나면 새초롬하니 벚꽃이 활짝 피어있다. 예년에 비해 부쩍 혼동이 드는 날씨다. 최근 몇 년 동안 봄이 실종되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처럼 실성했단 소린 들어보질 못했다. 오락가락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하는 3-4월을 겪고 나니 올해 봄기운은 음악으로나마 접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신청한 게 브라질과 한국 뮤지션 6명이 참여한, 서로에게 음악을 띄워 보내는 독특한 콜라주의 컴필레이션 앨범 '그대가 들린다'였다. 브라질과 봄이란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음반은 따사롭고 산들거리는 봄바람 같은 보사노바 모음집이다. 바다 건너 머나먼 곳에 위치한 서로를 상징하듯 디지팩 커버엔 사진작가 이종훈의 'SEE THROUGH:floating dream' 아트웍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이 보사노바를 탄생시킨 지도 벌써 55년째를 맞이한 지금, 이 장르만큼 '계절'에 민감할 정도로 잘 조화되는 음악도 없는 듯 하다. 봄기운을 머금은 여인 같다가도 여름의 산뜻한 정경을 떠올리게 만들고, 가을의 싸늘한 기운을 녹여줄 커피처럼 부드러우면서, 겨울철 소록소록 쌓이는 눈처럼 담백한 것이 바로 보사노바다. 쌈바보다 덜 강렬하지만 소소하니 가슴을 간질이고, 재즈보다 더 부드럽게 속삭이는 조용한 흥겨움은 이 장르를 그저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브라질에서 오랫동안 활약해온 노장 드러머 세자 마샤두의 제안에 브라질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진 나희경이 화답하며 제작된 이 앨범엔 그들 외에 재즈의 원숙한 묘미를 한국적으로 잘 풀어내는 말로와 월드뮤직에 남다른 애착을 보인 이한철, 브라질 자국 외에서도 널리 알려진 이타마라 쿠락스와 이미 2세대 보사노바 스타로 손색이 없는 마리아 크레우자 등이 참여해 7곡의 EP 분량임에도 질적으로 풍성한 향연을 펼친다. 기존에 발표된 곡들이 대다수지만 새롭게 편곡, 연주된 곡들이라 원곡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으로 느껴진다.

    사랑이 곧 찾아올 거라고 마법의 주문처럼 속삭이는 첫 번째 곡 ‘Ho Ba La La’는 파란 하늘 스쳐지나가는 바람처럼 투명한 이타마라 쿠락스의 보컬이 두드러지는 노래다. 햇살처럼 감미로운 피아노와 느릿한 가운데서도 찰진 퍼쿠션, 그 모두를 넉넉하게 포용하는 기타와 베이스라인은 안정적이고 또 아름답다. 보사노바의 진정한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트랙이자 첫 번째 주자로 손색없는 멋진 시작이다. 그 뒤를 잇는 건 한국적 재즈를 탐구해오고 만들어가고 있는 전천후 뮤지션 말로의 ‘너에게로 간다’라는 곡. 그녀의 4집 타이틀곡이기도 했던 이 노래는 화려한 스캣과 가사의 각운을 맞춰 어감 상 한국말스럽지 않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엇박과 정박을 오가며 리드미컬하고 소화해내는 그녀의 굵고 허스키한 마력은 깊은 풍취를 풍긴다. 애잔하면서도 감미로운 하모니카로 시작하는 세 번째 곡 ‘Livia’는 보사노바의 목소리로 불리우는 마리아 크레우자의 노래다. 정형화된 보사노바 스타일에서 약간 빗겨나 브라질의 색채감을 더욱 두텁게 두른 민속적인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히 정화시켜준다.

    이한철 3집에 실린 바 있는 ‘Sevilla’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스페인 세비야를 여행하며 그 감성을 풀어낸 곡인데, 원곡의 유려한 스패니쉬 기타와 강렬한 퍼쿠션이 어우러진 집시 사운드를 팔랑거리는 보사노바 스타일로 바꿔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면모를 더욱 부각시켰다. 그의 탁월한 멜로디 감각은 분위기가 바뀌어도 변하질 않는다. 아니 되려 더 아름답고 짙어진다. 다섯 번째 트랙에 자리 잡고 있는 세자 마샤두의 ‘Rio Seoul’은 이 앨범의 핵심이자 중추 같은 노래로 나희경이 듀엣으로 참여해 포르투갈어와 한국어가 대구를 이루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기타 한 대로만 연주되지만 세자 마샤두와 나희경이 서로 파트를 부를 때마다 스캣을 넣어주는 그 리듬이 또 하나의 악기가 되어 풍부한 심상을 담아낸다. 한국과 브라질 두 나라 두 도시의 감성을 자국 언어로 표현하다 마지막에서 일체화 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음악이 들려오네’는 나희경이 보싸다방 시절 발표한 곡으로 그녀의 밝은 그레이 톤의 보이스가 정통 보사노바 스타일과 만나 감미롭게 펼쳐진다. 나희경의 통통 튀는 스캣은 어린 고양이의 움직임처럼 우아하고, 청각적 심상의 가사는 회화적 이미지로 변화해 마치 음악이 손에 잡힐 것 같다.

    마무리를 짓는 건 이미 앞선 다섯 번째 트랙에 소개된 바 있는 ‘Rio Seoul’의 인스트루멘털 버전. 어쿠스틱의 감성을 지우고 일렉트릭 사운드 바탕에 소울풀한 기타 연주로 다소 몽환적이고 색다른 시도로 보사노바를 해석한 것이 아주 인상적이다. 보사노바도 이처럼 다양한 색깔로 공유할 수 있구나 싶어 놀라게 만드는 매력적인 끝맺음이다. 총 27분가량의 짧다고 보면 짧은 컴필레이션 앨범이지만, 보사노바의 다양한 색깔과 스타일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특히나 잃어버린 봄을 되찾기 위해서 기상대나 각 종교의 높고 고귀하신 분들을 찾을 거 없이, 이 한 장의 앨범으로 만끽할 수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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